[조간브리핑]믿지 못할 내신 등급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토론회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강화하는) 2008학년도 대입은 국민적 합의이자 약속"이라며 152개 대 총장들을 압박했다. 28일엔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또다시 "대학들이 약속한 것(내신 50% 반영)은 지키도록 요구할 것"이라면서 "원칙을 안 지킨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반영 비율을 높이라는 내신(학생부) 등급은 학생들의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방침대로 대학이 정시모집에서 내신 성적을 50% 반영하면 우수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못 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본지가 사설 입시기관인 청솔학원과 공동으로 6월에 치른 수능 모의평가 결과와 내신 등급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분석 대상은 서울 강북 일반고(204명), 강남 일반고(107명), 지방 일반고(205명), 특목고(32명) 등 총 548명이다. 상대평가제로 바뀐 내신 평가와 모의수능 점수를 비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믿지 못할 내신 등급=이번 모의 수능의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탐구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인문계 수험생은 총 466명. 이들의 수능 등급은 똑같지만 내신 등급은 천차만별이었다. 강남지역 고교의 수능 전 영역 1등급은 9명(조사 대상의 8.4%)이었으며, 이들의 내신(예체능 제외 전과목 기준)은 1~3등급으로 조사됐다. 강남 고교에서 내신 1등급을 받은 학생은 수능에서 평균 2등급을 받았다. 강북 지역 고교의 수능 1등급자는 4명(3.7%)에 불과했다. 이들의 내신 평가는 1~2등급이었다. 강북 일반고의 내신 1등급자는 수능에서 평균 3등급을 받았다. 분석 대상 중 충남지역 모 고교의 경우 수능 4개 영역 1등급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극심한 학교별 학력차가 드러난 것이다.


조사 대상 특목고 학생 32명 중 수능 전 영역 1등급은 7명(21.9%)이었다. 이들의 내신은 3~5등급이 나왔다. A외고 최모 교사는 "우리 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의 절반이 수능 언어, 수리, 외국어 3개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으나 내신 성적은 최저 5등급까지 나온다"며 "내신의 불리함 때문에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더라도 정시모집에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자립형 사립고도 긴장하고 있다. 민족사관고 이돈희 교장은 "민사고는 사실상 학생들의 수준이 평준화돼 있어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기 어렵다"며 "대학이 정부 요구대로 내신 비중을 높이면 민사고 학생들은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수 학생 대학 가기 어렵다=현재 고3학생들이 고교에 입학한 2006학년도부터 고교 내신 평가 방식이 절대평가제에서 상대평가제로 바뀌었다. 바뀐 제도는 특목고처럼 우수학생이 많이 몰린 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정부가 사립대에 내신 50% 반영을 요구하고 있다. 내신 반영 비율이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2008학년도 사립대 입시에서 상대평가제 내신이 큰 영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는 특목고 출신자들에게 사실상 만점에 가까운 내신 점수를 부여했다. 절대평가(수.우.미.양.가)로 내신 성적이 매겨졌기 때문이다. 서울 S외고의 한 관계자는 "내신과 수능의 불일치 현상이 계속되는 한 특목고 자퇴 파동 등이 재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박유성 입학처장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모여 경쟁하는 걸 장려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일률적인 잣대로 막으려는 게 문제"라며 "제도가 학생들의 실력을 지배해서야 누가 열심히 공부하겠느냐"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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