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의 총장 선임과정은 유별나다. 선발방법은 공채형식, 대상은 전세계 석학이다. 1 차로 1백여명을 선정한 후 후보석학의 업적과 명성은 물론 심지어 인간성, 음성, 사생활, 버릇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검증한다.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가차없이 탈락된다. 즉, 무균질 인격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지난 8월 19일 취임한 정성기 총장(54). 이 대학 화학과 교수 로 재직중 변신을 모색하는 어려운 시기에 제3대 총장의 대임을 맡게 됐다.

합리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심사숙고하여 뽑힌 정총장에게도 한 가지 흠아닌 흠이 있었다. 마지막 결정과정에서 재단이사들이 같은 대학에 재직중인 부인 박세향 교양학부 교수(37)를 문제삼은 것. 총장과 교수인 부인이 같은 대학에서 재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재단이사들의 생각이었다.

"부인을 그만두게 하거나 총장 재임동안 휴직할 수 없느냐"는 권유도 받았다. 그러나 학 문의 길을 같이 걷는 동반자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는 정총장의 정중한 뜻이 받아들여져 수 습이 됐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 지에서 교수와 연구원생활을 하다 87년 포항공대가 개교되면서 부임, 교무처장과 유전공학및 기초과학연구소장을 맡는 등 행정경험도 풍부한 재인.

미국 유학시절 부인을 만나 결혼, 함께 학문의 길을 오느라 슬하에 자녀도 두고 있지 않 다. 그는 평생을 책과 연구실밖에 몰라 '멋없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으나 "학문에서 보람을찾는다"며 밝게 웃었다.

빛나는 연구 업적..「세계의 대학」발진

-. 새 총장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세계적 대학으로 진입하려면 개교한 뒤 10~15년내에 연구와 교육, 두 측면에서 질적 도 약을 이루어야 합니다.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교육, 그리고 질적 우수성을 추구하는 연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25년안에 바짝 올라서지 않으면 군소대학으로 전 락하고 맙니다. 이 때문에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 최근 홍콩 시사 주간지『아시아 위크』가 포항공대를 아시아 최우수 과학기술대로 선 정했습니다.

"『아시아 위크』지는 지난해부터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아시아권 대학의 실적과 경쟁 력을 7가지 항목으로 비교해 순위를 정하는 특집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95개 종합대 학과 41개 과학기술대학이 비교대상이었습니다.

포항공대는 재정, 연구성과, 교수 1인당 논문발표건수 등 네 부문을 휩쓸어 압도적인 점수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포항공대가 받은 75.53점은 2위인 인도 델리공과대학 65.24점, 종합부문 수위인 도쿄대학 74.14점보다 높은 점수였습니다. 한편 서울대는 61.96점으로 종합대 학부문 6위에 올랐습니다."

-. 서울대의 연구중심대학이 교육계에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데 선두주자인 포항공대의 진로는 무엇입니까.

"포항공대의 특성은 연구중심대학(research university)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 학은 대학원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얻는 시스템으로 운영 하고 있습니다. 연구중심대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대학이 지향하는 방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대전 때 미국정부가 모자라는 식량조달을 위해 농대가 설치돼 있는 각 주립대학에 국유지를 빌려주고 농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정부는 과학기술을 국가 경쟁 력에 활용하는 방법을 일찍 터득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후 미국정부는 2차대전중 과학기술 동원령을 내려 하버드,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등의 이.공계 교수들에게 원자탄 등 신무기를 개발하는 이른바 '맨해탄 프로젝트'를 맡기게 되었습니다. 미국정부는 가용 연구 요원이 풍부한 대학이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적임이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배경을 안고 출발한 연구중심대학은 미국을 진원지로 하여 이.공계와 의학분야에서 활발히 육성돼 왔습니다."

-. 최근 대학도 기업과 같이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구조조정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습 니다. 포항공대의 구조조정 계획은 무엇입니까.

"우리 대학도 예외없이 급변하는 주변환경과 더불어 변화와 개혁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러나 우리 대학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지금 각 대학들이 추진중인 구조조정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사실 포항공대가 개교 당시부터 실현해오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구조조정이 필 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학 본연의 사명과 본질을 유지해가면서 변화의 노력을 게 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위해 교과과정, 커리큘럼, 교수지도방법 등을 모두 바꾸어 나갈계획입니다"

-. 단시일내 실시하기가 어려울 텐데요.

"우리는 수년 전부터 무엇보다 창의성을 촉발시키는 학부교육이 우리 대학의 '품질보증서 (hallmark)'가 되어야 한다는 방침아래 나름대로 준비해 왔습니다. 지난 5년에 걸쳐 진행되 고 있는 교과과정 개혁에 관한 논의는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고 2000년도 신입생에게는 새로운 교과과정에 의한 교육을 시작할 것입니다. 또 정보화, 국제화가 가속함에 따라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교육과 영어구사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교육에 힘쓸 것입니다. 궁 극적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학생 스스로가 대담한 '지적 모험'을 할 수있도록 도와주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세계수준의 대학'으로 일컫는 명성에 걸맞게 교수들의 연구활동을 소개해 주시지 요.

"93년에는 외부수탁 연구비가 165억원이었으나 97년에는 355억원으로 늘었고 4년동안 논 문 편수도 166편에서 431편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국제적으로 과학 논문의 질을 평가하는 잣 대인 SCI논문 편수만 보면 우리 대학은 미국의 시라큐스(Syracuse)대학, 리하이(Lehigh)대 학, 독일의 브레멘(Bremen)대학, 헝가리의 부다페스트공대를 능가했으며 프랑스의 에꼴 노 르말 수페리어 (Ecole Normale Superieure Paris)와 일본의 와세다대학과 비슷한 수준이 되 었습니다. 교수 1인당으로 보면 일본과 독일의 어느 대학보다 앞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많은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해야 합니다"

-. 포항공대는 산학연 협동체제가 잘 갖추어진 학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포항제철, 포항산업과학연구원과 더불어 산학연 협동체제 구축이라는 태생적 임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에 걸쳐 상당한 양의 산학연 협동연구를 성공적 으로 수행해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양적, 질적으로 보다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연구개발을 위해서는 배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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