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법률봉사지원단 주도 박경신 고려대 교수

“기업이 금전적으로 억울한 피해를 보상하는 길만이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는 길이다. 그래야 다른 기업도 기름유출사태 예방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태안법률봉사지원 활동을 펴온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가해기업이 ‘무한책임’을 지는 길만이 진정한 사과라고 강조한다. 두 달 넘게 태안에서 피해주민을 상대로 법률 상담을 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박 교수는 태안기름유출사태 발생 3주 만에 태안법률봉사지원단(이하 법률지원단)을 꾸리고, 1월 6일부터 태안 현지에 법률상담소를 개소해 피해주민들을 도왔다. 지난 1일까지 약 두 달 간 피해주민 200여명에게 피해입증에 관한 법률상담을 해온 것이다.

박 교수가 이끈 법률지원단의 활동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기여했다. 박 교수는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국제유류오염보상기구(IOPC)에서 3000억원까지 보상이 된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란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억울한 피해에 대한 보상 주체는 가해자가 돼야 하고 그런 면에서 가해기업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부분을 바꿀 수 있었던 게 성과이고, 주민들도 망연자실하던 데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피해입증에 나서게 된 게 다행이다.”

법률상담에는 박 교수와 그의 제자, 법학전공 대학생과 사법연수생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태안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학생들이 찾아와 답답하다는 얘길 했다. 기름 유출 가해자인 기업들은 가만있는 상황에서 기름 닦아내는 일만으로 사태 해결이 되겠냐는 것이었다. 법적으로 주민들의 피해보상을 도와줘야 이런 사고에서 올바른 원칙을 세울 수 있겠다고 해서 동의했다.”

5명씩 16개 팀을 이룬 봉사지원단은 8주 동안 돌아가며 태안에서 법률상담을 벌였다. 박 교수도 1주일에 이틀은 태안에 내려갔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마음 아프게 느낀 점은 ‘정작 보상을 받아야할 주민들이 오히려 피해입증을 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과세점 이하의 영세업자들은 세금을 낸 자료가 없기 때문에 피해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다. 과거 소득을 계산하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오히려 보상을 받아야할 분들의 피해입증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양식업자라면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수종을 키우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을 구하면 피해입증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분들에겐 판매 영수증을 확보하도록 했고, 그마저도 보관 못하신 분들에겐 구매자의 진술서나 사실 확인서를 받아오도록 조치했다.”

지난 2일 대학 신학기가 개강하면서 현지 상담소는 문을 닫고, 전화 상담만 받고 있다. 박 교수를 비롯해 봉사지원단은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는 기름유출 중과실 기준에 관한 국내외 판례를 모으는 일이다.

“현재 가해자인 삼성중공업은 선주의 책임이 아닌 선장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선장 하나의 과실이면 자신들의 책임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보상규모는 40~45억 선에서 끝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의 논리는 선주가 선장에게 포괄위임을 했기 때문에 선장 책임이라는 것인데, 외국에서는 이럴 경우 선장의 행위를 선주의 행위로 간주한다. 가해기업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런 국내외의 판례를 모아서 향후 법적 논쟁에 대비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상담내용을 ‘매뉴얼’로 만들어 현지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매뉴얼만 보고도 필요한 법률정보를 얻게 하기 위해서다. 자선공연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소송비용 지원하는 일도 준비하고 있다.

71년 충남 태안 안면도 태생인 박경신 교수는 86년 대전과학고를 1학년만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88년 LA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하버드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물리학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하버드 졸업 후에는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에 들어가 3년간 법조인 수업을 밟았다. 로스쿨 졸업 후에는 노조를 조직하지 못한 이주노동자의 무료변론을 맡았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맡지 않는 소송을 하는 게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99년 한국에 돌아와 한동대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법무법인 한결 자문변호사를 거쳐 2005년 9월 고려대 교수로 임용됐다. “학교로 오니 로펌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연구와 대외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박 교수는 지난해 1월부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도 맡아 장애인의 온라인 접근권을 확보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