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장)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장)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연구센터 HK+국가전략사업단장)

역사왜곡과 지나친 중국풍(風) 논란에 휩싸였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朝鮮驅魔師)’가 첫 회 방영을 끝으로 퇴출됐다. 조선을 악령에서 구한다는 역사퓨전 판타지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실존 왕조와 실존 인물들에 대한 지나친 폭력적 설정과 작가적 상상력, 시대에도 맞지 않는 억지 중국 색채의 범람에 광고주들마저 등을 돌렸고 시청자들의 분노는 방영중지 청원으로 이어졌다. 드라마의 판타지 속성을 항변하면서 유튜버들의 스틸 컷 사용마저 저작권 도용으로 몰아 부치던 방송사 측은 결국 사과와 함께 드라마를 폐지했다. 제작사 측도 해외공급을 포기해 역사에 대한 허구의 사실화와 중국의 역사적 영향력에 대한 확산을 막게 돼 다행이다.

이 드라마의 제작과 방영은 판타지 드라마에 너무 엄격한 고증의 잣대를 들이대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과, 작가나 제작진, 방송사 측과 나아가서 문화계가 혹시 중국 자본의 영향력에 끌려 다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문화 자주의식의 문제까지 대두시켰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사려 깊지 못했다. 시기적으로는 중국의 김치나 한복에 대한 원조 논쟁 등 소위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문화 찬탈, BTS 소동이나 6.25 전쟁을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 항미원조(抗美援朝)로 인식하는 왜곡된 역사관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언급해 한국인의 정서를 무시해 감정이 상한 시점에 다시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또 작가의 상상력이 더욱 많이 작용했겠지만 조선이라는 실존왕조와 인물들에 대한 무절제한 훼손은 한국인들의 영혼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문제는 현상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본질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 제작된 것도 아니고, 한국 작가가 극본을 쓰고 제작사 주장대로 100% 한국자본으로 만들었다니 중국을 몰아 부치는 것도 이성적이지 못하다. 창작의 자유를 내세운 작가의 의식 없는 상상력과 제작진의 역사 판타지 장르에 대한 욕심의 단순한 결합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중국 측과 상관없이 우리 손으로 제작됐다면 이야말로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만 이미 거액의 중국 자본이 제작사의 모회사에 투자됐고, 작가 역시 한중 합작 콘텐츠회사와 집필계약을 맺은 사실이 밝혀지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어떤 국가가 자본의 힘을 이용해 자국 문화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 확산에서도 보듯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중국은 개혁·개방의 성공을 ‘세계적 국가 중국’으로 이어가기 위해 체제 특성 상 상대적으로 국제적 감각이 부족한 문화 부분의 발전을 매우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이 점에서 특유의 한류 문화로 세계 문화의 한 축이 된 한국의 문화산업 및 미디어산업,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공은 중국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문화 산업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스카우트 열풍이나 최근 한국드라마에서 부쩍 늘어난 중국풍이나 중국 제품의 과도한 노출도 같은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기본적으로 중국 시장을 겨냥하는 것이다. 선진 기법을 이용한 한국식 제작에 중국적 색채를 그것도 한국에서 입혀준다면 투자자로서 중국 시장 공략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중국 자본이 아니더라도 제작진이나 작가의 입장에서 중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이나 계약 사항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중국에 어필할 수 있는 소재를 쓸 수 있으며 이 또한 당연한 일이고 사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창작 자유를 빌미로 기존의 사실을 왜곡하려는 시도나 과도하고 억지스런 짜 맞추기는 본질을 호도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역사·윤리 의식이 담보돼야 한다.

앞으로도 중국의 공격적인 문화 세계화 전략은 계속될 것이다. 한 국가가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전파하고 이를 통해 국제적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개혁·개방의 성공을 세계화하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의 부상을 보고 자란 중국의 젊은 세대는 문화적 공허함을 메우는 데 아주 적극적이다. 문제는 수천 년에 걸친 찬란한 문화전통과 유산을 갖고 있는 중국이 ‘문화 중국’을 각인시키는 방법이 조급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를 침탈하는 등 국제적 공감대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김치 논쟁이나 한복 논쟁, BTS 폄훼 등도 같은 맥락이며, 특히 김치 논쟁에는 정법위원회라는 공산당 핵심 기관까지 나서 중국식 민족주의라 할 수 있는 애국주의(愛國主義) 열풍을 주도하면서 중국인들, 특히 점은 세대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 때문에 향후 한·중 간에는 정부 차원은 물론이고 기업·민간 분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번 드라마가 중국에서 제작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가 개인이나 제작진의 일탈로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통 문화를 보유하고 당대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한 축인 한류의 원산지인 문화 강국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비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역사·문화의식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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