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벽<미시건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학을 살리려면 교육부부터 없애야 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교육부장관을 부총리로 승격 해야 하는가. 온갖 규제와 통제로 꼼짝달싹 못한다는 대학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세상의 쓸 모 없는 것이 교육부 정책이라는 '교육부 무용론'에 맞장구 쳐진다. 하지만 지식창출이 중요 한 시대에 교육부가 인력개발에 관련된 정부 부서를 총괄해야한다는 '교육부 부상론'도 타당 하게 들린다. 어떤 교육개혁 기본전략이 바람직한지 알쏭달쏭하기 짝이 없다.

지식창출이 세계적인 생존전략이 되었기 때문에 대졸들이 대졸이라는 학력(學歷)에 걸 맞는학력(學力)을 발휘해야만 나라가 바로 세워지는 시대가 왔음은 확실하다.경쟁력을 지니기 위한 한국개혁 시도는 바로 교육개혁이 얼마나 잘되는가에 좌우될 것도 확실하다. 그러므로교육부 무용론과 부상론에 대한 토론이 심심풀이 탁상공론이나 화풀이 겸하소연이 되어서 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교육개혁의 기본전략을 확실하게 선택해야한다.

교육부 무용론이나 교육부 부상론에 대한 경계심의 핵심관건은 교육기관 자율화다. 자율화 는 특성화, 다양화와 더불어 문민정부 초기부터 교육부가 추진한 대학교육 정책이기도 하다. 특성 있는 과정들을 통해 다양화란 꽃을 피우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 바로 자율화란 뜻으 로 풀이된다. 하지만 교육부가 쥐고 있는 지방이양 권장 사무가 아직도 7백90가지나 된다는 것을 미루어 보아 자율화란 그 만큼 하기 어려운 일인가 보다. 대학에 이양해야하는 사무는 또 몇 백 가지나 될까.

과연 자율화는 교육부를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일까? 필자는 자율화란 주고받는 것이 아니 며 서로 뺏고 빼앗기는 것은 더욱 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가 살기 위해 누가 죽어야 한다니, 무엇이 망해야 한다니 하는 비슷한 맥락의 생각은 윈-루즈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인 것이다. 새 시대는 윈-윈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이렇듯 시대이동과 교 육이동에 따라 교육 행정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하겠다.

시대이동이란 세상이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를 거쳐 지식산업시대로 진입한다는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말이다. '교육이동'이란 한국인의 교육열이 초·중·고 교육(입시까지)에서 대학교육(입시 이후)으로 이동해야한다는 뜻인데 이 말을 지난 94년도에 처음 했을 적에 대다수 교수들 마저 반신반의했었지만 IMF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중요 한 사실은 이러한 이동에 따라 정부의 주무부처마저도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 1)

한때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부처였던 법무부가 국민을 툭하면 잡아 가두던 시절이 있었다.그 당시 한국의 대졸이 전 국민의 5% 남짓하던 '무교육'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한국이 산업화 기적을 일구어 내던 때에는 경제부처 관리가 최고 엘리트였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 대 다수가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의 생산품인 지식과 정보가 주 자원이기도한 시대다. 이제는 교육부가 나라의 흥망을 책임지게 된다.

교육부가 강화되면 자율화는 사형선고 받게 되지 않을까? 필자는 이 역시아니라고 생각한 다. 경제부처가 관주도형 경영이 더 이상 먹혀 들어가는 시대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를 외면했기 때문에 IMF를 유발했다는 '훌륭한' 교훈이 있으니 교육부가 관주도형 교육 개혁만을 고집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율권 이양이 교육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이유는 자율권 이양에는 이권과 주도권 등 권력이동이 따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규제나 통제를 푸는 것이 자율화와 일치한다는 착각이다.

타율이란 단어는 복합명사로서 자타로 나누어지고 규율의 유무로 구분되기 때문에 타율의 정반대는 자율이 아니라 자유다. 고로 규제와 통제를 풀면 제 멋대로 노는무법천지 자유가 판칠 가능성이 더 크다. 자유와 자율은 둘 다 창의력의 원천이기는 하지만자유는 파괴적인 창의력으로 사회적 혼돈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반면 자율은 건설적 창의력으로 혁신을 가져 다준다. (그림 2)

이렇기 때문에 규제를 풀지 않아도 문제지만 구제를 풀어도 문제가 되기도한다. 대학 정원자율화 발언이 언급만 되어도 지방대학에서 들고일어나고, 사립대 등록금자율화에 학생들이 반발하고, 대학입시 자율화에 학부모가 "등골이 휜다"며 한숨을 쉰다. 이런 불확실한 결과 또한 새 시대의 특징이다.

새 시대는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따지지 말아야하는 시대다. 흑백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시대이며, 여야의 대립, 노사의 대립, 공산-반공의 대립, 정부-반정부의 대립 등 배타적이며 적대적인 관계는 아무 쓸모 짝이 없는 시대다. 이제는 관주도와 시장경제가어우러져야 경쟁 력이 나오는 시대다. 관과 민이 협력을 해야 나라가 잘된다라는 말은 어느 시절에도 다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고, 사실 우리는 이 말을 신물날 정도로 자주 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달 라지면 협력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나 과정이 달라져야 한다.

협력을 얻어내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두 방법인 상과 벌(매수와 협박)은 구닥다리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개혁 안 하는 대학은 온갖 규제로 불이익을주겠다하는 것은 벌의 개 념이요, 개혁 잘하는 대학에 자금 지원 더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상의 개념이다. 규제와 자금을 동원하여 우격다짐으로 밀고 나가봤자 잡음만 요란할 것이다. BK 21 사업만 보더라 도 알 수 있다. 정부가 돈을 주겠다는 데도 교수들은 싫다고 하면서 데모까지 하지 않던가.

새 시대의 협력은 상과 벌이 아니고 합의로써 이끌어내어야 한다. 합의?모든 구성원들의완전일치를 얻어내란 말인가? 사사건건 투표를 해서 다수결로 정하란 말인가? 아니다. 합의 란 그리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합의란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 그 '결과'를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다. 합의는 과정인 것이다. 목적과 비전이 뚜렷하게 제시되었는가. 구성원들이 같은 정 보를 공유하였는가. 구성원이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가.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였는가. 구성원들이 흡족할 만큼 참여하게 했는가.
결국 합의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린' 정보와 지식, 서로를 존중해주는 쌍방형 커뮤니케이션 기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마케팅(세일즈가 아님!) 기술이다.

합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체제가 바로 자율체제다. 자율화는 모두가 같은 목적과 비전을 공 유하고 최선의 효과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일을 분리 분담한 후 서로 믿고의존하고 정보와지식을 교류하는 그 자체다.

자율적 협력을 도모하는 방법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대학에서 신설한 학과가 인기 좋다하 여 다른 대학에서 제 멋대로 따라하면 특성화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지역별 대학협의체가 있어서 학과를 신설하기 이전에 자체 내에서 토론과 심사와 협상을 하고 합의된 사항만 교육부에 최종 검토와 승인을 거치도록 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예방할 수 있으며 명절 때 선물보따리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교육부는 자질구레한업무에서 해방되 고 정말 자신들의 임무인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세우는데 전력을 쏟을수 있을 것이다.

자율과 협력에 대한 논의는 대학 내부에서도 적용된다. 대학 행정은 교수들의 업적을 높이 기 위해 교수업적평가제와 연봉제를 실시한다지만 이미 '자유'로운 교수를 상과 벌을 이용하 여 통제하려고 한다. 타율에서 자율로 가지 않듯이, 자유에서 자율로 가지않는다. 결국 자유에서 타율로 가고 말 것인데, 세상흐름을 역행하는 길은 절대 평탄하지 않다. 교수업적평 가와 연봉제를 하되 평가기준에 '참여/협동'이라는 항목을 반드시포함시키고 그 항목에 가장 높은 가중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참여와 협력은 자율을 지키는 최선책이다.

필자는 지난 10년간 매해 평균 서너 번씩 한국을 다녀갔고, 37개 대학을 방문하였고, 교육부 에 초청강연을 네 번했다. 교수와 교육부 관리들의 모습이 급속도로 달라지는 것이 보인다. 이제는 모두들 잘 해보자고 무척 열심히 하는 것을 목격한다. 하지만 너무 각자 외롭게 끙 끙대고 있어 보인다. 이제는 힘을 합칠 때가 되었다. 이제는 서로 믿어 줄때가 되었다. 한국이 자율체제로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 그 결과를 이루어내는 기본전략은협력체제다.
나는 믿는다. 만일 한국 대학과 교육부가 협력하고 교수와 대학 행정이 협력한다면 한강의 기적이 다시 오리라고.

조벽 교수는 누구?

새로운 교수법 전파자로 널리 알려진 조벽 교수는 미시간공대 학습센터 소장, 프린스톤 대 학 객원교수, 서울대 객원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미시간공대 옴부즈맨(Ombudsman)으 로 활약하고 있다. 미시간 공대에서 최우수 교수상을 두차례나 수상했으며, 미시간주 최우수 교수상, 미국 공학교육학회(ASEE) 교육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국인이 반드시 일어설 수 밖에 없는 7가지 이유』(공저)와 『새시대 교수법』이외에 다수의 기계공학 학술서적과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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