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혁신의 핵심은 지식 암기가 아니라 창의력 발굴하는 ‘꺼내는 교육’
꺼내는 교육 실현의 첫 단추는 평가 개혁
학생들 비판적 사고 10년 동안 측정하는 홍콩중문대 사례 눈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25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제5회 대학혁신지원사업 웨비나 콘퍼런스’에서 ‘교육과정 혁신을 통한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이 25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제5회 대학혁신지원사업 웨비나 콘퍼런스’에서 ‘교육과정 혁신을 통한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단순 지식을 암기하기만 하는 지금의 교육은 AI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교육”이라고 선언했다. AI에게 정복당하는 게 아니라 AI를 활용할 수 있으려면 지식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굴하는 ‘꺼내는 교육’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꺼내는 교육에서부터 교육 혁신이 시작된다는 뜻에서다.

이 소장은 25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린 ‘제5회 대학혁신지원사업 웨비나 콘퍼런스’에서 ‘교육과정 혁신을 통한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강연하며 이 같이 말했다.

교육 혁신의 핵심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꺼내는 교육’이다. 이혜정 소장은 교육 패러다임이 결과를 주입하는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통 꺼내는 교육이라고 하면 지식을 주입해서 배운 지식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데 설명을 잘 하는 것이 아니고 집어넣은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본인의 생각,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꺼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가 개혁이 꺼내는 교육을 실현하는 첫 단추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이 소장은 교수자가 학습자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 모델 중 하나인 딕앤캐리 모형을 예시로 들며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보다 평가 문항을 어떻게 개발할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딕앤캐리 모형에 따르면 교수자가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 바로 평가 문항 개발에 돌입해야 한다. 이 소장은 “학생들은 결론적으로 어떤 항목을 평가하는지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강조해도 이를 고득점으로 인정하는 평가 방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대에서 강의할 당시 비판적 사고에 평가 가중치를 부여했던 경험도 소개했다. 이혜정 소장은 미리 수업 때 학생들에게 시험에서 자신과 똑같은 의견을 쓰면 B- 학점을 부여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이 소장은 “인터넷이나 교재에 나오지 않고 이 소장과 다른 견해의 의견을 학사시스템 내 온라인 게시판에 2가지씩 게시하도록 했더니 강의를 완수한 학생일수록 사회 진출 이후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례를 목격했다”고 언급했다.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수업 방식도 중요하다. 이 소장에 따르면 집어넣는 교육에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식의 수업과 토론 등 상호작용 방식의 수업이 효과가 비슷했다. 반대로 꺼내는 교육에서는 아무리 잘 만든 콘텐츠로 수업해도 토론처럼 교수자와 학습자가 상호작용 중심으로 질문하고 사고를 전환하게 하는 방식의 교육적 효과가 더 좋았다. 이 소장은 “집어넣는 수업은 AI 기반의 에듀테크를 활용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창의력을 발굴하는 꺼내는 수업은 상호작용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꺼내는 교육이라는 혁신으로 가기에는 먼 국내 대학의 현실도 지적했다. 성균관대 교육과미래연구소가 지난해 전국 25개 대학의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도 교수에게 과제 피드백을 받은 비율은 38%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코로나19 이후에는 33%로 떨어졌다. 교수와 과제나 성적 관련 대화를 한 비율은 더 심각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24%였던 비율이 코로나19 이후에는 17%로 급감했다. 이 소장은 이를 “AI 활용은 커녕 AI에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학생을 만드는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교수와의 상호작용 비율이 얼마나 감소됐느냐가 아니라 심지어 코로나19 이전에도 교수와의 상호작용이 24%밖에 안됐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과의 상호작용에 방점을 두는 해외 대학 사례가 반면교사로 제시됐다. 이 소장에 따르면 홍콩중문대는 대학의 미션을 비판적 사고로 설정하고 학생들이 입학했을 때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이 얼마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평가하게 했다. 이후 학생들이 4학년, 졸업 1년차, 졸업 5년차일 때 4번에 걸쳐 10년 동안 학생들의 발전 정도를 측정했다. 신입생의 창의력 점수를 본인이 평가한 점수가 졸업연도에 감소했으면 해당 데이터를 정리해서 소속 학과 교수에게 보여줘 피드백하도록 해 교육과정 개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로 선정된 애리조나주립대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이 소장에 따르면 애리조나주립대는 수업에서도 HTHT(High Touch High Tech) 기술을 최적으로 적용한 모델을 활용했다. 먼저 학생의 중도탈락율을 낮추는 것을 학교의 교육 목표로 설정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출판사와 협업해 지식 암기에 적합한 온라인 콘텐츠를 만들고 창의력을 키우는 데에는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는 토론 방식을 적용했다. 이 소장은 “HTHT 방식을 적용하기 전까지는 수강신청 철회율이 20%였는데 적용 후 1.5%로 줄었다”며 “성적에서 C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들도 72%에서 94%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혜정 소장은 “현존하는 직업들이 AI로 대체될 미래에는 새로운 직업에 맞는 역량을 창출하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며 교육 혁신의 중심은 꺼내는 교육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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