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조동성이 만난 사람’이 만난 다섯 번째 사람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사진 왼쪽) (사진= 오지희 기자)
‘조동성이 만난 사람’이 만난 다섯 번째 사람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사진 왼쪽) (사진= 오지희 기자)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코로나19 여파로 폐업과 임시휴업이 줄을 잇지만 역설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급격히 커지는 추세다. 디지털 기술 발전을 발판으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대거 나타나면서 시장은 한마디로 ‘제2의 벤처붐’이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 임팩트 투자 등 투자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가능성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투자사들도 증가했다는 말이다.

이런 춘추전국시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프라이머’는 스타트업들이 투자받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로 자리 잡고 있다. 프라이머는 2010년 권도균 대표를 필두로 벤처 1세대가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스타일쉐어, 아이디어스, 마이리얼트립, 호갱노노, 라프텔 등이 프라이머의 투자로 성공 반열에 올라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권도균 대표는 스타트업들에게 어떤 경영적인 조언보다 ‘겸손의 자세’를 강조한다. 그는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인 ‘고객가치’에 집중한다면 투자는 저절로 받게 된다”며 자신의 경험과 액셀러레이팅한 기업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꾸준히 스타트업 멘토링과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대담자인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전 인천국립대학교 총장은 2000년부터 학생창업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 그는 서울대에서 맡은 강의에서 기말시험을 없애고 전원 창업모델을 개발하고 발표하도록 했다. 인천대에서도 학생 창업을 강조한 결과 창업기업이 2018년 42개, 2019년 60개로 국내 400여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스타트업 선배’ 권도균이 걸어온 길로 보는 스타트업의 과거와 현재
조동성(조)
스타트업들에게 교과서로 불리는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을 쓴 게 2015년 8월이니 6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스타트업 생태가 어떻게 변했다고 보나? 

권도균(권)
창업자들이 그 당시보다는 창업이나 스타트업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상당히 익힌 상태라고 본다. 2010년에서 2015년에는 직‧간접적으로 창업 지식을 피상적인 작업으로 습득했다면 지금은 훨씬 구체적으로 린(Lean)하게 접근해 나가고 있다. 제품을 우선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창업 아이디어가 검증 안 된 가설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창업자들이 많아진 것 같다. 어떻게 고객 지향적으로 접근할지 고민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이고 덕분에 실패와 시행착오의 확률은 많이 줄었다.

조: 권 대표는 자신의 여러 사업을 실패 없이 경영해낸 경력이 있다. 본인이 창업 기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권: 첫 사업을 시작할 때가 서른다섯이었다. 그전에는 데이콤에서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다. 주변 사람 중 누구도 권도균이 사업할 거라고 기대한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도 그랬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맡았던 전공을 바꿔야했을 때가 있었다. 데이콤이 컴퓨터 전문 회사에서 전화 회사로 노선을 바꾸려던 시절이었다. 컴퓨터를 전공했기 때문에 전산 전공으로 더 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데이콤에서 일하면 통신으로 바꿔야만했다. 결국 ‘내가 가진 능력으로 더 늦기 전에 한 번쯤은 내 가치를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한 달 만에 사표를 내고 바로 회사를 창업했다.

조: 듣고 보니 나와 권 대표와 인연이 있다. 당시 데이콤 사외이사를 맡고 있었다.(웃음) 창업하지 않고 이직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창업을 택한 케이스다.

권: 이직을 해도 회사의 방향성‧의사결정‧조직 같은 요소들이 내가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데이콤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며 실력을 키웠기에 그때는 내가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조: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다.

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들 하는데 나는 단순해서 용감했다. 가족들도 처음 상의할 때는 반대했지만 결국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 준 건 가족들이었다. 첫째 아이가 4살, 둘째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였다.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돈도 다 떨어졌던 시절들을 아내가 버텨줬다.

조: 권 대표는 평소 스타트업들에게 “제발 잘 나갈 때 겸손하세요. 사업은 장거리 경주니까요”라고 말하며 스타트업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들을 꼽아 왔다. 권 대표의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아니면 관찰의 결과인가.

권: 나 역시 교만했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할 수 있을 만큼 잘 되던 사업도 큰 피해로 돌아온 적도 있다. 반면교사 격으로 투자한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배우기도 했다. 제 사업만 예시로 들면 한정된 경험이 된다. 투자의 좋은 점은 투자한 많은 기업과 함께하면서 액셀러레이터로서 회사발전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함께 고민하고 뒹굴며 경험하다 보니 간접경험으로 200여 명의 창업자의 마음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어떤 팀은 커지면 부패하고 어떤 팀은 조로된다. 마음이 약해서 사업을 쉽게 매각하는 기업들까지 봤다. 그런 기업에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잘 해낸다면 더 큰 이익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조: 창업자가 많아지면서 창업자들의 연령대도 많이 올라갔다. 투자자로서 어떻게 보나.

권: 대기업 임원 출신 창업자든, 아이디어만 있는 창업자든 상관없다. 새로운 일을 출발하는 선에 섰다는 사실은 똑같다. 40~50억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해도 알량한 매출이다.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과 잘 맞는다면 금방 경영을 배워 더 큰 이익을 만들 수 있다. 모두 출발 선상에 있기 때문에 나는 이들을 동일하게 취급한다.

조: 대기업 임원 출신 창업자라면 자존심이 상할 듯하다.

권: 투자자인 나와 창업자로서 인연이 되지 않을 뿐이다.

조: 이미 실패하고 다시 투자를 요청하는 창업자들도 똑같이 대하는지 궁금하다.

권: 물론이다. 하지만 사회가 실패 경험 자체를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는 것에는 반대한다. 실패는 훈장이 아니다. 실패한 사람은 후에도 그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실패를 경험하고도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실패하는 과정 속에서 작은 성공들을 경험으로 발견한 사람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실패의 중력이 더 커서 추락하고 말았지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쌓아 재창업에서 잘 되는 케이스가 있다. 단지 실패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다음 번에 잘 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조: ‘실패를 훈장으로 생각하는 사람’, 참 충격적인 표현이다. 창업자라면 실패를 잊지 않고 그걸 뒤집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권: 물론 실패를 비난하는 건 아니다.

조: 실패 속 숨어있는 성공을 (창업의) 열쇠로 본 것이다.

권: 우리는 투자할 때 창업자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뭘 배웠고 어떤 성공 경험을 가졌는지 물어본다. 사업을 성공반열에 올려놓지는 못했어도 2년을 버텼다면 그 힘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본다. 장점들을 찾아내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창업자들을 본다. 내세울 만한 강점이 있으면 과거 한두 번 실패했더라도 투자하고 강점이 없다면 투자하지 않는다.

■지금은 ‘스텔스 창업 시대’,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조: ‘스텔스 창업’이 국내 창업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뭔가.

권: ‘스텔스’는 말 그대로 직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나 주말 시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는 걸 의미한다. 사업의 가설을 세워 시장과 고객의 반응을 차분히 검증해 보는 것도 포함된다. 직장을 가지고 있으니 리스크가 없는 편이다. 고객과 시장이 창업 아이디어에 반응한다면 창업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접으면 그만이다.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얻은 전문성과 지식으로 ‘좋은 창업’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직장이 전문지식을 갖출 수 있는 창업 사관학교이기 때문이다. 조금 일찍 시작했을 뿐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런 이야기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안 좋아할지도 모르겠다.(웃음)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

조: 스텔스 창업을 하는 직원들이 있는 기업은 이를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아 사내 창업을 시키거나 사내 프로젝트로 양성화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스텔스 창업이 막는다고 해서 막힐까.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고 본다. 권 대표가 기업인들에게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해줬으면 한다.

권: 많이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

조: 대학교수들도 이미 스텔스 창업을 하고 있다. 인천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교수 창업, 학생 창업이 활발해지려면 그 전에 직원 선생님 창업이 일어나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직원 선생님들의 창업을 독려했다. 그러자 대학 전체 분위기가 창업 친화적 분위기로 바뀌고 교내 창업이 활성화했다. 기존의 전통적인 회사들도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스텔스 창업을 하게 되면 회사 자체가 활력이 넘칠 거라고 본다. 사회적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될 정도다.

권: 조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며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는 일을 불편해하면서 개선점을 찾는 사람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존재다. 특히 후자는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변곡점을 만들어 낸다. 변곡점을 만드는 사람들은 회사 조직과 시스템에 불만족스러워한다. 조직은 이런 사람들이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줘야 하는데 기존 회사 중에는 이런 장치가 별로 없다. 기업은 이들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갈 때 오히려 이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성공하면 그만한 가치를 인정하고 영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스텔스 창업이든 사내 창업이든 변곡점을 만들어낼 사람을 알아내기 위해서 회사가 해야 할 일이 많다. 대기업들이 독점적 경쟁체제에 있을 때는 필요 없던 작업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기업 내에 변곡점을 만드는 사람들이 나가서 그 가치를 입증해내면 빨리 큰돈을 들여서라도 M&A 해야 한다. 

조: 구글 같은 모습이다. 나간다고 하면 나가라고 하고 6개월 후, 1년 후에 성과를 내면 몇백억을 주고라도 영입하는 식이다. 스텔스 창업과 구글 모델을 합쳐 보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기업의 불안함도 줄지 않을까.

■대학, 이제는 창업을 필수교육으로 해야 할 때.
조: 인천대에서 직원 창업을 강조했더니 기대보다 더 큰 성과가 났다. 총장을 맡은 지 3년차인 2019년에 학생 창업을 60개 만들었다. 국내 400여 대학 중 단연 1등이었고 2‧3등이 40여개였다. 하지만 이 숫자도 학생 창업이 1년에 1000개가 넘는 중국 북경대나 칭와대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나라 대학이 학생 창업 1000개를 달성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권: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한 학기는 풀타임 창업에 도전하는 제도를 시행해보기 바란다. 모든 사람이 창업가가 되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기도 몰랐던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학점 부여는 창업 기업의 매출이 아니라 창업하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리포트로 제출하거나 ‘패스 앤 페일(Pass and Fail)’ 방식으로 주면 좋겠다.

조: 1995년에는 핀란드 헬싱키 경제대, 헬싱키 공대, 헬싱키 예술디자인대가 따로따로 분리돼 있었다. 그 당시 세 개 대학 총장이 모여 국제디자인경영프로젝트(International Design Business Project:IDBP)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IDBP는 3개 대학에서 대학원 2학년 학생 10명씩 30명을 모았다. 1학년은 각 대학에서 배우고 2학년에서는 1년을 함께 공부했다. 3명이 ‘원 팀(One Team)’이 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10개 팀은 12개 과목을 함께 들은 다음에 창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창업 프로젝트에서 창업 모델을 도출하면 대학이 3만 유로에서 5만 유로씩을 지원했다. 그리고 지도 교수가 붙어서 1년 동안 창업 과정을 함께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도록 했다.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 동안 진행된 프로젝트 150개 중에서 70개 정도의 기업이 성공했다. 이러한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한 3개 대학은 한 대학으로 합병해서 알토대(Aalto university)가 됐고 세계 혁신대학의 상징이 됐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 캐나다 워털루 대학(University of Waterloo)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다. 창업을 포함해 스스로 구축한 프로젝트를 3학기 동안 해내야 한다. 이게 졸업 조건이다. 실리콘 밸리에 가서 인턴십 기간을 보내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일하고 있는 직원 중에는 워털루대 출신들이 많다. 물론 좋은 창업자들도 많다.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졸업하기 전에 무조건 어떤 프로젝트로든지 돈 버는 프로젝트를 해봤으면 한다.

조: 교육부에서는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라고 강조한다. 취업은 사실 우리 대학 학생이 안 들어가면 다른 대학 학생이 들어가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우리학교 학생이 취업을 많이 한다고 국가에 좋은 건 아니다. 창업하게 되면 한 기업당 일자리가 적어도 3~10개 따라온다. 그러나 교육부는 창업과 취업을 1:1로 평가한다. 정부가 창업 하나를 취업 10개로 평가해주면 그 순간 우리나라 대학들은 모두 창업대학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평가기준 하에서는 모든 대학이 창업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게 된다. 정부 평가를 통해 대학 보조금을 주는 구조니 보조금을 많이 받으려면 학생 창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이런 제도를 교육부에 제안했는데 아직 무소식이다.(웃음) 창업은 우리 젊은이들의 살길이고 대학이 가야 할 길이다.

권: 창업에 가점을 주는 건 좋은 생각이다.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경북대 전산학과 82학번으로 졸업 후 데이콤에서 프로그래머로 1997년까지 일하다 퇴사해 보안솔루션업체 ‘이니텍’을 창업했다. 1998년에는 전자지불업체 ‘이니시스’를 설립했으며 2001년에는 이니텍, 2002년에는 이니시스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2008년에는 회사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1년간 미국 UC버클리 대학 방문연구자로 가 경영학을 공부했다. 2010년 한국의 1세대 벤처 창업가들과 함께 후배 창업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프라이머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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