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정시모집 ‘지원자 0명’ 학과 26곳 모두 지방대…지역 위기감 고조
학령인구 급감 쓰나미 지방대 덮쳐…경영위기 대학 속출, 출구전략 마련 절실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센터’ 출범시킨 법무법인 태평양에게 듣는 경영위기 대학 진단·해법은?
전문가 “사립대구조개선법, 세제 지원 확대하고 설립자에 잔여재산 분배 허용해야”

학령인구 급감으로 지방대 정원 미달이 속출하면서 한계 대학의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지= 아이클릭아트 제공)
학령인구 급감으로 지방대 정원 미달이 속출하면서 한계 대학의 퇴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지= 아이클릭아트 제공)

[한국대학신문 장혜승 기자] 대학이 생존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특히 비수도권 지방대에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쓰나미가 몰아치고 있다. 2023학년도 일반대 정시모집(일반전형 정원 내 기준)에서 지원자가 단 한명도 없는 학과 26곳이 모두 지방대인 것으로 조사되면서 대학 사회에 미치는 충격파가 크다. 

대학가에서는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 악화로 경영 한계 상황에 놓인 대학들이 스스로 문 닫을 수 있게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8일 새해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국회 교육위 소속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하 사립대구조개선법)’의 연내 제정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대학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이 법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서도 세제 지원 조치와 잔여재산 일부를 설립자가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지원자 0명’ 학과 속출…모두 지방대 = 지난 10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소위 ‘지원자 0명’으로 집계된 학과는 26곳(대학 기준 14곳)이었다. 종로학원 측은 “4년 전인 2020학년도에는 3개 학과에 불과했는데, 이번에 26개 학과로 8배 넘게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지원자 0명 학과’를 시·도별로 분류하면 △경북 10곳 △경남 4곳 △전남 4곳 △부산 2곳 △충남 2곳 △충북 2곳 △강원 1곳 △전북 1곳 순이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아닌, 모두 ‘지방에 위치한 대학 학과’들이었다.

종로학원은 앞서 ‘2023학년도 전국 216개 대학 수시 미등록 규모 분석’을 통해 지방권 대학 가운데 18.6%(130개 대학, 3만 3270명)가 수시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3.0%(42개 대학, 1396명)를 기록한 서울권 대학의 6배 이상 되는 규모다.

이같은 ‘입시 쇼크’는 2021학년도부터 지방대를 덮쳤다. 실제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1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전국 대학이 채우지 못한 정원은 4만 586명(미충원율 8.6%)이었다. 이 가운데 3만 458명(75%)이 지방대 정원이었다. 작년에도 미달 인원 3만 1143명(6.7%) 중 2만 2447명(72%)이 지방대에서 나왔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8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새해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구조개선법의 연내 제정 의지를 밝혔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 8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새해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구조개선법의 연내 제정 의지를 밝혔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 경영 위기 사립대, 국가가 챙겨야…‘사립대구조개선법’ 도입 한목소리 = 이같은 입학 정원 미달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사립대 특성상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그 충격은 비수도권 사립대학에서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면서 대학들의 구조조정을 통해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8일 새해 첫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지난해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사립대구조개선법의 연내 제정 의지를 드러냈다. 사립대구조개선법은 부실 위험이 높거나 회생이 어려운 대학의 구조개선과 퇴로 마련을 위해 재산처분·사업양도·통폐합에 관한 특례를 부여하고, 해산 시 공익법인·사회복지법인 등으로의 잔여재산 출연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지난 9일 발의한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도 유사한 내용이 담겼다.

대학가에서도 해당 법안을 두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유재원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회장(한국영상대 총장)은 법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이라며 “다만 잔여 재산의 일부를 설립자나 이사장들에게 일정 비율로 분배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공익법인 전환의 폭을 더 넓히지 못한 점 등 일부 보완돼야 할 부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와 한국전문대학법인협의회,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연합체다.

지역 대학에서도 출구 전략 마련 차원에서 해당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최양희 한림대 총장은 지난해 10월 “법안 발의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그동안 학령인구 감소와 경영위기를 겪는 대학들이 속출하면서 출구 전략이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20년 전부터 형성됐다. 특히 요즘은 옛날과 달리 막다른 지경에 이른 상황도 많이 발생하고 있어서 경영위기 대학을 정리할 수 있도록 고등교육계 차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퇴로가 없었지만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실행에 옮겨진다면 선택지가 많을수록 바람직하다”며 “말만 무성하게 나오고 실질적으로는 아무 일이 안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교육부가 법안이 실행될 수 있도록 추진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방대 폐교 촉진 수단 되지 않도록 보완해야 = 일각에서는 수도권 대학 정원은 놔둔 채 사립대구조개선법이 통과된다면 지방대 폐교를 촉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김병국 전국대학노조 정책실장은 “폐교할 수밖에 없는 대학이 있다는 점에서 해당 법안이 필요는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수도권 대학 정원은 놔두고 사학진흥재단에서 평가해서 어려운 대학을 솎아낸다면 그게 다 지방대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태평양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의 오정민 변호사는 “사립대학구조개선법의 목적은 폐교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통해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살리자는 취지”라며 “현재 발의된 법안에서도 폐교·해산의 절차를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학교법인 이사 정수의 3분의 2 이상의 의결을 거쳐 구조개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는 만큼 이 법을 지방대 폐교를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폐교·해산되는 대학의 설립·운영자에 대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대학 청산 시 잔여재산을 국고로 귀속토록 하고 있어 한계 대학이 스스로 폐교하고 싶어도 퇴로가 차단돼 끝까지 학교를 운영하려고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태평양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 소속 우병렬 외국변호사(미국 뉴욕주)는 “설립자나 출연자가 출연한 재산의 범위 내에서 일정 비율을 환급할 수 있도록 하고 사립대구조개선법이 시행되는 기한까지만 적용한다고 하면 특혜 시비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제 혜택 부여 문제도 거론된다. 오정민 변호사는 “법안에는 반영돼 있지 않으나 원활한 인수·합병을 위해서는 인수·합병시 수익용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등록세를 감면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사립대학의 원활한 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센터’를 출범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25일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 소속 우병렬 외국변호사(왼쪽)과 오정민 변호사(오른쪽)을 만났다.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법무법인 태평양은 사립대학의 원활한 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센터’를 출범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25일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 소속 우병렬 외국변호사(왼쪽)과 오정민 변호사(오른쪽)을 만났다.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미니 인터뷰] “사립대 구조조정 통해 지역 고등교육 생태계 살려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법무법인 태평양이 대응센터를 꾸렸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사립대학의 원활한 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사립대 구조개선 지원센터’를 출범하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2004년 교육부 연구용역을 계기로 사립대 구조 개선에 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설립된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에는 교육과 행정, 입법, 구조조정, 조세 등 핵심 전문가 20여명이 소속돼 관련 법률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의 오정민 변호사와 우병렬 외국변호사(전 강원도 경제부지사·기재부 장기전략국장)를 지난 25일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만나 ‘지방대 위기’ 시대,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법무법인 태평양 우병렬 외국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법무법인 태평양 우병렬 외국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 사립대구조개선지원센터가 이른바 ‘지방대 위기’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태평양은 오래 전부터 교육 분야를 전문 부서로 운영해오고 있다. 태평양의 사립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0여 명이 포진돼 있는데, 구조개선 과정에서 △교육 △부동산 △행정 △입법 △조세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립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는 사립대학 구조개선 특별법이 조속히 입법되도록 관련 단체와 협업하고, 입법이 될 경우 사립대학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한 법률 지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국가경쟁력의 원천인 고등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특히 지방대가 더욱 심각한 위기상황이므로 지역의 고등교육 생태계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지역사회의 상생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원활한 구조조정을 법률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 사립대학구조개선법 제14조에서 경영위기대학에 대해 재산 처분 및 사업 일부 양도가 허용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폐교 위기에 내몰리거나 또는 폐교 대학 건물과 땅이 매물로 나와도 폐교 대학의 위치가 대부분 지역 중소 도시인 특성상 가치가 낮아 재산 매각이나 활용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 21조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경영위기대학의 구조개선 조치 이행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고,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 등을 매수·임차하려는 경우 폐교되는 사립대학 또는 해산되는 학교법인의 재산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지자체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은 지자체의 조례로 정해지는데, 구조개선 대상 사립대학 소재지의 지자체가 적극적 지원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오정민 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법무법인 태평양 오정민 변호사.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 제공)

- 2004년도 연구용역에서는 대학의 비영리성을 유지한다는 전제로 입법 연구가 이뤄졌는데 2023년 현재도 사립대 구조개선에서 대학의 비영리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지.
“우리나라는 학교법인과 의료법인을 비영리법인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영리활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구성원에게 분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영리법인의 성격에 대해 오해가 있으므로, 학교법인과 의료법인의 영리법인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를 공론화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 아무리 대학 운영이 힘들어도 설립자와 가족들이 이사장, 교수로서 누리는 명예가 있고 일종의 수익사업체기 때문에 과연 학교를 정리하려고 하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바로 그런 의문 때문에 사립대구조개선법이 통과돼야 한다. 현행법 하에서는 학교의 문을 닫는 것보다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이 명예와 실리 차원에서 이득이다. 이런 걸 버리고 국가에 대학을 헌납하고 빈손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퇴로를 만들어주자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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