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재정난 심화…대학 기부 트렌드도 변화해
펀드, 암호화폐, 소액 기부 캠페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 확보
“학생 때의 작은 기부 경험이 추후 큰 기부로 되돌아올 수 있어”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한울 기자] 대학 기부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대학들은 대학 발전기금을 통해 재정을 확보해 왔으나 최근에는 펀드, 암호화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기금을 전달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 발전기금이라 하면 기부금 전달 방식을 떠올리곤 한다. 대학 동문이나 지역 내 재산가로부터 대학 및 지역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전달해온 기부금이 대표적이다.

국내 대학의 경우 재정의 대부분을 등록금 수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 재정을 확대할 수 있는 발전기금 모금은 매우 중요하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대학의 전체 수입대비 등록금 의존율은 53.1%에 달한다.

이 같은 대학 기부 문화에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현금성 자산에 국한됐던 기부가 펀드, 암호화폐 등으로 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펀드’를 기부받아 눈길을 끌었으며, 고려대는 암호화폐를 기부받기도 했다.

기부 대상 확대도 이뤄지고 있다. 동문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이뤄지던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 구성원들의 기부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펼치거나 손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숙명여대에 2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기부한 조강순 씨,(왼쪽)와 권준하 씨(오른쪽) (사진=숙명여대)
지난해 11월, 숙명여대에 2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기부한 조강순 씨,(왼쪽)와 권준하 씨(오른쪽) (사진=숙명여대)

■ 현금이 아닌 비현금성 자산으로…국내 최초 ‘펀드’ 기부 받은 숙명여대 = 숙명여대는 지난해 11월 특별한 발전기금 전달식을 열었다. 이날 개인 투자자인 조강순, 권준하 부부는 소유한 2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숙명여대에 기부했다. 기부 문화가 발달한 해외에서는 비교적 흔한 일이지만 국내에서는 비현금성 자산을 활용해 전달한 최초의 사례다.

그동안 국내 대학에서는 펀드 방식의 기부를 펀드 운용과 관리의 대한 부담 등으로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부부가 숙명여대에 기부를 결심하기 이전 다양한 공익기관과 장학재단 등을 찾아 기부 의사를 밝혔지만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권 씨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 1순위로 뽑히는 펀드가 그동안의 대학 기부 방식에서 적용되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현금 같은 일회성 기부가 아닌 우량 펀드를 통해 긍정적인 기부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기부의 의미가 더욱 뜻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펀드 기부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이번 사례를 시작으로 앞으로 비현금성 자산을 활용한 다양한 대학 기부 문화가 국내에도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이에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은 부부의 큰 뜻에 공감하며 “매년 발생하는 수익금은 재학생 장학금으로 소중히 쓰일 예정이다. 고등교육과 기부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부부의 큰 뜻에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이사가 지난해 1월 고려대에 1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발전기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고려대)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이사가 지난해 1월 고려대에 1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발전기금으로 전달하고 있다. (사진=고려대)

■ 외국에서는 흔한 암호화폐 기부, 고려대가 출발선 끊어 = 펀드 외에도 암호화폐를 발전기금으로 전달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월, 고려대와 ㈜위메이드는 ‘국내 대학 최초로 암호화폐 발전기금 기부협약식’을 열었다. 대표자로 나온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이사는 당시 약 10억 원 상당의 가상화폐 ‘위믹스(WEMIX)’를 고려대에 기부했다.

장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된 암호화폐 기부 방식은 전달받은 대학이 기부금 관리를 투명하게 할 수 있도록 도움과 동시에 자금 유용과 횡령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해외 대학에서는 종종 암호화폐 기부가 이뤄지곤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전달식이 국내 최초로 암호화폐를 기부한 사례로서 암호화폐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며 “이번 기부금이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갖춘 글로벌 기술 인재 양성을 꿈꾸는 고려대에 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당시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위메이드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기부 방식을 선택하면서 고려대가 새로운 대학 기부문화를 선도할 수 있게 됐다”며 “전달받은 암호화폐는 미래 교육, 블록체인 기술을 포함한 창의 인재 양성 연구와 학술 활동 발전 기금으로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 대학 기부도 전략 필요하다…자연스러운 기부 유도하는 대학들 = 이전보다 대학의 기부금이 다양한 경로로 들어오면서 대학 내부에서도 기부 문화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동문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이뤄지던 이전 방식에서 벗어나 대학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기부하도록 캠페인을 펼치거나 기부 문턱을 낮추고 있다.

서울대에서 진행하는 소액모금 캠페인 ‘만X만한 기부’ (사진=서울대 발전기금 홈페이지 캡처)
서울대에서 진행하는 소액모금 캠페인 ‘만X만한 기부’ (사진=서울대 발전기금 홈페이지 캡처)

대학 내 발전 기금 관련 부서들도 △대학기부금 전담부서 배치 △기부자 시장세분화 △지속적 관계 마케팅 구축 △기부자 전략적 파트너십 확보 등 대학 기부금 마케팅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학 특성을 고려한 모금 실행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전국대학발전기금협의회(이하 협의회)에서는 이를 돕기 위해 실무자들의 전문성 제고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협의회는 강연 초청이나 정기적 행사 개최를 통해 △대학 경영에서 ESG 경영 도입 △대학 모금의 목적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실질적 모금 실행 전략 공유 등을 실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고액에서 소액으로, 동문에서 재학생으로 =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소액의 발전기금 모금 캠페인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거창한 방식의 펀딩이나 기부에서 벗어나 특정 행동을 수행할 시 자동으로 기부하는 방식을 유도하는 등 손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향전환에 나서고 있다. 강원대의 경우 재학생들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소셜 앱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강원대는 앱 내부에 위치한 쇼핑 서비스를 학생이 이용하게 될 경우 구매 비용의 0.5%가 모교 발전기금으로 자동으로 기탁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화여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액모금 캠페인 ‘선배라면’ (사진=이화여대 블로그 캡처)
이화여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소액모금 캠페인 ‘선배라면’ (사진=이화여대 블로그 캡처)

강원대의 사례처럼 다양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액모금 캠페인을 채택하고 있다. 서울대는 ‘만x만한 기부’라는 정기 기부 시스템을 통해 1만 원 기부 시 리포트와 기념품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서울여대의 ‘오!늘기부’, 이화여대의 ‘선배라면’, 한성대의 ‘한마음 한성, 한가족 되기’ 등 다양한 기부 캠페인이 성황리에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동근 한성대 발전협력팀 팀장은 “기존 고액 기부 형식은 한번 들어오면 끝이고 일회성에 그치지만 소액 기부의 경우 지속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학교 연구 지원이 가능해져 특정 부분의 고정적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며 “재정 악화로 힘들어진 대학들에게 소액기부 캠페인은 재정 확보와 더불어 경직된 기부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행사”라고 소개했다.

■ 한양대 ERICA, “학생 때의 작은 기부경험이 나중에 큰 기부로 되돌아올 수 있어” = 한양대 ERICA의 경우 캠페인 진행에 앞서 쉽고(Easy), 재미나고(Fun), 인상깊은(Impressive) ‘EFI 모델’을 구축해 소액모금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냄과 동시에 관련 실무자들에게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2월 열린 ‘2022년 전국대학발전기금협의회 동계 세미나’에서 한양대 ERICA의 사례가 대표적 우수사례로 실무자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 2월 제주에서 열린 ‘2022년 전국대학발전기금협의회 동계 세미나’에서 홍한솔 한양대 ERICA 대외협력팀 직원이 대학 소액기부 캠페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양대 ERICA)
지난 2월 제주에서 열린 ‘2022년 전국대학발전기금협의회 동계 세미나’에서 홍한솔 한양대 ERICA 대외협력팀 직원이 대학 소액기부 캠페인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한양대 ERICA)

홍한솔 한양대 ERICA 대외협력팀 직원은 “우리 대학은 2016년부터 꾸준히 기부액 및 기부자 수가 감소해왔다. 하지만 기부를 경험해본 사람들이 높은 재기부 의사를 보인다는 조사 결과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며 대학이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유를 전했다.

홍 씨는 이 같은 캠페인을 통해 기존 고액 모금에서 얻을 수 없었던 ‘내부 구성원들의 기부문화 확산 효과’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대학 기부금은 받는 학교와 받지 못하는 학교 간 양극화가 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하지만 소액 모금 캠페인은 다르다. 잠재적 기부자 양성이 목적이기에 기부 저변에 낮은 학교도 잠재적 기부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면 추후 대학 발전 기금을 전달할 기부자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심한 대학 기부 현황 = 대학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대학 기부금에 대한 대학 간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학알리미의 ‘2020년 국·공립대 발전기금회계 예산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가 620억 원 규모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았지만 전북대, 강원대, 부산대, 충남대 등은 100억 원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다. 2021년 자료에서도 서울대가 400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는데 149억 원으로 2위를 차지한 전북대보다 2배 이상 많은 기부금을 받았다.

‘2020년 국·공립대 발전기금회계 예산 자료’의 일부분. 서울대가 620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나머지 지역 대학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대학알리미 캡처)
‘2020년 국·공립대 발전기금회계 예산 자료’의 일부분. 서울대가 620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받았지만 나머지 지역 대학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대학알리미 캡처)

심지어 코로나19 확산으로 기부금 전달이 줄어들면서 가뜩이나 재정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의 고충은 늘어나고 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매년 적잖은 금액을 기부해온 사람들이 지갑을 닫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대학 발전협력팀 관계자는 “대학 재정에서 대학 발전기금은 많은 부분을 차지해 왔다”며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매년 꾸준히 기부를 이어온 사람들이 기부를 중단해 재정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대학의 인지도나 동문의 사회 진출 수준에 따라 기부금이 천차만별로 갈리게 되니 대학 내부적으로 기부금도 ‘빈익빈 부익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이성근 성신여대 총장도 본지 칼럼을 통해 “일부의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현상 유지마저 어려운 것이 대학 기부금의 세계”라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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