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 등 서울 5개 대학 대입 과목 지정
수학 ‘미적분’, 과학 ‘물리학·화학’ 등 핵심 과목 지정해 필수 이수 권장
“자연계 학문 특성상 ‘수학·과학’ 핵심 과목 고교서 충실히 배우고 와야”
“수능 필수 응시과목 지정 정시 ‘이과생 문과 침공’…수시로까지 번질라”

왼쪽부터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왼쪽부터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고려대·연세대 등 서울 주요 대학 5개교가 이공계 학과에 지원할 수험생은 고등학교에서 수학 ‘미적분’과 과학 ‘물리·화학’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며 올해 입시에서부터 이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연계열 학문 특성상 수학·과학에 대한 기본 이해도가 필수적이고 고교 단계에서 배웠어야 할 과목을 대학 공부하면서 다시 배우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8일 교육계에 따르면 경희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 등 서울 주요 대학 5개교는 ‘고등학생 교과 이수 과목의 대입전형 반영 방안’ 연구 보고서를 지난 17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대학 입시에서 자연계열 지원자가 고등학교 때 들어야 할 핵심·권장 과목들을 정하고 있다. 핵심 과목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을, 권장 과목은 가능한 이수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되는 과목을 뜻한다.

예컨대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 들어가려면 수학Ⅰ·Ⅱ, 미적분, 물리학Ⅰ, 화학Ⅰ, 지구과학Ⅰ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또 약학 계열에 지원하려면 수학Ⅰ·Ⅱ, 화학Ⅰ·Ⅱ, 생명과학 Ⅰ·Ⅱ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식이다.

특히 수학 선택과목인 ‘미적분’은 자연계열 14개 분야 중 12개에서 핵심 과목으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물리학·화학’도 핵심 과목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았는데 ‘기계·전기전자·물리·재료·화공·고분자·에너지’ 학과의 경우 지원자는 반드시 해당 과목을 들어야 한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전형팀장(연구책임자)은 “자연계열 학문 특성상 학습 단계가 있다”며 “고등학교 때 배울 과목을 대학에서 다시 공부하기는 쉽지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권장과목을 참고해 학습 단계에 따라 충실히 이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울 5개 대학들은 올해 입시에서부터 이번에 제시한 이수 권장과목을 학생부종합전형 실제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학종 평가요소를 보면 ‘전공(계열) 관련 교과 성취도’를 활용한다고 돼 있다”며 “이수 권장과목은 이를 구체화한 것이기 때문에 시행계획을 따로 바꿀 필요도 없다. 고교·대학 간 교육과정의 실질적인 연계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 자연계에 적합한 학생 선발 위한 조치…‘문과 침공’ 수시까지 확대 우려 = 서울 5개 대학의 이번 발표로 교육계에선 이공계 학과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목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특히 오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는데 대학이 먼저 기준을 제시해줘 과목 선택과 관련한 학생 혼란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임 팀장은 “수능 응시과목 위주의 획일적인 과목 선택에서 벗어나 전공별 특성을 고려한 과목 선택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자연계열 이외 계열에서도 이수 권장과목이 필요한지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가 오는 2025학년 대입부터 대학들이 수능 필수 응시과목을 정하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번 기준이 발표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올해로 3년째 문·이과 통합 수능이 시행되면서 대학들은 자연계열 지원자에게 수능에서 수학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반드시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미적분’ ‘기하’를 선택하면 통상 이과생으로, ‘확률과통계’를 택하면 문과생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부가 오는 2025학년 입시부터 대학에서 이 같은 전형이 운영되지 못하도록 하면서 대학들은 수능에서 선택과목을 기준으로 이과생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고교 교과에서 이수 권장과목을 제시함으로써 이과생을 구분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대학들이 자연계열 전공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 내놓은 최소한의 방편으로 볼 수 있다”며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과목 수가 지금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문·이과 학문적 특성이 엄연히 구분된 상황에서 이에 적합한 학생을 뽑기 위해 대학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최근 대입 정시에서 빚어지고 있는 ‘이과생의 문과 침공’ 문제를 수시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입에서 대학들은 자연계열에서 ‘수능 필수 응시과목’을 지정하고 있는 반면 인문·사회계열에선 이를 따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과생은 인문·사회계열까지 지원할 수 있지만 문과생은 자연계열에서 요구하는 필수 과목을 응시하지 않아 자연계열 지원이 불가능하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3년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문·이과가 수학 공통과목으로 맞붙게 되면서 고득점을 획득한 이과생이 인문·사회계열에 지원해 문과생을 밀어내는 이른바 ‘문과 침공’이 매년 정시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 문과 전체 합격생의 절반이, 또한 서울 중상위권 대학 문과 합격생의 80%가 이과생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계에선 향후 고등학교 이수 권장과목을 자연계열 학과에서만 지정할 경우, 학생부종합전형 평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시에서도 ‘이과생의 문과 침공’ 문제가 두드러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과생은 교차지원이 자유로워 폭넓게 학과를 선택할 수 있지만, 문과생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학과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성호 대표는 “대학 입장에선 자연계 전공에 맞는 학생을 뽑겠다는 취지지만, 향후 정시 교차지원 문제가 수시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문·이과 장벽을 없애겠다’는 정부 기조가 완강한 상황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개선 노력이 시급해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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