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를 원하는 사회와 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학생들.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통성을 상실한 데다 학문적 고고함을 유지하다 대중에서 괴리된 +인문학,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한 대학 교육 정책, 정신부재의 시대로 이끈 전반의 교육제도 …….

이미 많은 대학에서 교양·전공 인문학이 속속 폐강됐다. 반면 외국어, 컴퓨터 등 취업에 유리한 과목들엔 수강신청자가 몰려 강좌수를 늘려야 했다.

실용 지식에 대한 대학생들의 선호는 인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예외이지 않다. 지난해 2학기 서강대 인문학부 학생들의 전공 선택 결과, 영문학과 재적생수(2백38명)가 독문·종교학과 재적생(각 8명)보다 30배 가량 많았다.

이같은 풍경은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가능케 한다.

실제 최근 동의대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47.7%가 +‘전문 직업인 양성’이 대학의 바람직한 기능이라고 응답해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학을 인격도야 또는 진리탐구의 공간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21.6%에 불과했다.

또한 ‘세계화’ 바람 속에서 도입된 경쟁의 또다른 이름인 학부제도 인문학의 종언을 고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

숙명여대 중앙도서관의 도서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학부제가 시행되지 않았던 94년 3월 현재 대출 도서 1만5천여권 가운데 인문학 관련서 분포도가 60.94%(9천5백26권)였던 것이 학부제 시행 이후인 98년 3월에는 26.09%로 급격히 떨어졌다.

서울대 교수들의 1인당 평균 연구비 중 공과대가 1억7천만원인 반면 인문대의 경우 8백만원 정도인 점도 인문학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김정란 상지대 교수(인문사회대)는 “미국식 실용주의 교육정책을 모방한문민정부의 교육개혁에는 ‘문민정신’이 없었다”며 “기능주의를 지나치게 지향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매우 어두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에 천편일률적인 경쟁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교수를 쇼맨으로 만들고 결국 인문학을 들러리 학문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교육부 학술지원과 고용 과장은 “기초·순수학문이 경쟁 논리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인문학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학생 장학금, 교수 지원금, 전공자들의 진로 연계 등으로 1∼2개월후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평근 서울대 인문대학장(불문학)은 “제도보다는 내실있는 +정책이 더 절실하다”며 내실있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요구했다.

한편 인문학계 내부의 반성과 대안 마련도 활발히 진행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96년부터 교육부의 4개년 프로젝트 ‘인문학과 가치관’을 연구해온 +길희성 서강대 교수(종교학)는 “인문학이 방황을 해 스스로의 정통성을 상실했다”며 “현대적 인간관을 정립하고 새로운 인문주의를 부흥시킬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인문대 역시 전통성을 복원하고 국제화 시대에 균형잡힌 패러다임을 갖출 수 있는 장기 프로그램 개발을 준비중이다.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위기.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진리의 상아탑’이란 말이 영원히 사장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 때문에 지금의 상황은 인문학이 죽느냐 사느냐하는 급박한 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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