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은퇴하지 않고 사립대학의 총장을 맡고 있다면 명예욕이 강하거나 재단실권자로의 권력욕이 강한 사람의 노욕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편견을 버리자. 합리적 사고와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경영자라면 총장이 30대이든 70대이든 나이쯤이 무슨 대수랴? 충분히 예견되어왔던, 대학도 적자생존법칙을 적용받게 되리라던 우려가 급기야 대학부도사태로 현실화된 상황에서 만난 방정복 상명대 총장은 칠순을 넘긴, 그것도 여성이라는 편견이 원심력을 작용하는 한국인의 사회정서 속에서도, 무한경쟁시대의 대학을 이끌어 +가는 수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IMF 직전 후배기자로부터 『옛글』이라는 책 한 권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방정복 총장이 엮어낸 옛성현들의 명언(名言)·명구(名句) 모음집이었는데 그 어떤 명언 명구보다도 책속에 꽂혀있는 책갈피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명언 한마디를 골라 사인펜으로 손수 써서 코팅해 만든 책갈피는 철지난 달력을 오려서 만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대학 군살빼기의 하나로 규모를 29평에서절반으로 줄였다는 총장집무실에는 권위를 찾아 볼 만한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 상당수 사립대학의 이사장들이나 총장들은 마치 전제군주처럼 +군림하면서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대학비리의 +항목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데 상명대의 경우 거의 불협화음이없습니다.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항상 총장실의 문을 열어 놓고 교수나 학생 누구나가 쉽게 찾아올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교발전을 위한 건의든 항의든 모든 얘기를 경청합니다. 혼자서 판단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가령 ‘정책기획단’이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대학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하고 결론내리게 합니다. 독단은 비리를 낳을 여지가 있지만 토론과 협의가 +정착된 곳에는 부정이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최근 전국 대학의 보직교수의 판공비 지출비율이 대기업 접대비 +지출비율보다 높다는 통계가 제시된바 있습니다. 그만큼 대학사회의 +거품이 많다는 얘기인데 총장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교수·교직원들이 간혹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저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내에 있는 ‘계당기념관(설립자 배상명박사가 살던 집)’에서 국수잔치를 엽니다. 교직원은 물론 외국대학에서 손님이 와도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이곳을 이용합니다. 외부행사에도 제가 직접 나서려하지 않습니다”

-. 대학이 부도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도대체 대학재정난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대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사견입니다만 대학평가인정제가 미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육부의 대학평가기준이 오히려 대학재정난을 부추키지나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10∼20년전의 전근대적인 평가기준을 제시한 교육부도 문제지만 대학들이 보조금을 한푼이라도 더 타내려고 +활용도가 높지 않은 시설이나 기자재구입에 많은 경비를 투자하는 등의 방만한 경영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거든요. 재정난을 타개할 방안으로 기여입학제가 총장회의에서 논의된 바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교육 정서상 올바른 제도로 정착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는 거품, 즉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 맞습니다. 대학의 방만한 경영구조를 타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상명대의 경우 구조조정 계획이 어느 정도 수립되어 있나요.

“상명대는 구조조정계획의 수립단계를 지나 실천단계에 와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무처의 경우 처장실과 입학과·연구지원실·교무과 등이 제각각 별도의 사무실을 사용하던 것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단일 +사무실을 운영하다보니 사무기기도 따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업무 협력체계도 훨씬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일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야가 있지만 앞으로 52개 학과를 학부로 묶는 통합작업을 마치게 되면 대부분의 거품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 상명대는 여자대학에서 공학으로 전환한지 만 3년이 지났습니다. 전환동기는 무엇이며 변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상명학원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령별 남성과 여성비율의 통계가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많아진다는 통계가 시사하는 바가 결국 남녀공학으로 전환의 필요성을 일깨워줬습니다. 공학 전환에 대해 일부 부정적 견해도 있었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했습니다. 교수 교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거의 대다수가 찬성이었습니다. 구성원의 +의견일치가 결국 공학전환을 3년만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원동력이 되었구요. 공학을 만들어 놓고 보니 캠퍼스의 분위기도 화기 애애해졌습니다.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도 오히려 3배나 많아졌고, 남성 제자를 가지게 된데대한 든든함 때문인지 특히 여자교수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대학은 학문연구와 전수에 매진하는 교수, 지식연마와 인격도야에 힘쓰는 학생,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직원이 삼위일체가 되어야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교수와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입니까.

“아마 어느 대학이든 재정난으로 당분간 교수채용이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겸임교수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실사구시의 학문을 전수토록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도 매우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노벨상을 탄 교수를 초빙하는 것보다는 재직교수들이 우수한 논문을 한편이라도 더 써주길 요구합니다. +우리대학에서 학문적 업적을 쌓는 것이 진정한 대학발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올해부터는 외국대학들에 교육시장이 완전 개방됩니다. 대학부도사태에서 보듯 준비되지 않은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눈앞에 닥친 21세기의 상명대가 꿈꾸는 청사진은 어떻습니까. “2005년을 대비하기 위해 ‘스마트 2005’라는 마스터플랜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대학은 2005년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2000년 1월1일 우리대학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해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쟁체제 속에서는 대학을 특성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서울캠퍼스는 +정보통신분야를, 천안캠퍼스는 예술분야를 특성화시키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년에는 러시아의 볼쇼이대학과 함께 ‘상명볼쇼이발레’를 개원하게 됩니다. 볼쇼이대학의 교수들이 직접 +부임하여 유치원부터 대학원과정의 발레교육을 직접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강사진과 시설을 갖춰 최고의 예술교육기관으로 성장시켜볼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21세기를 앞두고 상명대가 남녀공학 전환에 이어 두 번째로 시도하는 승부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끝으로 총장님의 좌우명이라든지, 학생들에게 자주 해주시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신세대 학생들에 대해 걱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경우도 많지만 건전하고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우리 +대학의 교명처럼 상명인(祥明人)이 되라는 말을 자주합니다. 그리고 교훈처럼 ‘참되고 믿음의 창의적인 지도자가 되라’고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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