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극복 해결책은

“연구 인력이 국가·대학 경쟁력 판가름 한다”

“연구 인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지난 1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정보공시에서 연구력을 입증 받은 포스텍 조무현 연구처장의 말이다.
포스텍은 해외논문 실적과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 순위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조 처장은 이를 우수한 연구 인력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수한 연구 인력이 많이 모이다보니 연구의 질이 높아졌고, 프로젝트 의뢰도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초·중·고교 과학교육 강화해야”=우수 이공계 인력을 확보해야 대학의 연구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마찬가지로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선 이공계 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다. ‘이공계 위기’ 극복을 위해선 인재 양성과정인 ‘교육’ 문제부터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공계 기피의 뿌리는 초·중·고교 교육현장에서부터 싹튼다. 실험·실습이 배제된 입시위주의 과학교육에서부터 학생들은 이공계 진학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국·영·수 위주로 짜여진 시간표와 답만 외우는 과학교육으로는 이공계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

더욱이 최근 발표된 수능 개편안은 과학교사들의 걱정을 더하고 있다. 국·영·수의 중요성은 유지된 반면 과학탐구 과목은 ‘4과목 선택’에서 ‘1과목 선택’으로 축소됐다. 가뜩이나 실험·실습을 접할 기회가 적은 상황에서 과목까지 줄은 셈이다. 전국 과학교사협회 총무 임혁(원목고) 교사는 “이번 수능 개편안으로 학생들은 점차 정규 과학수업조차 참여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과학과목을 자꾸 접해야 친숙해질 기회를 얻는데 이번 수능 개편안은 이러한 여지도 박탈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교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과학수업은 과학자 양성이 아니라 필수 과학지식을 쌓는데 목적을 둬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과학에 대한 상식이 있어야 (학생들이) 문·이과를 넘나들며 선택할 안목이 생기고, 그래야 이공계를 기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성공신화가 절실하다”=앞서 이공계에 진출한 ‘선배’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공계 출신들의 성공신화가 후배들에겐 ‘롤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창업과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김형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공계 기피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벤처 붐’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며 “벤처를 통해 성공한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학생들이 이를 보고 이공계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벤처육성 정책이 이공계 기피를 극복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공계로 진출한 ‘선배’가 졸업을 앞둔 ‘후배’에게 이공계 진출을 자신 있게 권할 수 없다. 이공계 위기 극복을 위해선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이공계에서) 어렵게 공부했지만 취업이 보장되지 않거나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면 어떻게 의대·약대를 당하겠는가”라며 “과기부 통폐합 등 과학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을 중단하고, 국가가 나서서 안정적인 이공계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취업 이후엔 ‘노후 안정성’이 문제다. 특히 석사이상을 마쳐야 취업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공계 특성상, 인문계보다 취업 시점이 2년 이상 늦다. 박사학위를 취득한다면, 30세 중반은 돼야 취업할 수 있다.

연구원이나 교수의 정년은 60~65세다.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기간이 길어야 30년 정도란 얘기다. 평생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의사·약사보다는 매력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개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뒤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한양대 공대 교수는 “현재 이공계 인재의 연봉이 저평가 돼 있는 게 문제”라며 “대학만 해도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열 교수 임금이 호봉제에 따라 비슷하게 책정되는데, 미국의 경우 이공계 교수 연봉이 더 높다”고 말했다. 빠른 기술변화에 따라 인문계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 개선을 주문한 것이다.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 개선” 주문=이공계 연구자에게 자율적인 연구풍토를 조성해 주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와 행정조직 중심으로 진행되는 과제에선 정작 연구자가 하고 싶은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 또 과제수주경쟁이나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연구풍토에선 연구자들이 성취감을 맛볼 수 없다.

한 이공계 학자는 “연구비나 그 외 과제 수주 경쟁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과제를 맡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배려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이공계 기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한 이공계 원로교수는 “1970년대와 80년대 가장 인기있는 학과는 서울대 의예과가 아니라 서울대 물리학과였다”며 “당시 KIST에 들어가면 자동차 비과세에 집도 주고 봉급도 주고 ‘국가과학기술자’자격증도 줬다”고 회상했다. 국가가 과학자를 우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권영근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도 “이공계를 위한 ‘명예로운 상’이나 ‘명예로운 장학금’ 같은 것이 필요하다”며 “이공계 인력에게 ‘자신을 국가가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적은 연봉이나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수출규모는 3640억 달러다. 이는 해방 직후인 1946년보다 무려 10만 배 이상 성장한 규모다. 당시 주요 수출품이던 오징어와 소금은 반도체·자동차·선박·휴대전화로 바뀌었다. 이공계 연구 인력의 노력과 땀이 대한민국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50년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데에도 이공계 인력이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수한 이공계 인력을 얼마나 양성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우수 인재 의대·약대 쏠림은 불행한 일”
    [인터뷰] 권오경 한양대 공과대학장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생 흥미와 성취감을 느끼며 살 수 있지요.”

권오경 한양대 공과대학장은 스스로를 ‘행복한 과학자’라고 칭한다. 공학자의 길을 걸어오면서 흥미와 성취감을 맛봤기 때문이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들로부터 의사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학자의 길을 택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게 공학”이었기 때문이다.

공학자의 길을 택한 권 학장은 이후 수많은 연구업적을 쌓으며 승승장구 했다. 그가 국산화한 핸드폰 전력관리 기술(PMIC)은 국내 휴대폰 업계에 매년 1조원 이상의 비용 절감효과를 가져왔다. 12년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 등록한 특허만 200여건에 이른다. 지난 2007년에는 최고의 과학자만 가입한다는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실에서 밤을 세워가며 개발한 기술이 사업화 되어 전 세계에 팔려 나갈 때의 기쁨은 이공계 학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돈을 받았건 그렇지 않았건 상관없이 제가 개발한 기술을 전 세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요.”

권 학장은 최근 이공계 학부생들의 의대·약대 쏠림현상을 ‘사회적으로 불행한 일’로 규정했다. 그는 “우수한 이공계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하지 않고 의전원이나 약대로 몰리는 현상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모두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기피’에 대한 해소책으로는 연구 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꼽았다. 그는 “학생들이 졸업 후 학교로 찾아와 ‘열심히 공부해도 소용없다’, ‘어차피 회사에서 유능하다고 소문나면 일만 많이 시킬 뿐 돌아오는 게 없다’고 하소연 할 때면 정말 안타깝다”며 “노력과 능력에 따른 보상이 뒤따라야 이공계 인력들이 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 대한민국이 성장 동력에 관한 의견을 묻자, 기술융합시대에도 중심역할은 이공계가 맡게 될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앞으로는 공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인문학까지도 결합된 융합기술이 성장을 이끌 것”이라며 “하지만 융합기술 가운데도 이공계 기술이 가장 큰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신하영·조용석 기자>


 

 
 국가 과학발전 정부 투자가 '좌우'
 세계 최초 인공위성 쏘아올린 러시아의 몰락
 전폭적 정부 지지 받는 중국 과학은 ‘급부상’

 정부 지원이 과학 발전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러시아의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 때 지구상 ‘과학 최강국’으로 꼽히던 러시아는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과학분야 예산이 대폭 축소되며 위상이 추락했다. 올 초 영국의 ‘톰슨 로이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표 연구기관들의 예산은 비슷한 수준의 미국 연구기관의 5% 정도였다. 예산이 줄어들면서 구소련 붕괴 이후 약 8만명의 과학자들이 다른 나라로 떠났다. 그 결과 1980년부터 30년간 전 세계 과학전문 학술지에 게재된 러시아 학자의 논문은 2.6%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신흥 과학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1981년 이후 중국의 과학논문 건수는 64배나 증가했고, 2020년에는 이 부문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연구비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을 앞지르고 있다”며 “해외에서 연구하는 유학생들이 중국 본토와 현지를 오가며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효과를 봤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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