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안팎에 부는 인문학 열풍

카페안 수다처럼… 서서히 생각이 차오른다

지난 2006년 전국 인문대학 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선언한 지 5년여가 지났다. 인문학의 위기는 여전한가, 아니면 기우였나. 그리고 당시 인문대학 학장들의 우려를 업고 2007년 출범한 ‘인문학진흥사업’은 인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본지는 한양대와 공동으로 대학가 안팎에 불고 있는 인문학 바람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1회에서는 대학 안팎의 인문학 열풍을 돌아보고, 2회에서는 인문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점검한다. 이어 3회에서는 인문학의 미래를 짚어본다.<편집자주>

#1. 지난 3일 오후 3시 서울역사박물관. 정인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온 청중들이 속속 강당에 들어선다. 좌석 수는 272석이지만 3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햇수로 4년을 맞이한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는 해마다 신청자가 늘고 있다는 게 주최 측인 인문강좌 운영위원회의 설명이다. 운영위원회 사무국 관계자는 “첫 해에는 자리 채우기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1~2시간이면 다음 주 강연이 모두 마감된다”고 말했다.

#2. 같은 날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여전히 종합 베스트셀러 서가에 꼽혀 있다. 지난 5월 출간된 책은 지금까지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베스트셀러 집계가 시작된 1981년 이후 시와 소설, 실용서가 아닌 인문·교양 단행본이 100만 부를 돌파한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교보문고 직원은 “지금도 꾸준히 나간다. 유명세 때문인지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대학가 안팎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유명세를 탄 이후 서점에는 인문학 관련 책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에서도 인문학 서적들은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에 기반한 CEO의 자세, 기업을 올바르게 이끄는 리더십을 인문학으로 풀이한 서적이 인기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지난 2008년 한국연구재단(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2009년 통합)의 ‘인문학 대중화 사업’ 중 하나인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가 그런 경우다. 매주 토요일마다 300명 이상이 내로라 하는 석학의 강연을 들으러 온다. 최진숙 인문강좌 운영위원회 사무국 팀장은 “마감이 됐는데도 굳이 현장에 와서 강연을 듣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가끔은 400명을 넘기기도 한다. 그래서 매회 강당 밖 로비에 스크린을 설치해 강연을 중계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상당히 아카데믹한 강연이라 오히려 더 인기가 있는 것 같다”며 “강사진을 잘 갖춘다면 인문학 강좌에도 사람이 몰린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대학가 인문학 강좌에도 학생들이 몰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양대다. 지난해 10월부터 학생들의 설문조사로 강사들을 섭외한 ‘인문학 카페’는 연일 만원사례다. 김진묵 음악평론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전원책 변호사 등 각 분야 유명인사가 강사로 나선 덕분인지 호응이 상당하다. 총6회 시리즈 강의에만 무려 1000여명이 넘는 학생이 몰렸다. 한양대 교수학습개발센터 김명지 연구원은 “최근 대학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소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새로운 자성의 계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문학(文)·역사(史)·철학(哲)’에 관한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게 됐다”며 “다른 대학 학생과 일반인도 직접 찾아올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조선대도 인문과학대학과 인문학연구원이 손잡고 2004년부터 매달 ‘인문학 콜로키움’을 꾸준하게 개최한다. 조선대 교수를 중심으로 광주과학기술원, 숙명여대, 연세대 교수가 직접 특강 형식으로 강의한다. 다양한 주제의 ‘문·사·철’을 알기 쉽게 강의해 인기가 좋다. 이재영 인문과학대학장은 “21세기의 큰 흐름인 학문간 융합과 통섭을 시도하는 인문학 콜로키움은 학생 뿐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인문학진흥사업 운영으로 회생 불씨
2007년부터 50여개 연구소 지원 … 올해 484억원 편성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기의 바탕이 된 것으로 ‘인문학진흥사업(HK)’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06년 전국의 인문대학 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선언한 다음해 신설된 사업이다.

당시 인문대학 학장들이 냈던 위기의 목소리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학들이 무한경쟁을 시작하면서 ‘돈 되는 학과’가 늘기 시작했고, 인문학과는 폐과 되거나 다른 학과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의 자리도 좁아졌다. 인문학 계열로 진학하려는 학생들도 대폭 줄었다. 위기론은 이런 가운데 터져 나왔다. 인문학을 지켜야 할 대학이 오히려 입지를 줄이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인문학진흥사업은 대학이 외면하는 인문학을 정부가 나서서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신설됐다. 당시 인문학자들은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보였다. 사업에 선정되려면 정부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지만 당시 인문학은 고사 직전이었던 터라 “환영한다”는 시각이 대세였다. 성태용 당시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은 본지 기고 글을 통해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시점에서 2007년의 인문학 진흥 사업은 참으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며 “300여억원이라는 사상 최대규모의 인문학 진흥을 위한 예산이 확보, 학술진흥재단을 중심으로 인문학진흥사업이 시행되면서 전국 인문학자들이 열풍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15일 2011년도 하반기 인문학진흥사업 계획을 공모했다. 올해 총 484억원이 지원되며,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선정된 52개 연구소에 더해 2개 연구소를 새로 선정한다.



'실용·융합'이 대안이다
 한양대의 수행인문학

그동안 인문학의 위기를 부른 원인에 대해 비 실용성을 꼽는 이가 많았다. 학제 간 융합을 통해 급변하는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전통적으로 ‘공대가 강한대학’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한양대가 ‘실용’과 ‘융합’을 통한 인문학의 발전을 꾀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07년 개설한 한양대의 수행인문학 프로그램은 인문학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수행인문학 프로그램은 기반인문학 6개 전공(국어국문학·중어중문학·영어영문학·독어독문학·역사학·철학) 중 1개 전공과 수행인문학 6개 융합전공 프로그램(과학기술학·공공수행인문학·미디어문화·영어커뮤니케이션·중국어커뮤니케이션·통상한국어커뮤니케이션) 중 1개 전공을 조합해 융합전공을 필수 이수하는 커리큘럼이다. 개설 당시 “인문학의 실용화를 통해 혁신적인 교육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광철 인문과학대학장은 이에 대해 “지난 5년 동안 정부지원을 받으면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후 대학이 이를 정식 커리큘럼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한양대가 공대로 시작해 이만큼 성장한 것은 이견이 없지만, 앞을 내다볼 때 인문학과의 융합은 필수”라 말했다. 이 인문과학대학장은 이에 대해 “한양대 인문학이 한양대 발전역량을 집중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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