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연구자율성 보장 '바텀업' 지원해야"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단장들이 말하는 ‘노벨과학상’
이은규 기초연구본부장 “연구기반 탄탄히…정부 집중 지원 중요”
김동호 자연과학단장 “일단 수상자 1명 나오면 봇물처럼 터질 것”
김준 생명과학단장 “연구비 지원부서 독립, 과학자들 자율성줘야”
[한국대학신문 최성욱 기자] 한국연구재단(연구재단)에서 노벨과학상과 가장 밀접한 업무를 맡고 있는 곳은 기초연구본부다. 노벨과학상은 물리·화학·생리의학 부문에 시상하는데 기초연구본부도 △자연과학단 △생명과학단 △의약학단으로 구성돼 있다. 기초연구본부의 단장들은 국내학자들의 노벨과학상 수상을 어떻게 점치고 있을까.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났다.
<인터뷰 참석자>
- 이은규(이하 ‘이’):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가천대 바이오나노학과 교수·61세
- 김동호(이하 ‘김’):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자연과학단장·영남대 물리학과 교수·56세
- 김준(이하 ‘준’):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생명과학단장·고려대 생명과학부 교수·56세
-노벨과학상이 과학계에서 갖는 위상과 의미는.
이: “과학기술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세계적으로도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나라가 과학기술력도 상위에 있다. 노벨과학상을 올림픽 금메달에 비유한다. 물론 노벨상 받는다고 국민소득이 2만~3만불 되는 건 아니지만.”
-‘스타 과학자’를 많이 육성하면 수상 가능성 있다는 말인가.
이: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대표적이다. 10여년 전, 교토대학에서 신야 교수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특출난 스타가 아니었다. 교토대나 동경대 등 유명대학 출신이 아닌 학자가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일본은 연구기반이 탄탄한 가운데 정부에서 집중적인 지원을 했기에 가능했다.”
김: “일본은 개화기 때 당대 기초과학의 요람으로 인정받던 독일의 카이저빌헬름연구소(막스플랑크연구소의 전신)에 사신을 파견했다. 일찍부터 기초과학을 국가가 책임져야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의 경우 늦게 출발했고, 기초과학에 민간투자가 적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국가투자를 꾸준히 늘려갈 수밖에 없다.”
준: “기술과 과학을 분류하자면 기술은 이론까지만 습득해도 일정정도의 성과가 나온다. 반면 과학은 어느 한 연구자가 하나의 연구주제를 10~30년 지속적으로 붙들고 연구해야 ‘핵심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굳이 비유하자면 노벨과학상은 한 분야에서 수십 년 연구해서 1등에게 주는 거다. 기초과학 전체를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다.”
-연구재단의 역할과 노벨과학상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나.
이: “연구재단에는 의과학을 포함한 기초연구지원 부서가 있다. 전체 지원사업의 약 40%를 자연과학과 생명과학과 같은 기초과학에 집중 지원한다. 연구재단은 연구자가 하고 싶은 주제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바텀 업(bottom up)’ 방식이다. 이렇게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재정지원정책이 뒷받침 돼야 노벨과학상도 기대할 수 있다.”
준: “맞다. 정책과제를 먼저 제시하고 연구자들을 선정하는 ‘탑 다운(top down)’ 방식은 치열한 연구비 경쟁 속에서 자칫 연구를 가장 왕성하게 해야 할 상당수의 40~50대 중견과학자들의 연구를 가로막게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연구기반의 허리가 무너진다. ‘바텀 업’으로 최대한 많은 연구자들을 지원한 후 남은 예산으로 ‘탑 다운’해야 한다.”
이: “학자 1인당 연간 1억~2억 규모로 3~5년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본다.”
-현재 연구재단이 기초과학을 육성하는 대표적인 연구비지원사업을 꼽으면.
이: “연구재단은 일반·중견·리더연구자사업 등 3단계로 나눠서 지원한다. 일반연구자 사업이 4500억원, 중견연구자가 2500억원, 리더연구자사업이 1천억 규모다. 리더연구자사업에 ‘창의적 연구사업’이 있다. 연구자 1인당 1년에 8억원씩 최장 9년간 지원한다. 이 부문에 현재 100여명의 연구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국내학자 중에서 노벨과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보면 된다.”
-연구재단은 그간 ‘SCI급 논문’ 생산에 많은 지원을 해왔는데.
김: “노벨과학상도 초기 진입장벽이 있다. 누군가 한번 받으면 봇물처럼 터질 것이다. 국내학자들이 만들어내는 SCI급 논문에서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비단 20~30년 전만 해도 SCI 같은 세계적인 ‘특급 학술지’에 논문 한 편 내기 어려웠는데, 진입장벽이 깨지니 막 쏟아지지 않나. 노벨과학상 선정위원회가 수상경력이 있는 학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일단 수상자를 한 명이라도 배출하는 게 중요하다.”
-노벨과학상 가능성을 점쳐본다면.
준: “과학자들은 간섭하면 노벨과학상 안 나온다. 자유롭게 만들어줘야 한다. 국내 학계는 지금까지 기술개발을 많이 이뤄냈다. 과학은 맨 마지막에 꽃이 피는 것이다. 연구비를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과학자들에게 자율성을 준다면 시간문제라고 본다. 우선 미국 국가과학재단(NSF)처럼 독립된 기관이 자체적으로 예산 분배를 할 수 있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이: “한국은 국가가 연구개발(R&D)에 재정을 지원한 지 30여년밖에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벨과학상 못 받는다고 조급해 하는 건 무리다. 앞으로 5~10년 정도 더 투자하고 국제화 측면에서 노력한다면 노벨과학상은 자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