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기획]2014 대학에서 사라지는 것들
'함께' 공유하기보다는 '혼자'가 편하다
[한국대학신문 김소연 기자] “동기들과 족구를 하고 땀 냄새를 풍기며 강의에 들어가면 눈치가 보인다. 주변에 민폐라는 생각에 헬스장에 가거나 운동을 안 하게 됐다”
한 때 복학생들의 낙이었던 족구는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운동보다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호한 탓이다. 과거 대학 운동장이나 공터에 모여 족구나 풋살을 하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면 그런 모습은 빛바랜 사진 속에 있을 법하다.
각 대학은 2000년대 접어들어서 교내 기숙사와 여러 건물에 헬스장, 체력 단련실 등 각종 편의시설을 만들었다. 대학가에 이런 편의시설이 생기면서 같이 운동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혼자’ 운동하는 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학생들은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위한 ‘몸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한양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한두 명 모여서 하는 농구는 할 수 있어도 풋살이나 축구처럼 여러 명이 모여서 하는 운동은 사람을 모으기가 어렵다. 학과 체육대회를 해도 참여하는 학생이 적어 함께 운동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도 마찬가지다. 동국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자소서나 이력에 쓸 수 있는 취미 활동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조차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취업이나 스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인기 있는 대외활동에는 지원자가 넘치지만 교양이나 기초 학문을 위한 학술 모임이나 학회는 그 맥을 못 추는 추세다. 자기소개서 한 줄이 되는 활동이 아니라면 학생들 관심에는 멀어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그러졌던 정겨운 하숙집 문화도 이젠 그리운 옛말이 됐다. 함께 사는 것보다 혼자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하숙집에서 정을 나누는 문화는 그저 드라마속의 한 장면이 됐다.대학가 주변 하숙집 자리는 시설 좋은 원룸이 차지하게 됐다. 고려대 M공인중개업 대표는 “학생들이 개인 화장실이 있는 원룸을 선호하지 공동으로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대학 주변에 원룸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15년간 경희대 근처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이정옥 씨는 “이제 하숙 치는 걸 그만둬야 할지 고민 중이다. 재정적 어려움도 있고, 예전보다 더 힘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이 사라진 대학가 풍경만큼이나 교수들 사이의 학문 공유나 치열한 토론의 현장도 자취를 감췄다. 교수사회에서도 학문 공유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아 관계의 단절 더 나아가 교수사회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 인하대 교수(국어교육학)는 “과거에는 학술모임, 세미나, 테니스 모임 등이 활발하게 열렸지만 최근에는 논문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모임에는 시간 낭비라 여겨 교수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교수 사회에서 ‘교수가 논문을 쓰면 논문을 쓴 본인과 논문 평가자, 논문 교열자 단 3명만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학문 공유가 되지 않는 현실을 표현했다.
성과연봉제, 연봉제 등 교수 평가가 강화되면서 교수들 간 협력하고 사회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 학문적 공유와 교류의 빈자리에 논문 업적 대결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 사립대 K교수는 “논문을 많이 쓴 교수는 시샘과 질투의 대상이 된다. 상대 교수의 실적이 곧 나의 연봉 동결 혹은 삭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최근 교수 사회는 지나친 경쟁 구조, 호봉제 교수와 연봉제 교수 간 대립, 연구 압박 등으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대학가에서 사라진 과거 문화는 취업준비와 삭막해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정겨운 하숙문화, 함께 운동을 즐기는 학생, 학문 공유가 이뤄지는 대학가 모습은 치열한 취업 경쟁과 개인주의로 대체됐다. 창가 한 구석에서 혼자 밥 먹는 ‘혼밥’, 각자 공부하다가 식사 시간에만 만나서 같이 밥을 먹는 ‘밥터디’ 등 신조어가 나온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김영 교수는 “개인주의와 과도한 경쟁체제로 사회 문제에 대해 말하는 교수나 학생 등도 줄어들었다. 개인주의, 순응주의, 패배주의 등으로 변한 대학 분위기가 안타깝고 아쉬울 때가 많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