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전자저널 값 천정부지…자료 못 사는 대학도서관
스프링거 출판사 매년 24%씩 구독료 인상 요구에 공동구매 컨소시엄 결렬
직원 ‘감소’ 예산 ‘삭감’ 자료구입은 ‘난감’… 관계자들 “자료구입비 비율 2%는 확보돼야”
[한국대학신문 송보배 기자] 세계적인 학술출판사들의 가격인상 정책 때문에 대학도서관이 눈물을 삼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세계 3대 학술출판사인 스프링거와 대학도서관의 가격협상이 결렬됐다. 문제는 출판사의 무리한 구독료 인상안 때문이었다.
스프링거 e저널(Springer ejournal)은 1차 협상에서 저널 1727종을 묶은 패키지 구독료를 3년간 매년 24%가량 인상해 달라고 요구했다. △1차년도 24% △2차년도 25% △3차년도 24% 등이다. 이후 20% 내외로 조정한 안을 내놨으나 대학도서관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서 출판사와의 가격 협상을 위해 구성된 대학도서관 전자정보 공동구매 컨소시엄이 결렬됐다.
같은 기간 1785종의 저널을 보유한 국내논문검색엔진 KISS도 11.4%의 구독률 인상을 요구해 가격협상에 성공하지 못했다.
대학도서관 관계자들은 학술출판사들이 독점 구조를 이용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문의 경우 A저널에 실린 논문이 B논문에 또 실릴 수 없기 때문에 대학도서관은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출판사 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대형출판사 대부분은 영향력 제고를 위해 출판사의 전 저널을 묶은 패키지 구입을 종용하고 있다. 일명 ‘끼워팔기’다. 대형 학술출판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매년 평균 10% 내외의 구독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대학도서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2012년에는 이런 ‘무더기 판매’가 원인이 돼 세계 3대 학술출판사인 엘스비어(Elsevier)에 대해 미국교수 1만 여 명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김종철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사무총장은 “학술출판사들은 독점구조를 이용해 계속 구독료 인상을 요구해왔다. 단순히 스프링거 한 건만 문제 되는 게 아니라 협상에서 가격 통제가 되지 않는 게 문제다”고 말했다.
■ 대학도서관 예산은 삭감 1순위…인력‧지원 줄어 대응 어려워 = 이번 스프링거 출판사와의 컨소시엄 결렬은 유례없던 일로 대학도서관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스프링거 출판사 자료 수급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이상오 정책위원장은 “대학 내 소장되지 않은 스프링거 저널을 조사해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외국학술지지원센터에 210종에 대한 추가구독을 요청했다. 원문복사서비스와 개별구독 등으로 현재는 스프링거 저널에 대해선 대부분 자료 보완이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이 언제나 마련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위한 대응 인력 또한 부족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대학도서관 직원은 30% 이상 줄었다.
이상오 위원장은 “대체 저널을 마련하려면 사서들이 품을 많이 들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올해 와일리 출판사와 다년 계약 협상이 남아있는데 (결렬된다면)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매년 인상되는 전자저널 가격에 반해 매년 삭감 추세에 있는 대학도서관 예산도 발목을 잡는다.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대학총예산대비 자료구입비는 2012년 1%에서 2014년 0.9%로 떨어졌다. 주요대학도 대부분 자료구입비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다. △경희대 1.4%→1% △덕성여대 1.3%→1% △서강대 1.4%→1.3% △중앙대 1.2%→0.9% △한양대 1.4%→0.9% 등으로 하락했다. 상명대는 1.3%에서 절반 이하인 0.5%로 떨어졌다.
김종철 사무총장은 “사립대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데 가장 삭감하기 좋은 예산이 도서구입비다. 평가지표에 대학도서관 지표가 포함되지 않다보니 예산 확보할 명분이 안 서는 상황”이라며 “당장 1~2년 표가 안 난다고 예산을 줄이면 4~5년 뒤 학생 공부, 교수 연구에 이용될 자료가 없다”고 강변했다.
당장 기성회계 폐지가 확실시 되는 국립대들은 자료구입비 예산이 줄어들 것이란 불안이 팽배하다.
이절자 부산대 정보개발과장은 “현실적으로 도서구입비에 기성회계 비중이 많았는데 국고 편입되는 과정에서 도서구입비 예산은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더구나 최근 시행된 도서정가제도 대학도서관의 사정을 어렵게 한다. 이 과장은 “올해부터는 국내 단행본 구입비에서 10~20%의 부담이 더 가중된다. 결국 이 피해는 자료 이용자들 즉 교수, 연구자, 학생에게 돌아갈 것”이라 전했다.
■ 대학도서관진흥법‧국가라이센스 도입 필요 = 대학도서관이 찬밥신세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대학도서관을 관할하는 정부 부서는 없다. 교육부 담당 사무관 1명이 대학도서관의 현황을 정확하게 알고 또 이들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정책에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장 대학구조개혁 평가방안 마련을 위한 2차 공청회에서도 대학도서관 관련 지표들은 빠져 있다. 1차 공청회에서 당시만 해도 지표가 평가방안에 포함됐다.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는 교육부에 현실적으로 자료구입비 비율을 2%로 확보하는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건의문을 보낸 상황이다.
김종철 사무총장은 대학도서관의 자료구입비 등 기준 마련을 위해 대학도서관진흥법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대학도서관은 관계 법령도 기준도 없는 상황”이라며 “대학도서관진흥법을 제정해 ‘재학생 1000명당 자료를 어떻게 한다’ 이런 법적인 근거라도 만들어야 대학이 투자할 것”이라 강조했다.
국가 라이센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상오 정책위원장은 “출판사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쓰는 것은 가입 기관이 줄어 매출이 정체되기 때문”이라며 “국가 라이센스를 도입해서 국고가 일부 들어가면 전문성이 확대되고 대학부담이 줄어 컨소시엄에 가입하는 도서관이 늘어날 것이다. 결국 출판사도 가입기관이 확대되니 구독료를 낮추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한편 출판사와의 협상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실사용자인 대학 도서관 입장이 컨소시엄에 보다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학도서관 관계자는 “미래창조과학부의 KISTI와 교육부의 KERIS로 컨소시엄이 이원화되다 보니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대학가에서 제기된다. 또 협상기관과 사용기관이 달라 대학도서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며 “대학도서관의 입장이 제대로 전달돼야 하고 사용기관에서도 대체저널 확보해서 공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