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혁신사업 ‘결국 원안 확정’…강원·전북·제주 ‘사업 배제’

‘단일형’ 제외 1710억 예산 확정…복수형 480억, 전환형 150억 등 ‘마지막 희망’ 복수형 요건 ‘유사 산업 가진 도 연합’ 허용 검토 ‘찬밥’ 신세 된 강원·전북·제주 대학들, “사실상 불가능” 비판 지역격차 키우는 지역균형발전, ‘이율배반 비판 피하기 어려워’

2020-12-03     이하은 기자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자료=교육부)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1710억원의 지역혁신 사업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하면서 강원·전북·제주도 내 대학들의 참여 기회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복수형 컨소시엄에 유사 산업을 가진 ‘도 연합’의 지원을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역혁신을 얘기하며 정작 일부 지역에 대한 지원은 원천 차단했다는 점에서 이율배반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예산안 원안대로 통과…‘복수형’ 조건 변경 ‘마지막 희망’ = 교육부는 3일 2021년도 지자체-대학 협력 기반 지역혁신사업(지역혁신 사업) 예산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통해 1710억원으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확정된 예산안에는 복수형 한 곳을 신규로 선정하기 위한 480억원과 올해 선정된 단일형을 복수형으로 전환하는 전환형에 150억원이 반영돼 있다. 나머지 예산은 올해 이미 지역혁신사업에 선정돼 있는 대학들이 내년 받게 될 지원금이다. 

올해 사업과 내년 사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일형’이 빠진다는 점이다. 올해 지역혁신사업은 한 개의 광역시나 도가 개별 지원하는 단일형과 도와 그로부터 분리돼 나온 광역시의 연합, 하나의 도로부터 분리돼 나온 광역시 간 연합 컨소시엄이 지원하는 ‘복수형’을 구분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이 확정됨에 따라 내년 사업에는 단일형 지원이 허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처럼 ‘복수형’ 지원만 허용하는 경우 광역시가 없는 강원·전북·제주 지역은 참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지역균형발전을 기치로 삼는 사업이 정작 지역 간 격차를 오히려 조장하고 심화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제주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고, 대학은 목숨을 걸었다 할 정도로 많이 노력했다. 교육부로부터 ‘혁신적’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자괴감만 든다”며 “소외된 지역은 플랫폼을 구축한 지역과 더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이는 지역균형 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도 일부 지역에만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 '국가균형발전'이란 당초 사업 목적과는 동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교육위는 단일형 한 곳을 추가로 선정하기 위해 300억원을 증액하는 동시에 예산안 예비심사보고서에 사업 선정단계에서 복수형·단수형 유형 구분을 삭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부대의견을 제시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도 이러한 의견에 "수긍한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교육부 내에서도 사업계획에서 유형 구분이 없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본회의에서는 정부 원안대로 의결되면서 일부 지자체가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 논의 중에 유형 구분을 없애자는 얘기도 나왔으나, 결국 정부 원안대로 통과됐다”며 “임의로 사업을 변경하기는 힘들다”고 답했다. 

다만 아직 ‘희망의 끈’은 남아있다. 교육부가 복수형의 조건으로 '유사한 산업을 가진 도 간의 연합'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사업에서 소외될 처지인 강원·전북·제주가 ‘기사회생’하는 반전이 나올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대로 '지역과 인접한 광역시를 묶은 복수형'과 추가로 '유사한 산업을 가진 지역을 묶은 복수형'으로 볼 수 있다는 국회의 의견이 나왔다"며 "국회 의견을 존중해 내년도 초에 기본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학 “현실적·물리적 불가능” 비판 = 지역 대학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그간 대학들은 지역 특성에 맞는 핵심 산업 분야를 선정하고, 학과 구조개편부터 인근 기업과의 협력을 모색해 왔다. 새 조건이 추가되면 불가피하게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한 상황이다.

강원도의 주관대학을 맡은 강원대는 지자체-대학 연계한 강원도 혁신성장 동력 창출을 목표로 의료기기·바이오·첨단부품소재 산업을 핵심 분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지자체 4곳, 산업체 10곳, 혁신기관 등 협력 MOU를 체결하며 사업을 준비해 왔다.

전북대는 스마트농생명·미래수송기계·금융 등을 3대 핵심 분야로 삼고, 관련 학과를 신설했다. 관련 산업체를 찾아 의견을 수렴하고 교육체제를 기획했다. 금융 관련 학과를 만들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방문해 교과과정을 제안받고, 일부 과목에는 현·전임 임직원이 강의하도록 했다.

제주대는 지역미래산업을 중심으로 학과 재조정 등 구조개편을 계획했다. 제주 지역 내 모든 공공기관이 참여하고, 산업체가 참여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참여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해당 대학 관계자들은 “사업에 선정되려면 산업을 억지로 끼워 맞춰야 하는데 말도 안 된다”며 “지역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북대 관계자는 "다른 권역과 협력해 사업을 한다고 해도 예산을 나눠서 각자 산업을 키우는 식이지, 함께 시너지는 내기는 힘들다.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교류회 정도다. 함께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권역 내 대학과 학사교류가 불가능한 부분도 문제다. 지역혁신 사업은 주관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내 대학들이 참여해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학사교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국회가 제안한 대로 유사산업을 가진 도가 손을 맞잡는 경우 이같은 시스템 구축이나 교류는 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 강원대는 지역혁신사업 선정을 위해 강원권 대학과 공유대학을 구축, 플랫폼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전북대도 지역 내 대학과 교육콘텐츠를 공유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코로나19로 생산된 원격수업 콘텐츠를 학점 교류식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들 대학이 구상한 공동캠퍼스나 학점교류는 시간적·물리적 제약 때문에 인근 대학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대학들은 “다른 권역의 대학과 학사교류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