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끄는 ‘괴짜 교수’ 이광형 총장 “‘포스트AI’ 준비, 최고보다 최초”

새 비전을 이른바 ‘QAIST’로 명명 “KAIST는 How 아닌 What으로 연구혁신을 이뤄내겠다”

2021-03-09     허정윤 기자
이광형 KAIST 신임 총장이 '전지의 타고'를 울리고 있다. (사진 = KAIST)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괴짜 교수’, ‘벤처창업의 대부’, ‘드라마 카이스트 실제 인물’은 모두 개교 50주년을 맞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새 수장을 맡은 이광형 바이오 및 뇌공학과 명예교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신임 총장은 KAIST의 ‘새로운 반세기’를 이끌어나갈 첫번째 인물로 선임됐다. KAIST는 8일 대전 KAIST 본원 대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4년의 임기를 시작한다. 취임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막기 위해 유튜브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됐다.

■QAIST, “KAIST는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 이 총장은 당장 직면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학문이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이 총장은 취임식에서 “KAIST는 앞으로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찾아 정의하고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한 글로벌 가치창출에 집중해야 한다ˮ고 말했다. 이어 포스트 인공지능(Post AI) 시대에 대비해 ʻ미래 50년을 위한 KAIST 신문화 전략ʼ을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이 총장은 특히 KAIST가 ‘AI시대’를 마주하는 태도에 대해서 강조했다. 이 총장은 “전 세계  대학과 기업이 AI에 집중하고 있다. KAIST는 ‘포스트 AI시대’를 대비하고 AI가 일상화된 사회를 상상하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최고’보다 ‘최초’가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를 위해 KAIST의 새 비전을 이른바 ‘QAIST’로 명명한 뒤 세부 내용을 밝혔다. Question(교육), Advanced research(연구), Internationalization(국제화), Start-up(기술사업화), Trust(신뢰) 등 다섯 가지 혁신전략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다. 앞서 KAIST가 추구해 온 창의·도전·배려라는 ‘C³ 정신’을 기반으로 ‘KAIST 비전 2031’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 총장은 가장 먼저 ‘질문(Question)’ 창의 인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KAIST 학생들은 너무 공부를 많이 한다. 전공 공부를 10% 덜하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기르는 학생이 됐으면 한다”며 “질문하는 글로벌 창의 인재를 만들기 위해 학생주도의 토론수업을 진행하고 인문학 교육을 강화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인문사회학과를 디지털 인문사회학과로 개편하고 KAIST 내에 미술관과 ‘실패연구소’를 건립하기로 공약했다.

여타 세부 전략으로는 △교수진이 전공 서적 이외의 도서를 선정해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ʻ1 랩 1 독서ʼ 운동 △외국인 교원 15%, 여성 교원 25%, 미래분야 교원 100명 추가 충원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두 번째로 남이 정의해놓은 문제의 답을 찾는 ‘How’ 방식의 연구에서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스스로 정의하는 ‘What’의 방식으로 전환하는 연구혁신(Advanced Research) 방향으로 KAIST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속 가능한 연구 인프라 구축 △창의적·도전적 연구지원 혁신 △1랩 1최초ʼ 운동 △바이오·의료 산업 연구역량 집중 등을 주요 내용으로 꼽았다.

세 번째로는 내·외부의 국제화를 병행하는 국제화 혁신(Internationalization)을 주문했다. △언어를 포함한 문화적 장벽이 낮은 글로벌 캠퍼스 구축 △연구실마다 한 명 이상의 외국인 학생을 수용해 교육하는 ʻ1 랩 1 외국인 학생ʼ 운동 △보스턴·실리콘밸리 등 세계의 주요 연구거점 지역을 기반으로 교수·학생·연구원의 해외 파견은 물론 해외 우수 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 기술사업화의 인큐베이션 허브로 활용하는 ‘해외 국제캠퍼스 구축’ 의지를 밝혔다.

이 총장은 마지막으로 글로벌 가치를 창출하는 기술사업화(Start-up) 전략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기업가정신 교육 강화·산업 현장 및 해외 연수 적극 장려·교내 창업기업을 외부 자본 시장에 연결하는 등 다소 과하다고 평가될 정도로 파격적인 창업지원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연구실별로 최소 1개의 연구실 혹은 졸업생 창업을 권장하는 ʻ1 랩 1 벤처ʼ 운동 △KAIST를 중심으로 대전·오송·세종을 연결하는 혁신성장 생태계를 구축하는 스타트업 월드(Start-up World) 리노베이션 △인센티브 기반의 조직 관리로 역동적인 지식재산관리 체계를 구축해 10년 이내에 연간 1000억 원의 기술료 수입 달성을 목표로 기술사업화 부서의 민영화를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신성철 KAIST 전 총장이 축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 = KAIST 유튜브)

■KAIST의 내일을 기대하는 목소리들 = 취임식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 총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한 인물들이 자리해 의미 있는 축사를 전했다.

신성철 KAIST 전 총장은 “KAIST에서 전임 총장이 신임 총장의 취임식에 참여해 축사를 전하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전 총장은 “반세기 동안 이룬 성공적인 역사를 마무리하고 이 총장은 새로운 반세기를 향한 도약의 발걸음 이끌 첫 번째 수장”이라며 “‘대학’은 말만 많고 실천이 부족한 조직이지만 이 총장은 창발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KAIST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이 총장은 바이오 뇌공학과 융합 기술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고 ‘바람’을 일으킨 사람”이라며 말 대신 포옹으로 축하와 응원을 갈음했다. 

90년대 인기 드라마 ‘카이스트’의 송지나 작가는 당시 어려웠던 집필 과정을 회상하며 “창작 당시 이 분(이 총장)을 잡고 ‘쪽쪽’ 뽑으면 될 것 같았다”며 선경험자로서 이 총장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드라마 ‘카이스트’에 나오는 박기훈 교수는 이 총장을 실제 모델로 두고 만든 캐릭터로 극 중 고정관념을 벗어난 교수로 그려졌고 많은 명대사를 남겼다.  이 총장은 집필 당시 송 작가의 KAIST 취재와 대본 검수를 봐준 바 있다. 극 중 박기훈 교수는 제자들에게 ‘질문의 힘’을 강조했고 실제 인물인 이 총장의 교육혁신도  ‘질문하는 인재’에게 그 중심이 맞춰져 있다. 송 작가는 “KAIST는 반드시 MIT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며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총장의 제자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가 이 총장의 취임식에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이 대표는 1990년대 KAIST 대학원을 다니며 지도교수였던 이 총장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 대표는 넥슨을 창업했던 시절 겪었던 어려움을 당시 지도교수였던 이 총장이 도와줬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석·박사 과정을 배우며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던 20대 시절 교수님(이 총장)이 따뜻하게 챙겨주셨고 (창업하겠다는 꿈을) 아낌없이 믿고 도와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총장이 카이스트의 총장이 된 일은 ‘축복’ 같은 일이라며 힘이 된다면 돕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후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한 10명의 정·재계·학계 인사들이 동영상 축사로 이 총장의 취임을 축하했다. 정 총리는 “이 총장은 도전과 혁신으로 10년을 내다보며 미래를 개척해 온 살아있는 전설”이라며 “질문하는 창의 인재를 양성해 ‘포스트 AI시대’를 준비해 줬으면 한다. 카이스트가 미래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힘을 모아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과 포옹을 나누고 있는 이광형 총장 (사진 = KAIST 유튜브)

■융합의 가치를 일찍이 안 ‘1세대 벤처 창업인들의 대부’ = 이 총장은 1985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임용된 후 지난 2월 18일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임되기 전까지 바이오및뇌공학과와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미래산업 초빙 석좌교수로 재직해왔다. 

1990년대 전산학과 교수 시절 김정주(넥슨)·김영달(아이디스)·신승우(네오위즈)·김준환(올라웍스) 등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을 배출해 ‘KAIST 벤처 창업의 대부’로도 불리는 이 총장은 교학부총장을 비롯해 교무처장, 국제협력처장, 과학영재교육연구원장, 비전2031위원회 공동위원장 등 교내·외의 주요보직을 두루 거쳤다. 

미국 스탠퍼드 연구소 및 일본 동경공대 초빙교수를 지낸 경력의 소유자인 이 총장은 퍼지지능시스템학회장, 한국생물정보학회장, (사)미래학회장, 국회사무처 과학기술정책연구회장, 미국 전기전자학회 산하 인공지능학회(IEEE Computational Intelligence Society) 한국분과 의장, 국회 국가미래전략최고위과정 책임교수로도 활동했다. 올 3월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이다.

일찍부터 학문 간 융합에 눈을 뜬 이 총장은 2001년 바이오와 ICT 융합을 주장하며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설립하고 2009년에는 각각 지식재산대학원과 과학저널리즘대학원을 그리고 2013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미래학 연구기관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을 주도했다.   

이광형 총장은 이 같은 관련 연구 분야 및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공적을 인정받아 백암학술상(기술부문, 1990)을 시작으로 1999년에는 정보문화진흥상 국무총리상과 신지식인상을 비롯해 프랑스정부 훈장(Chevalier, 2003),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상(2012), KAIST 발전공적상(2018),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2016), 대한민국 녹조근정훈장(2020), 국회의장상(2020)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