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디어 생태계라는 ‘면(面)’에서 ‘점(點)’으로서의 인간, 그 독립적 존재로의 회복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점·선·면’에서 구마 겐고는 모던 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면’의 강조로 인한 점과 선의 독립적 의미의 상실을 언급했으며 모던 스타일의 디자인을 넘어 독립적인 점과 선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을 추구해 왔다. 점, 선 그리고 면의 관계를 보면 선을 강조할수록 점의 존재가 약해지고, 면으로 갈수록 점과 선의 존재감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혹자는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결국 면을 이루기 때문에 점은 사라진다고 볼 수 없으며 선과 면에 내포되면서 그 근간이 된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점, 선, 면의 관계는 이처럼 어떠한 시각으로 보는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으며 생태계와 그 속의 사람들 간의 관계도 점, 선, 면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생태학적 관점으로 볼 때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 요소는 단 하나도 허투루 존재하지 않으며 독립적 유기체로 서로 간 긴밀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생태계는 유지된다. 즉 ‘점’으로 볼 수 있는 각각의 유기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생식과 섭식 등 여러 유형의 관계를 통해 선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생식을 통해 후손을 낳아 유전자를 전달함으로써 종을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섭식을 통해 양분을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며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결국 독립적 유기체들 간의 연결이자 ‘선’의 형성을 의미한다. 다양한 층위의 유기체들 간 연결은 유·무기적 환경과의 추가적 관계를 통해 생태계를 구성하는 ‘면’으로 거듭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인간의 삶을 살펴볼 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면 ‘점’으로서의 독립적 유기체임을 확인할 수 있고 반려동물을 돌보거나 친구들을 만나 어울리는 자신은 동물이나 타인과의 관계로 연결돼 있는 ‘선’을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을 벗어나 높은 산에서 도심을 내려보면 각각의 점과 선은 사라지고 수많은 점과 선들로 이뤄진 ‘도심’이라는 면만 보게 된다. 이처럼 생태계라는 ‘면’ 속에는 여러 독립적 유기체가 ‘점’으로 존재하면서 ‘선’을 이루고 살아간다.
이처럼 인간 사회도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각각의 인간이라는 점들이 모여 관계를 맺고 ‘선’을 이루며 연결돼 결국 ‘사회’라는 면을 구성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최근 들어 선과 면의 구성이 미디어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수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주변인들과 상시적으로 연결되면서 온·오프라인 공동체를 구성하고 유지한다. ‘미디어 생태계’는 기술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끊임없이 변형되는 면으로 재구성, 재정의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할 것은 ‘점’과 ‘선’이 갖는 독립적 존재성의 회복이 얼마나 가능할까라는 부분이다.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상시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의 편재성으로 인해 개인이 오롯이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점’으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디어를 통한 연결은 자주 강제되고 있고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현실 기반의 플랫폼 활용의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은 점보다는 선을 그리고 면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 콘텐츠 이용에 있어서 에이전시를 상실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타인과의 연결마저 강제되어 간다면, 개인의 ‘점’으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하기란 요원할 것이다.
인간이 공동체와 사회를 이루고 사는 한 ‘점’으로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에서 물방울 무늬라는 점을 통해 선과 면을 구성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듯이 미디어를 보다 ‘주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개인의 존재가 엄연히 살아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