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의 진로코칭]난 휘둘리기 싫은데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2022-04-26     한국대학신문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관.

“난 휘둘리기 싫은데….”

이 말은 필자의 큰아들이 제 엄마에게 전화로 한 말이다. 평소에는 엄마 말을 잘 듣던 아들인데, 엄마의 의견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 것이다. 지금 아들은 대학교 2학년이다. 그는 바이러스의 인류 침범에 의한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진로 목표를 세웠고,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싶다면서 생화학을 공부한다. 그런데 아내는 아들이 전공을 바꿔서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공부하라고 종용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컴퓨터와 인공지능 관련 직종의 보수가 좋고 취업도 잘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했다. 늘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아들은 어느 날 이런 얘기를 했다. 화학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교양으로 공부한 컴퓨터 관련 과목이 훨씬 쉽고 성적도 잘 나왔다는 것이다. 그 말에 필자 부부는 아들이 컴퓨터를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최근에 인공지능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처조카 사위가 세계 최고의 플랫폼 기업에 고액의 연봉으로 채용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몇 년 전에는 필자의 친구 아들이 컴퓨터를 공부해 세계적인 컴퓨터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을 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친구 아들은 필자 아들이 다니는 대학과 같은 대학 출신이다.

그런 소식은 아내를 더욱 조바심 나게 했다. 아들이 컴퓨터 관련 공부를 해 진로를 찾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진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모두 소비하고 좋은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아들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생각한 아내는 아들에게 인공지능을 공부하라고 계속 종용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알아서 잘하겠노라고 대꾸를 했고 지속되는 엄마의 요구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생화학인데, 재미있고 쉬운 것은 컴퓨터야. 하지만 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도 잘 알아요.”

아내는 머쓱해지면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리고 처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처조카도 의과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생화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돈을 벌기 위해 일 년간 회사에서 일하기로 하고 직장을 알아봤다. 눈에 띄는 직장 가운데 조카가 원하는 직종은 없었다. 미국 실리콘 슬롭스(Silicon Slopes)의 한 스타트업 컴퓨터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지원했다. 의대를 준비했기에 컴퓨터는 별로 공부한 것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조카의 대학 성적이 워낙 우수했고(4.0 만점에 3.9), 연구조교나 다른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등을 잘했기 때문에 채용된 것이다. 종합적으로 사람을 평가해 인재를 판단하기 때문이란다. 

조카는 입사 후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이 생소했으나 생화학보다는 컴퓨터가 더 적성에 맞았고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과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계속 개발자로 근무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아주 작은 하나의 스타트업이었던 회사는 몇 년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연 매출 18조원이 넘는 큰 회사로 성장했으며 조카는 상당히 높은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입사할 때 스톡옵션으로 받은 주식이 상장되면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런 아내의 이야기를 들은 아들의 표정은 거북스럽게 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더러 전공을 바꾸라고 하는 거지? 아이, 난 휘둘리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옆에서 그러지? 난 휘둘리고 싶지 않아. 내버려 두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가 부자로 살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욕심이다. 하지만 그 욕심은 부모의 생각에서 끝나야 한다. 부모의 입을 통해 자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자녀는 어떻게 될까? 자녀가 부자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녀의 도전에 긍정적인 믿음을 보여주고 격려해줘야 한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도전하는 여정이 그의 인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리라.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