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전문대교협 공동기획①] 고등직업교육 혁신의 출발점, ‘직업교육법’ 제정
안정·체계적 직업교육 환경 운영 도모, 재정 위기 해소에도 도움 교육기본법, 타 교육기관에 비해 직업교육 관련 법령 부족 직업능력개발원, “해외 우수사례 참고한다면 실마리 얻을 것”
[한국대학신문 우지수 기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해 종사하는 일’, 직업(職業)의 정의다. 청년들의 실업 문제부터 퇴임 황혼기의 노후 일자리까지 오늘날 사회문제의 상당수가 직업과 연관돼 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을 교육하는 단계를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교육이란 누가,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효율과 결과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고등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 역시 시대 흐름에 맞는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대교협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에서는 직업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새 정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본지와 전문대교협은 이번 공동기획을 통해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고등직업교육의 과제와 대안을 함께 모색한다. <편집자 주>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사회 도래 등 교육 환경이 긴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직업교육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직업교육 패러다임 전환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문대학은 대한민국 직업교육의 혁신을 외치고 있다. 변화된 환경을 직업교육 혁신의 계기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직업교육 혁신을 뒷받침할 근거법령이 없다. 전문대학가에서는 방치돼 해묵은 법들을 손보고 직업교육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내려 우리 사회의 직업교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 역시 공약을 통해 지자체와 전문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특화 직업교육 환경 조성을 예고하며 직업교육 혁신이 가시거리 내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 고등직업교육 혁신의 첫 단계, 직업교육법 제정 = 전문대학가에서 가장 먼저 주장하는 것은 ‘직업교육법(가칭)’의 제정이다. 현재 시행 중인 직업교육에 관해 교육기본법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단 한 줄에 불과하다. 하위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아 직업교육 정책 추진과 이를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직업교육·직업훈련을 통합하는 법이지만 대부분이 현장실습 중심이기 때문에 전문대학의 직업교육을 대변하기에는 한계를 가진다는 문제가 있다.
교육기본법에서는 다양한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있다. 이 중 교육기본법 제9조 학교교육과 제10조 평생교육 항목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정하기 위해 고등교육·초중등교육·유아교육·평생교육법을 정해놓았다. 각 교육을 진행하는 교육 담당자들이 참고할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하지만 교육기본법 제21조 직업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모든 국민이 학교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직업에 대한 소양과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실시해야 한다”며 국가와 지자체의 직업교육에 대한 의무만 명시했을 뿐 교육을 담당하는 개별학교가 참고할 사항은 정해두지 않았다.
직업교육법을 제정했을 때 직업교육계가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효율적인 직업교육을 계획하는 데 존재했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고등·초중등·유아·평생교육법을 살펴보면 △고등교육법의 고등교육재정지원기본계획 △초·중등교육법의 교육과정후속지원계획 △유아교육법의 유아교육발전기본계획 △평생교육법의 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 등 5년 주기로 주요 교육 추진과제 및 추진 방법을 수립하고 이를 정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법이 제정되지 않은 직업교육은 공식적인 기본계획도 수립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도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로는 전문대학이 처한 재정적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전문대학이 지원받는 정부 재정지원은 OECD 평균 47% 수준에 불과하며 고등학생과 비교해 전문대생이 지원받는 금액 역시 37.5%로 부족한 실정이다. 5년 주기로 발표하는 교육 기본계획은 안정적인 교육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교육 운영에 있어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할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등교육법에서 정한 고등교육재정지원기본계획에서는 △재정지원의 목표와 방향 △대학의 재정 여건 전망 △사업의 성과관리 계획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재정 배분 계획 등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고등교육기관에 대해 체계적인 재정 지원을 시행해 사업 간 장기적인 연계성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직업교육법을 제정해 재정지원계획까지 수립할 수 있다면 전문대의 안정적인 재정 확충과 효율적인 직업교육 운영을 기대할 수 있다.
추가로 직업교육법 제정에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직업교육을 운영하는 주체에 대해 더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는 기존 직업교육을 맡았던 전문대학뿐만 아니라 일반대학, 폴리텍대학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직업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전문대들은 직업교육 역할과 기능이 중복되고 있어 교육 비효율이 발생하며 국가 재정적으로도 손실이 큰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고등·초중등·평생교육법에는 참여 대상이 세부적으로 명확히 지정돼 있어 운영에 대한 혼선이 적다. 직업교육법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직업교육 정책의 주체를 정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지난해 3월 고등직업교육연구소의 자체조사 결과 전체 190개의 일반대학 중 약 60%인 약 114개 대학 520여 개 학과에서 전문대에서 운영 중인 직업학과와 유사한 학과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등교육법 47조(전문대학의 교육목적은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데 있다)에 배치되는 현상이며 이를 시급히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업교육을 다루는 또 다른 법률인 ‘직업교육훈련 촉진법(약칭 직업교육훈련법)’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도 직업교육법 제정은 필요하다. 직업교육훈련법은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의 연계를 명확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직업교육법이 없어 직업교육과 직업훈련에 대해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업교육훈련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한계가 있다. 직업교육훈련의 정의도 취업과 직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에 초점을 두고 직업적 소양 개발이나 중등단계·고등단계 직업교육의 역할은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직업교육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직업교육훈련법에서는 중점적으로 다루는 직업교육훈련기관은 ‘직업교육훈련을 실시하는 기관 또는 시설’로 규정될 뿐, 전문대학이 직업교육훈련기관에 포함되는지 등의 정보는 명시하지 않는다. 현장실습으로서의 직업교육에 대한 조항들이 주를 이뤄 전문대에서 운영하는 고등직업교육 형태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직업교육과정 간의 연계성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문대교협은 현재 중등직업교육(특성화·마이스터고)과 고등직업교육, 평색직업교육 간 유기성이 부족해 효율적인 직업교육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현재 운영 중인 연계직업교육은 기관 간 교육 내용과 기대 성과에 큰 차이가 없다. 특성화·마이스터고 학생들도 연계교육과정으로 전문대학에 진학하며 향상된 전문직업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비전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직업교육법에서 확립된 직업교육기관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과정 간 단계별 교육방침을 정한다면 중등직업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습자들이 고등직업기관으로 진학해 다음 단계의 직업교육을 받게 된다. 강화된 직업교육의 연계는 뛰어난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
남성희 회장은 “직업교육법 제정에 성공해야 전문대가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일반대와 법적으로 동등한 위치를 얻고 직업교육중심대학과 학문연구중심대학으로 역할 재구조화가 정립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대학 간 서열화를 해소하고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학부모의 부담과 국가 재정 낭비까지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직업교육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결국 직업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교육 환경의 대전환기 속에서 전문대학은 고등직업교육전문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찾으려 노력한다. 방성용 전문대교협 홍보팀장은 “대한민국 직업교육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양직의 직업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직업교육법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직업교육법, 시행하는 해외 사례는 =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부터 직업교육의 메카 독일까지 해외에서는 일찍이 직업교육에 대해 상세한 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오랜 시간 시대에 맞게 법을 개정하면서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직업교육을 정착시켰고 이제는 4차 산업혁명에 어울리는 형태로 개혁하는 과정에 있다. 해외 선진국에서 실시하는 직업교육법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대학 상황에서 참고할 만한 사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직업교육훈련 프로그램과 제도가 다양하고 이를 운영하는 기관 또한 많기 때문에 직업교육훈련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미국은 직업기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1963년에 직업교육법(Vocational Education of Act)를 제정 후 꾸준히 개정·운영하고 있다. 세부 내용으로는 연방정부 교육부가 직업기술교육의 개발과 보급 및 평가와 연구 등을 담당하고 주 정부가 직업기술교육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를 개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직업교육을 얼마나 이수했는지에 따라 두 단계(집중자·참여자)로 구분해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등 직업기술교육의 효과와 질을 높이기 위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책무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20년 1월 발표한 《외국입법 동향과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시대변화에 따라 직업교육법을 계속해서 개정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직업교육 법률은 변화하는 교육 환경을 입법에 반영하는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조인식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의 직업교육 관련 법률을 시대 흐름에 맞게 적용하고 직업교육기관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재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직업기술교육의 충실한 수행을 위해 예산지원 등과 관련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 역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은 직업교육훈련법(Berufsbildungsgesetz, BBiG)을 1969년에 수립했고 2005년, 2019년 개정해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직업교육기관의 범위를 법으로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총 4종류의 교육기관으로 분류하며 각 기관마다 직업교육에서 맡는 역할이 다르다. 일부는 특정 기관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다음 단계의 교육기관에서 배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직업훈련 시행규칙 역시 독일에서는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직업훈련 준비 △직업훈련 △직업연수 △전직교육 총 4단계로 각 단계에 해당하는 교육 목표를 상세히 정해놓았다.
기본적인 직업교육법이 확립된 독일은 이제 직업교육의 디지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노동의 과제 △직업의 형태 △직업교육 전반 △전문가의 수요와 공급 등 변화의 흐름을 감지했다. 독일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기술의 고도화로 판단하고 디지털 직업교육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은 직업교육법이라는 별도의 법체계가 명문화돼있지 않다. ‘학교교육법’과 ‘산업교육진흥법’이라는 두 법령에서 직업교육을 다루는데, 직업교육에 산업체가 참여하고 학교와 산업체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일본은 중등단계 직업교육기관이 적고 직업전문학교를 넓은 범위로 운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에게 1~2년의 단기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노동시장으로 빠르게 투입한다.
일본에서도 직업교육기관의 정의를 법률로 정한다. 전문대학 역시 직업교육기관으로 기능이 명시돼 있다. 일본은 이 내용에서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을 담당하기 위한 실용·응용 능력을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 전문대학은 문부과학대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 직업 관련 사업을 하는 자, 기타 관계자와의 협력 교육과정을 편성·실시한다”라며 전문대학의 목적과 함께 직업교육과정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시한다.
대만의 경우 ‘상부에 정책이 있고, 하부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기조로 직업교육에 임한다. 정부 차원에서 국가 전략자산으로 직업교육의 유무형적 가치를 인정하고 직업교육 발전을 위한 본분·협업·책임성 등을 명료화했다. 대만의 교육 구성원들은 직업교육이 바로 지역발전이라는 인식으로 정부, 대학, 산업체, 지역사회 간 상시 소통 플랫폼을 형성한다.
대만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직업교육의 목표인 실무능력·혁신능력·고용능력을 갖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직업교육의 개혁 및 새로운 발전전략을 담은 ‘기술 및 직업교육 정책 강령’을 2017년 3월 공포했다. 이 강령의 주요 내용은 △직업교육을 평생교육까지 이어지도록 유도 △전문적 기술 가치관 교육 △보다 더 실용적인 학습 방식 △교사들에게 직업교육 특화 교수능력 배양 △학습 성과별 산업체 분류 및 등급 시스템 구현 △산학협력을 강화해 사회의 수요에 걸맞는 인재양성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외 직업교육법 사례에서는 공통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직업교육과 이를 시행하는 기관에 대한 정의가 뚜렷하다는 점과 직업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진행방향, 평가방안을 법으로써 정해뒀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전문대학들이 직업교육법 제정을 통해 주창하는 목표와 일맥상통한다. 직업교육법 제정을 추진하는 전문대학가와 이를 검토하는 정부는 우수한 사례들을 참고해서 더 안정된 직업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