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대학법’ 제정, 미룰 수 없는 과제…“대학 구성원 자율성 확보와 투명 경영도 함께 이뤄져야”
교육부, 대학 재정확보 명목으로 잇따른 사학법인 규제 완화…대학가 ‘불투명 경영’ 우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사립학교법’ 문제점 제시하며 ‘사립대학법’ 제정 본격 추진 수익 규모·활용 공개 방안 반드시 수반, 임시변통 아닌 ‘사립대학법’ 제정 제도적 개선 필요 임상혁 숭실대 교수 “사립대 문제 해결을 넘어 우리 교육법 체계 정상화에 역할 할 것”
[한국대학신문 우지수 기자] 사립대학들이 직면한 재정난을 해소하고, 대학 운영을 더욱 투명히 하기 위한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사립대학법’ 제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사장 양성렬, 이하 사교련)은 교육부가 제시한 사립대학 재정 여건 개선안은 대학법인에 큰 권한을 주기 때문에 결과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에 다시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맡기는 데에 우려를 표했다.
사교련은 지난 6월 20일 사립대학의 재정여건 개선을 위한 교육부의 지침 개정에 대해 비판하는 ‘사립대 재정여건 개선 위한 지침 개정’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같은 달 14일 교육부는 사립대학법인이 보유재산을 활용할 때 수익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등 유연성을 더하는 재산규제 완화 발표를 낸 바 있다.
규제 완화 내용으로는 △기준을 초과하고 교육·연구에 활용하지 않고 있는 유휴 교육용 기본재산에 대해 교비회계의 보전 없이도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 △교지 확보율 기준을 충족하고, 학교법인이 적정 비용을 부담할 경우 교지 내 수익용 기본재산 건물 건축 가능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 처분금의 용도를 확대하거나 유휴 교사시설 내 입주 가능 업종 규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 등으로 교육부는 이를 시작으로 대학설립·운영규정 전면 개편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정책에 대해 사교련은 대학의 재정난으로 현재 사립대의 재정 상황은 대학의 경쟁력, 규모, 편제, 지역 여건 등에 따라 다르니 규제의 효용성을 검토하고 횡령 등 부정적 사용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교련은 관련 성명에서 “교육부의 자의적 지침 개정을 통해 사립대 법인의 재산규제를 완화하고, 이를 통해 대학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투명성이 검증된 대학과 검증되지 않은 대학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수익 규모와 활용을 공개하는 방안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며 임시변통적 지침 개정이 아니라 법률 제정을 통한 제도적 개선으로 귀결돼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사립대학법’ 제정으로 대학 거버넌스 개혁, 법인 중심 법률 체계에서 벗어나야 = 사교련은 이런 사립대학 문제는 단순한 정책 개정 차원의 접근으로는 해결이 어렵다고 말한다. ‘공영형사립대’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몇 년간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그쳤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사립대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교련은 ‘사립대학법’이라는 법률 제정을 통해 특별법과 특례법으로 운영되는 교육 법령을 근본적인 부분부터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고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은 대학의 자율성을 위한 대학 자치, 교수의 교권, 직원의 권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보호해줄 수 없고, 평교수의 자율기관인 교수회 등의 기관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아 법적 허점이 많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고등교육법과는 다른 포괄적인 ‘대학법’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사교련은 지난해 11월 대학법의 일환인 ‘국립대학법’이 국회에 발의된 바탕 역시 국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서인 만큼 이제 사립대학법도 제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기존 사립학교법에서는 국공립과 사립 교원을 구분하지 않아 그 특성을 반영할 수 없으며 학교법인과 학교경영자에 대한 사항이 각각 제2, 3장에 위치하고 교원은 4장에 놓임으로 마치 교원이 사학법인이 고용한 직원의 성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독일 대학법에서 교원과 학생을 규정의 중심에 놓는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립대학법은 대학 거버넌스 개혁과 구성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인 중심으로 규정된 기존 사립학교법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다. 사립대학의 세부 사항은 △대학 구성원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 △정해진 개념을 바탕으로 대학의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한계 설정 등이 주축을 이룬다. 이로써 대학 본연의 임무인 교육과 연구를 이행하기 위해 대학 운영질서에 합리적으로 동참하고 모든 구성원이 투명한 대학운영을 위한 책무 또한 성실히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순준 사교련 자문위원장(동의대 교수)은 “사립학법은 대학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절 제정된 법이다. 이 법이 선진국이 된 한국의 당시보다 몇 배 많은 대학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유치원, 초중등학교와 같은 범위에서 시대 흐름에 대응하라는 것 역시 억지스러운 요구다”며 “대학의 호시절은 이제 막을 내렸고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재정위기를 맞닥뜨린 사립대학들은 정부에 인건비를 포함한 일반재정지원을 기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사립학교의 모든 재산은 학교법인의 사유재산이라는 것은 이제 낡은 주장이다. 자주성을 내세워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일부 대학들의 시정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임상혁 사교련 이사(숭실대 교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생을 교육하는 사립대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국 대학의 장래, 국민 교육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의 가장 많을 부분을 담당하는 사립대학의 지위와 역할을 연구·교육 중심으로 규정하고,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뽐낼 수 있는 자율성과 대학의 투명한 경영이 함께 이뤄지기를 바란다”며 “사립대학법의 제정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다가왔다. 사립대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지엽적인 효과뿐 아니라 우리 교육법의 체제를 정상화시키는 데 결정적 이바지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법률 제정에 앞선 ‘규제 완화 3종 세트’ 검토 필요 = 지난 9일 숭실대에서 사교련이 ‘사립대학법 제정을 위한 기초준비, 대학설립운영규정 완화의 문제점 및 대안’이라는 주제로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행사는 사교련이 추진하는 사립대학법 제정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됐다. 발제를 맡은 박순준 자문위원장은 ‘대학설립운영규정 완화의 문제점 및 대안’에 대해 우선 발표했다.
박순준 자문위원장은 한국대학법인협의회의 사학규제 반대에 대한 목소리, 일부 사립대 총장들의 장기집권과 사립대학의 교비회계 적립금 추이 등을 먼저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대학의 어려운 현실 속에도 억대 연봉의 총장들과 일부 전문대학이지만 1000억 원이 넘는 적립금을 보유한 학교도 있다”며 “법인이 학교를 위해 기본재산을 확보하고 구성원들을 위해 운영해야 하는데,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규제 완화 3종 세트, 대학법인 숙원사업 완성의 길’이라는 슬로건으로 세 가지 규제 완화 안건에 대한 검토과제를 설명했다. 먼저 앞서 설명한 정부의 사립대학 여건개선을 위한 재산 관련 규제완화의 재검토다. 갈수록 악화되는 사립대학 재정 여건의 개선을 위해 대학들이 다양한 경로로 재정을 확충할 수 있도록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유휴 기본재산의 수익용 용도변경 기준 완화와 건물 건축, 교내입주업종 네거티브 등을 발표한 내용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다. 사교련은 ‘사립대학 재정여건개선 협의체’의 구성이 교육부, 한국사학진흥재단, 한국사학법인연합회, 학교법인 관계자, 재정회계 분야 전문가 등 사학 운영의 주체들로만 이뤄졌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에 더해 대학 구성원의 정당한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교수와 학생, 직원 대표를 포괄하는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두 번째는 대학설립 운영규정 개정안에 대한 비판이다. 지난 16일 교육부가 대학설립·운영 4대 조건에 대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사학법인의 학교에 대한 교육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전임교원을 뽑아야 하는 하한선도 낮춰 신분 불안정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개정 시안에 따르면 사립대학은 앞으로 연간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과 수강료 수입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 시 법정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완화한다. 매년 기준 달성을 위해 수익용 기본재산을 키워야 하므로 학교법인이 수익을 창출해 대학 교육 투자에 쓰게 하는 취지와 벗어난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학법인이 대학에 대한 투자를 더 줄이도록 고삐를 풀어 줬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양성렬 사교련 이사장은 “사학법인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해 대학 구성원들의 신분이 파리 목숨으로 전락하고 교육의 질 역시 떨어질 것이다. 전임교원을 뽑지 않아도 되니 교원 관리도 크게 악화될 것”이라며 “대학은 기초학문 분야에 속하는 학과들의 정원을 축소시키거나 폐과 조치를 임의로 단행해 학문의 심각한 불균형 발전을 가속화 시킨다. 교원 부족에 시달리는 인기 있는 학과들의 정원을 급속히 늘려도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순준 자문위원장은 마지막 과제는 관련 법에 대한 검토라고 이어 설명했다. 교육부가 대학의 재무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매년 재정진단을 진행하고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대학을 경영위기대학으로 지정한다. 그 대학들의 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적립금 사용, 재산 처분, 통폐합 시 설립 기준과 정원에 대한 규제 특례를 인정하도록 했다. 또 대학재정지원에 관한 법안 ‘대학균형발전특별회계법안’,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안’,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 등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해 사립대학법에 앞선 대학의 재정난 해소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박 위원장은 “사학법인의 사적 소유권과 사립대학의 공공성 사이의 모호한 관계는 정리돼야 한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립대학법 제정에 나서고, 대학교원이 대학 교육의 주체라는 동질성을 바탕으로 국·사립 교원신분 차이를 합리적으로 규정하기 위해 ‘대학법’ 제정에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