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5주년 특집/학문 후속세대 진단] 외국인 석·박사 비율 15년 만에 4배 늘어…국내 학문생태계가 위험하다
국내 일반대학원, 부족한 정원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워 매년 외국인 유학생 비율 높아지지만 절반은 언어능력 ‘미달’ 외국인 유학생 증가 이면엔 학문 후속세대의 ‘괴멸’ “정부, 학문 후속세대 양성 위한 세밀한 대책 마련해야”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최근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석‧박사 비율을 높이면서 국내 학문생태계를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 세계적으로 해외 유학생을 활용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는 만큼 이런 추세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국내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대학원 재적생은 총 33만 6596명으로, 이 중 외국인 유학생은 4만 8153명(14.3%)에 달한다. 2008년 1만 2388명(4.1%)에서 15년 만에 약 4배가 늘어났다.
정부도 외국인 유학생 확대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교육부는 지난 8월 현재 약 16만 명인 외국인 유학생을 2027년까지 30만 명을 유치하겠다며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Study Korea 300K Project)’를 발표했다.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 신기술 분야와 제조업 분야의 인재 부족을 외국인 유학생 유치 및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해 해결하기 위함이다. 스터디 코리아에는 정부초청장학생(Global Korea Scholarship, GKS) 사업 확대, 해외 연구자의 국내 유치를 위한 재정지원 확대 등이 담겼다.
특히, 신기술분야 첨단학과 중심 ‘R&D 과정’을 통해 산업 수요가 높은 이공계 석·박사생 비율을 2022년 30%에서 2027년 45%까지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GKS 수혜인원을 600명까지 늘리고, 이중 이공 석·박사를 2700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번 방안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 첨단분야 경쟁력 확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국내 대학을 통해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현장과 소통하고 제도적 뒷받침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국내 일반대학원 10곳 중 9곳은 정원 못 채워…‘대학원도 수도권 쏠림’ = 매년 외국인 유학생의 숫자와 비중은 늘고 있지만 국내 대학원의 현실은 암울하다. 학령인구 감소 여파가 대학을 넘어 대학원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국내 일반대학원 188곳 중 89%인 167곳이 올해 신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원은 2021년 91%, 2022년 93.5%, 2023년 89%로 10곳 중 9곳은 매년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반전형 재학생에 정원 외 학생을 합한 재학생 충원율이 미달인 대학원은 83개 대학원으로 46%로 줄어든다. 이는 상당수의 일반대학원이 부족한 학생을 정원 외 입학생인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학의 위기는 대학원생 모집에서도 나타난다. 대학원생 재학생 충원율 현황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109.8%, 경기‧인천이 114.9%, 충청권이 116%로 타 권역보다 높았다. 대경강원권과 부울경권의 경우 100%에 못 미치는 90%대를 기록했다. 즉, 대학원 또한 일반대학과 마찬가지로 수도권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원 외 충원율의 경우 대부분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워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정원 내 충원율과 재학생 충원율의 격차가 큰 지역은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봤을 때, 비수도권 지역에서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충청권과 호남제주권이다.
충청권의 경우 정원 내 충원율은 90.3%, 재학생 충원율은 116.0%로 두 충원율 간 격차는 25.7%였다. 호남제주권은 정원 내 충원율 76.6%, 재학생 충원율 103.3%로, 두 충원율 간 격차는 26.8%로 비수도권 지역 중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 외국인 유학생 수는 늘었지만 절반은 언어능력 충족 못 해 = 국내 대학들이 대학원생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 비율을 높이고 있지만 이에 따른 문제점도 지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능력이다.
서 의원에 따르면 국내 고등교육기관(대학, 전문대학, 일반대학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 중 학교에서 요구하는 언어능력 충족자격을 통과한 학생의 비율이 50%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외국인 유학생 및 어학 연수생 표준업무처리요령’에는 국내 대학원 입학 시 일정 기준 이상의 한국어 또는 영어 능력 수준자 선발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어의 경우 TOPIK(한국어능력시험) 3급 이상, 영어는 토플 530 이상에 상응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졸업 시에는 4년제 대학과 대학원은 TOPIK 4급 이상을 취득해야 졸업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 중 TOPIK 4급 이상 혹은 토플 530점 이상 등 대학에서 요구하는 언어능력 충족 자격을 갖춘 학생의 비율은 지난 3년 기준 2021년 47.3%에서 2023년 47.4%로 큰 변화가 없었다. 대학원의 경우 2021년 44.2%에서 2023년 48.2%로 다소 증가했지만 여전히 50%에는 못 미쳤다.
문제는 대학 및 대학원의 전공 수업에 쓰이는 전문적인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TOPIK 4급에서 5급 이상의 한국어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즉, 외국인 유학생 중 절반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외국인 유학생의 이해도에 맞춰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대학교육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서 의원은 “교육부가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한다고 했는데 이는 5년 만에 유학생을 지금보다 2배 이상으로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라며 “학령인구 감소와 학생들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면서 학생 모집이 어렵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으로 돌파구를 찾는 상황은 이해되지만, 기본적인 언어소통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유치하는 것은 수업의 질 하락과 및 국내 고등교육 신뢰도 문제로 대한민국 학위의 국제적 신뢰도까지 무너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학령인구 감소가 쏘아 올린 학문생태계 위기 = 대학원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학계에서도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석‧박사를 취득하고자 하는 국내 학생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위치한 대학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가 국내 학문생태계 괴멸 위기로 몰고 있다”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대학도 줄어들고, 교수 자리도 줄어들 것이란 전망에 학문 후속세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이공계보다는 인문‧사회계열에서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초학문 관련 학과의 경우 졸업 후에 취업에 직접적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학문 후속세대 괴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서울권 한 대학의 기초학문 학과의 경우 석사 지원자가 2, 3년에 한 명씩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 대학에 교수 자리가 없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들 중에서도 10여 년간 국내로 돌아온 이가 없었다.
한 박사과정생은 “현재 국내 학계의 학문 후속세대 문제는 심각하다”며 “예전에는 학회 투고 조건이 박사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석사과정생들도 투고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학문 후속세대를 위한 배려면 좋겠지만 학회 유지에 필요한 논문 양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일 뿐”이라고 자조했다.
서울권 대학의 한 교수는 “국내 학계가 건강히 유지하려면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에게도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대학이 어려워지면서 가장 먼저 줄어든 게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 장학금이다.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장학금을 받아 생활비 걱정 없이 학위를 마칠 수 있지만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와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많은 인문‧사회계열 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하려는 학생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학계가 황폐화된 이후에 이를 복구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게 된다.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고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세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