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N 리포트] 의정 갈등 ‘평행선’, 대학은 ‘속앓이’

총선 이후 의대 정원 재조정 가능성 대두…총선 결과에 동력 ‘약화’ 증원분 반영해 학칙 개정, 대입전형시행계획 정정…5월 말 마지노선 내년 대입 변수 많은데 시간 촉박…“대교협도 제출 기한 연장 고려해야” 총선 결과에 따른 다양한 전망 제기…수요조사서 ‘빈칸’ 제출 대학도 있어

2024-04-12     백두산 기자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대생‧의사단체의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대생‧의사단체의 강대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간에 끼인 대학들은 정원이 재조정될 수 있는 가능성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대 증원이 올해 대입에 당장 반영되는 만큼 2025학년도 입학 요강을 변경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0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 정원 대학별 배정 결과’를 발표해 서울권을 제외한 경기‧인천 및 비수도권 32개 의대에 2000명의 정원을 배정했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의대 증원분을 반영한 학칙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들은 의대 증원분을 반영한 모집 정원을 확정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거나 이사회 심의를 준비 중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입학연도 개시 1년 10개월 전까지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공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대학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학칙과 모집 정원 등을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 변경안’을 제출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늦어도 이달 말까지 제출해야 대교협의 승인을 받고 5월 말에 2025학년도 모집요강을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의정 갈등 장기화, 여당 총선 참패…동력 떨어진 의대 2000명 증원 = 각 대학은 배정받은 인원을 토대로 절차를 진행 중인 가운데 암초가 등장했다. 전공의 의료현장 이탈, 의대생 동맹 휴학, 의대교수 사직서 제출 등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증원 규모에 대해 조정 여지를 남긴 탓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정부의 정책은 늘 열려있다. 더 좋은 의견과 합리적 근거가 제시된다면 정부 정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더해 지난 10일 치러진 4‧10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동력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마저 더해지고 있다. 여당 내에서도 ‘의대 증원 1년 유예 및 책임자 경질’을 요구하는 등 정부의 입장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총선이 끝난 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고 단계적 증원 방침을 정한 뒤 국민 분노에 화답해야 한다”며 “의대 증원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책임자들의 경질이 불가피하다”는 글을 게시했다.

지난달 27일 오전에 찾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피부과. 피부과는 ‘모든 검사·치료가 불가하다’, ‘외래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안내문을 모니터 옆에 부착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 ‘의대 증원‘ 둘러싼 대학의 복잡한 속내 = 의대 정원 문제가 갈수록 미궁에 빠지면서 정원을 배분받은 대학들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져 가고 있다. 대입전형시행계획 정정에 앞서 학칙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학과별 정원을 명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약 2주간 구성원 의견도 수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전형으로 학생을 뽑을지 입시 방법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원이 조정되면 이같은 과정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의대 정원을 배분받은 대학들이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이미 각 대학은 국고 인센티브와 연동된 무전공 모집 정원은 물론, 첨단분야 학과 정원 조정도 진행 중인 상황이다. 여기에 현재 진행 중인 의대 정원 문제, 4월 말에 발표 예정인 간호대학 입학생 증원 배분까지 고려하면 남은 시간은 촉박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8일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부터 간호대학 입학 정원을 1000명 늘린다고 밝혔다. 2019년부터 매년 간호대 입학 정원을 700명씩 늘려왔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간호대 정원은 올해 2만 3883명에서 내년 2만 4883명으로 확대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도 평균(8.4명)에 못 미쳐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간호대학 입학 정원 배분은 4월 셋째 주나 넷째 주 쯤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수도권 A 사립대 관계자는 “일단 지난달 20일 배정된 인원을 기준으로 관련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 정부와 의사단체들 간의 협의 과정을 지켜보고 결정이 나면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수도권 B 국립대 관계자는 “아직까지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늦어질수록 시간이 촉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의대 증원 규모가 변경되더라도 정부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늦어지더라도) 이를 감안해 대교협에서도 제출 기한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미리 고민해 둘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수험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수도권 C 사립대 관계자는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고3 진학 전부터 계획을 세워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의 경우 1학기가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기 때문에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도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수도권 D 사립대 관계자는 “4‧10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증원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추이를 지켜보며 필요한 과정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국회가 나서 타협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는 “총선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둔 만큼 의대 증원은 정부안이 아닌 야당안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동맹 휴학에 나선 의대생들의 경우 지금처럼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결국 단체 유급을 하게 된다. 조만간 야당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을 선회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편, 지난 8일 제출한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교육여건 개선 수요조사서의 경우 일부 대학에서는 ‘빈칸’으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요조사서는 교육여건 현황과 2025학년도~2030학년도까지의 소요계획이 담겼다.

비수도권 E 사립대 관계자는 “2030년까지 수요 계획을 10일 만에 작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의견을 모으는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고려할 것이 많은 만큼 제출 직전까지 고민해서 제출했다”고 말했다.

정원이 대폭 증원되는 국립대들의 경우 교원과 실습‧강의실 확보에 중점을 두고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수도권 F 국립대 관계자는 “교원과 실습‧강의실의 경우 내년에 늘어날 인원에게 시급한 문제는 아니지만 향후 이 학생들이 실습에 들어가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리모델링은 그나마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지만 증축을 하거나 새로운 건물이 필요할 경우까지 고려해 수요조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