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정 갈등 2라운드, 의평원 기준을 넘어라
정부의 의대 증원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면서 올해보다 1509명 많은 4567명이 최종 신입생 정원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의대 교육의 질 관리를 맡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하 의평원)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의료계의 교육 질 저하 우려에 ‘걱정 말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2000명을 증원해도 의료교육의 질 저하는 발생되지 않을 것이며, 증원에 따른 의평원 평가 기준도 맞출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정부는 무슨 근거로 의대 증원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는 없을 것이고, 의평원 평가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고 장담했을까. 의대 교육의 질 관리를 맡고 있는 의평원 평가 기준만 충족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정부는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과 체계적 관리를 위해 2008년부터 교육프로그램 평가인증 제도를 운영해 왔다.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교육에 대한 평가인증은 의평원에서 담당한다.
의평원은 지난 5월 재인정 심사를 통과해 앞으로 5년간 평가인증 인정기관으로 계속 활동하게 됐다. 의료법 제5조는 평가인증기구의 인증을 받은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에게만 의사고시 응시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의평원의 평가인증 기준은 국제 표준에 맞춰 있다. 준비가 안 된 대학은 기준 충족이 어려울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된다. 정량평가보다는 정성평가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정량적 정성평가가 주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정량적 여건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의평원은 의정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3월 27일 성명을 통해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 수준을 떨어트리지 않을 것’이란 정부 장담과 그 근거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인증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정부 입장에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의 증원 계획이 40개 의과대학의 교육 여건과 역량이 대학마다 크게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발표된 것으로, 의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의평원 규정에 따르면 대학에 주요변화가 일어났을 때, 의평원에 주요 변화계획서를 제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의평원은 10% 이상 의대 입학정원이 증원되면 주요 변화로 정의하고, 주요 변화 평가 기준에 따라 해당 대학이 이를 충족하는지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30개 대학이 증원했으니 모두 주요 변화 평가 대상이 된다. 평가 결과에 따라 해당 대학의 인증유형과 인증 기간이 변경될 수도 있다. 불인증을 받는 대학은 정원 감축, 모집 정지, 학생의 의사국가고시 응시 불가, 심지어 폐교까지도 처분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인증기준을 맞추는 데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실제 평가인증을 책임지고 있는 의평원은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료교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의평원의 지적은 타당하다.
현 평가인증에서는 학생, 교수, 교육자원 등 8개 평가영역에 28개 평가 부문을 평가한다. 각 평가 부문은 학생들이 충분한 교육과 실습을 통해 전문 의료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
현실화되고 있는 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사태는 평가인증과 관련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기존 3000여 명의 재학생에 더해 유급, 휴학생, 신규 증원된 학생까지 더해진다면 한 학년에 최대 7000여 명 넘는 학생을 매년 교육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이 같은 시기에 평가인증 기준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평가인증 체계의 대혼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의대 증원은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의평원 인증기준 충족은 의학교육 질 유지의 최소조건이다. 의평원에서는 이번 증원으로 인한 인증기준 완화나 조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학도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의정 갈등 1라운드가 종료되면 곧바로 의평원 평가인증이라는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정책당국과 대학은 증원에 따른 인증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