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평원의 ‘독립성·자율성’은 보장돼야 한다
의정 갈등이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과 정부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갈등의 핵심 이슈 중 하나가 과도한 의대생 증원으로 초래될 의학교육의 질 하락 문제였는데, 이제 교육의 질을 다루는 의평원과 정부가 막다른 지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4일 의평원은 의대생 증원으로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런 의평원 입장은 지난달 보건복지부 청문회에서도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안덕선 의평원장은 2000명 증원 시 교수와 병원의 부족 등으로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를 재차 표명했다.
정부가 발끈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의평원장이 교육의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며, 의평원이 엄정 중립적 자세를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정부의 이런 조처가 연말에 있을 주요 변화 심사를 앞두고 의평원을 압박하는 행위로 보고 연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의료과정 운영 학교는 교육부장관이 지정하는 기관으로부터 평가 인증을 받도록 했다. 2018년부터는 인증을 받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만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했다.
의평원은 의대 교육 평가 인증을 통해 의학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기관 차원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은 평가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다. 평가인증기관이 특정 정부 부처나 이해 관계자의 영향을 받게 되면 평가 결과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
자율성은 평가인증기관이 전문성을 발휘하는 데 필수 요소다. 각 분야의 특성과 요구사항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자율적으로 평가 기준과 절차를 설정할 수 있어야만 평가의 질이 높아지고 해당 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평가인증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국제적 신뢰와도 직결된다. 글로벌화 시대에 평가인증기관의 평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중요성을 갖는다.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평가인증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그 기관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필수적이다. 이런 점에서 오석환 차관의 발언은 평가인증기관으로서 의평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교육부는 의평원을 의학교육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의평원은 교육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 5월, 교육부는 의평원을 2029년까지 의학교육평가인증기관으로 재지정했다. 재지정하며 ‘주요 변화 계획서 평가, 중간 평가를 포함한 평가·인증의 기준, 방법 및 절차 등 변경 시 인정기관심의위원회에서 사전 심의’라는 조건을 달았다. 이 밖에도 의료전문가로 편중된 이사회 구성 다양화, 회계의 일반 회계, 사업 회계 분리 등의 권고 사항도 있었다.
의평원 입장에서 인증기관 지정 권한이 있는 교육부의 지시나 권고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부만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어떻든 대학가에서는 오 차관의 발언으로 교육부의 의평원 길들이기가 시작됐다고 본다. 그동안 나온 입장을 종합해보면 의평원은 의대 교육의 질적 하락을 막는 최후 보루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의평원과 다른 제2전선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갈등 국면을 연착륙시키는 데 중지를 모을 것인가. 의평원에 대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은 정부 의도에 대한 의료계의 의심만 불러일으킬 뿐이란 판단이다.
그럴 힘이 있다면 차라리 의대생 수를 늘린 만큼 충분한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평가 기준을 건드리지 않고,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앞으로 있을 주요 변화 사항에 대한 의평원의 심사 과정에 교육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지 계속 주시해볼 일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