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의 진로코칭] (90)의로운 욕망, 사악한 욕망
배상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진학지원센터장
개인이 가진 소망과 욕망은 개인의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우선순위는 선택을 좌우하며, 선택은 행동을 결정짓는다. 욕망에 따른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지, 무엇을 이룰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우리는 소망과 욕망이 사악하지 않고 가능하면 의롭게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욕망이 의롭다면 그의 선택이나 행동도 의로울 것이며, 그런 사람이 많이 모인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욕망은 청소년의 진로 선택에도 아주 중요하다. 청소년이 가진 욕망이 삶의 우선순위를 좌우하며 어떤 진로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욕망은 단지 부모가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라는 선에서 한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욕망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욕망으로 자기는 지워진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욕망 안으로 들어가야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에 청소년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님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한 영어 선생님이 A 학생의 어머니와 상담하게 됐다. A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몇 년을 앞선 공부를 한 학생이다. 더 어려운 과정을 배우기 위해 새로운 학원을 찾아온 것이다. 선생님이 이 학생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영어 단어 테스트를 했다. 영어를 몇 년 선행했다고 했는데, A는 테스트용 단어의 10%도 못 맞혔다. A의 현재 학년보다 훨씬 낮은 학년의 학력 수준을 나타낸 것이다. 깜짝 놀란 선생님은 A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A가 기초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선행보다는 기본 실력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A의 어머니는 그런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고 오히려 화를 냈다. 지금까지 선행학습을 시킨 게 얼마이고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그런 말을 하느냐고 쏘아붙이고는 A를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한 포럼에서 만난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독서와 논술을 가르치는 그 선생님에게 B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보통 아이와 함께 오는 것이 정상인데, 어쩐 일인지 그 부모는 B를 데려오지 않은 상태로 상담을 왔다. B는 의대에 가기 위해, 국어와 독서를 더 잘하기 위해 학원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B가 학원에 온 날, 선생님은 B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기본 테스트를 했다. 하지만 B는 독서를 할 수 없는 수준의 독해력을 갖고 있었다. 아니 독해력이 아니라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수준의 학생이었다. B는 초등학교 고학년인데도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한 상태로 방치된 셈이었다. 선생님은 지금 당장 글자를 제대로 읽는 수업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어머니께 말했다. 그리고 물었다. 아이가 이렇게 글자도 모르는 상태가 되기까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냐고. 그 어머니는 대답했다. 계속 학원에 다녔는데, 아무도 아이가 글자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글자를 읽는 것을 가르쳐준 곳이 없었다는 핑계를 댔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것은 부모가 하면 간단한 일이다. 학교나 학원을 탓할 일이 아니다. 자녀에 대해 어떤 욕망을 가졌다면 자녀와 함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활동과 행동을 결정하고, 함께 도전하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자녀는 부모가 가진 자기에 대한 욕망, 즉 기대를 알게 되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선택과 행동을 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가진 욕망을 모두 이해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자녀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웃소싱(out-sourcing)만 한다면, 자녀는 A나 B처럼 ‘속 빈 강정’이 될 수 있다. 이런 부모의 욕망은 자녀에게 의로운 욕망이 아니라, 자녀를 짓누르는 사악한 욕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란다면, 의로운 욕망으로 가장한 자녀를 짓누르는 사악한 욕망을 벗겨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현재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부모의 욕심이 아닌 자녀의 성장에 기초한 욕망으로 바꿔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마음이 아프더라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자녀는 부모의 의로운 욕망을 자기의 의로운 욕망으로 발전시키면서 성장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