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평가 강화’에 “대학 부담 증가” 우려…평가 거부 움직임도
의평원, 모집정원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 대상 6년간 매년 평가 실시 15개 평가 기준도 51개로 강화…무더기 인증 취소, 과도한 평가 항목 증가 우려돼 의평원 “의학 교육 질 제고해야”…교육부 “이행 권고 또는 보완 지시 예정”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의대 증원에 따른 의학교육 질 제고를 위해 6년간 매년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기준을 강화하겠다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발표에 평가 기준이 강화되면 최악의 경우 대학들이 무더기 인증 취소를 받아 신입생 모집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평가항목의 과도한 확대와 일정 단축 등으로 대학 입장에서 준비에 큰 부담이 된다고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 평가를 우선하는 것이 맞냐며, 의평원의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어 교착 상태에 빠진 의정 갈등이 새로운 문제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의대 모집정원 10% 이상 늘어난 의대 대상 6년간 매년 평가…의학교육 질 제고 = 지난달 30일 의평원은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2025학년도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입학정원(모집인원) 증원에 따른 주요 변화 평가 계획(안)’ 설명회를 열고, 내년도 의대 모집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대학 30곳을 대상으로 6년간 매년 의학교육의 질을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평원은 2년, 4년, 6년 주기로 평가를 진행해왔으나 의대 증원이 의학교육의 질적 수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올해부터 2029년까지 매년 주요변화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평가 대상 대학은 △가천대 △가톨릭관동대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계명대 △고신대 △단국대 △대구가톨릭대 △동국대 △동아대 △부산대 △성균관대 △순천향대 △아주대 △영남대 △울산대 △원광대 △을지대 △인하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조선대 △차의과학대 △충남대 △충북대 △한림대다.
평가인증 기준 역시 강화됐다. 2025학년부터는 의대 정원이 200~300% 늘어난 상황에서 의학교육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ASK2019) 92개 중 51개를 추려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의평원은 그동안 입학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의대에 대해 ASK2019 기준 중 15개를 적용해왔다. 15개 평가 기준을 사용한 주요 변화 평가 지침은 2017년 서남의대 폐교으로 인해 서남의대 재학생들이 전북의대와 원광의대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이들 의대가 편입생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지침이다. 당시 편입생으로 인한 정원 증가율은 전북의대 23%·원광의대 18%로, 15개 기준으로도 평가가 충분하다고 판단다는 것이 의평원의 설명이다.
평가 대상 대학은 오는 31일까지 주요변화평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주요변화계획서는 예정됐던 내년 1월 말이 아닌 2025학년도 신입생이 입학하기 3개월 전인 올해 11월 30일까지 작성해야 한다.
의평원이 공개한 주요변화계획서 작성 가이드(안)에 따르면, 각 대학은 △학생 수 변화 △기초의학 교원 수 변화 계획 △임상의학 교원 수 변화 계획 △기초·임상의학을 제외한 교원 수 변화 계획 △교원 확보 계획의 구체적 근거 △교육기본시설·교육지원시설·학생복지시설·학생편의시설 현황 및 확보 계획 △시설 확보 계획의 구체적 근거 △교육병원 변화 계획 △재정 확보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의평원은 12월부터 서면·방문평가를 진행한 뒤 내년 2월 인증 또는 불인증 판정을 내려 각 대학에 결과를 안내할 계획이다. 평가 결과는 인증과 불인증으로 나뉘며, 불인증 판정은 1년 유예할 수 있다.
■ 평가·인증 못받으면 신입생 모집 못해…“대학 부담 증가” 우려 = 이번 의평원의 평가 기준 강화에 대학들은 최악의 경우 무더기 인증 취소를 받게 될 수도 있고, 신입생 모집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의평원에 평가·인증을 신청하지 않거나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는 신입생을 모집할 수 없다.
또한 의평원에 2~6년 주기로 ‘정기평가’와 ‘중간평가’를 제출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주요 변화 평가까지 제출하기엔 행정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우려와 함께 지방 사립대의 경우 등록금이 15년 이상 장기 동결돼 의대 증원에 따른 교육시설들을 갑자기 늘리기 어렵고, 의평원의 평가항목에 정성적 부분이 많아 평가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예측이 많다.
교육부도 이같은 대학의 우려에 공감하며 입장문을 통해 “많은 대학은 의평원 평가계획이 평가항목의 과도한 확대와 일정 단축 등으로 준비에 큰 부담이 되고 국회 예산일정과 대학의 회계연도 등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평가에 반영할 수 없는 점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대학 의견 등을 바탕으로 주요 변화 평가 계획(안)을 심의, 결과에 따라 이행권고 또는 보완지시를 할 예정”임이라고 밝혔다.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 회장인 홍원화 경북대 총장 역시 이날 설명회에서 “의평원의 갑작스러운 평가 강화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어 그는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이 언제 돌아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 교육을 정상화한 뒤에 (평가)보고서를 내는 것이 맞는 순서”라며 의평원의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홍 총장의 의평원 평가 거부 의사에 “평가보고서 제출 거부를 선언하고 다른 대학들의 보고서 제출도 막겠다는 것은 의대정원 대폭 증원으로 부실화될 교육환경에서 제자들을 도저히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해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환영 의사를 전했다.
다만 이같은 입장은 대학 총장과 의대 교수 사이에서의 충돌로도 이어지는 형국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의학교육에 관해 무지하면서 의총협이라는 단체의 수장으로 의평원의 평가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홍 총장을 탄핵해달라”며 전국 대학 총장들에게 요청했다.
이에 안덕선 의평원장은 “15개 기준으로 충분할까에 대해 내부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으며, 고민 끝에 ASK2019의 92개 기준 중 51개의 기준을 마련했다”며 “주요 변화 평가는 각 의대의 준비 상황이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는 보건복지위원회와 오는 16일 의대 정원 증원이 결정된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교육위는 8일 진행된 전체회의에서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 실시계획서를 채택하고 자료제출 요구의 건, 증인·참고인 출석요구의 건을 의결했다. 청문회는 김영호 교육위원장이 위원장을 맡아 진행하며, 증인으로는 교육부 장·차관과 복지부 장·차관, 장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 등 5명이 채택됐다. 더불어 참고인으로는 안덕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등 13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의원들은 늘어난 의대 정원이 대학별로 배분되는 과정이 타당했는지 따져보고, 증원 이후 의대 교육 여건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전공의 대거 이탈로 반년 가까이 지속된 의료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