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려견 유치원’보다 싼 대학 등록금…교육부의 결단 필요한 때
백두산 기자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최근 대학가를 취재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대학이 한계에 봉착했다. 이제는 진짜 등록금을 올려야만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16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은 등록금을 중심으로 재정을 꾸리는 대학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끊어내고 싶은 족쇄와 같다.
지난달 24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학교급별 사립학교 교육비 현황 분석’이란 자료를 내면서 “국내 4년제 사립대학교 등록금 수준이 유치원부터 초‧중등 사립학교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반려견 유치원’보다도 저렴하다”고 밝혀 대학가의 한숨을 자아냈다.
사총협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732만 6000원으로 월 단위로 환산하면 61만 1000원 수준이다. 이에 반해 흔히 영어 유치원이라 부르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174만 4000원이었으며, 국제중학교는 106만 7000원, 사립고 77만 6000원 등으로 모두 대학교 등록금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견 유치원의 월 이용 금액 또한 60~90만 원 선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주말 우연히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마침 반려견의 유치원을 등록해야 할 시기가 돼 와이프 대신 결제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 주변에서 비교적 저렴하다고 알려진 반려견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이날 결제한 금액은 60만 원으로 1년 동안 10회를 보낼 수 있는 이용권이었다. 만약 한 달에 20번을 보낸다면 한 달 이용금액은 120만 원에 달한다.(사족을 붙이자면 기자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반려견은 한 번 유기됐던 강아지라 도시에서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매너 교육이 필수인 아이다.)
반려견 유치원 이용금액이 60만 원이라고 해도 대학교 평균 등록금 월 단위 환산 금액과 큰 차이가 없는데 1달을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반려견 유치원이 이 정도인데 하물며 자녀 교육에 드는 비용은 어떠할까. 실제로 주변 지인들을 만났을 때 자녀의 교육비 얘기를 들어보면 대학교 등록금은 우스운 금액이다.
어찌 보면 이상한 상황이다. 고등학교까지는 공교육을 통해 한 명의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기관인 대학교는 사회 생활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배우기 위해 진학해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교 등록금은 공교육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보다 적게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대학교 교육의 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장기간 동결된 대학교 등록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촘촘히 구성돼 있는 사회구조에서 어느 한 곳의 자금이 경색되면 그 여파는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듯 대학교 등록금도 비슷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의대 쏠림’ 현상이다. 여러 매체에서 의대 현상을 일컫기를 마지막 남은 ‘투자 대비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안정적인 평생직장’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단편적 분석에 그친다. 실제적으로는 그동안 교육계의 곪은 부분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대학교 등록금이 정체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줄이는 부분이 홍보비와 장학금이다. 이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인문‧사회 분야를 비롯한 기초학문 학과들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취업률 상승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학과이기 때문에 폐과를 고민할 때도 가장 먼저 고려하는 학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수험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중등교육이 문‧이과 통합과정으로 바뀌면서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뚜렷해지고 있다. 학과 선택 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부분이 취업이 되면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이공계열 학과로 진학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학과들이 폐과되는 경우가 늘면서 해당 분야를 전공하고자 했던 학생들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줄어드는 교수 자리와 거의 없다시피한 장학금은 전문가를 꿈꾸던 학생들을 단념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가 줄어들수록 해당 분야의 연구 성과나 국제적 지표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해당 분야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인문‧사회 분야가 황폐화 될수록 이공계열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적어지고, 필요한 인원은 더욱 줄기 때문이다. 이렇게 좁아진 피라미드의 최상층부가 의대인 것이다.
단순히 의대 쏠림 현상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기저에 숨겨진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현재 대학의 숨통을 가장 크게 조이는 것이 ‘등록금 동결’이라면 우선적으로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교 등록금과 연동된 국가장학금 2유형에 대한 족쇄부터 풀어야 한다.
대학가에서는 많은 대학들이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인상하고 싶지만 국가장학금 2유형과 연동돼 있어 차마 인상을 못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등록금을 인상할 경우 정부재정지원사업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이제는 교육부가 결심해야 할 시기다. 더욱 큰 부작용이 생기기 전에 고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대학교 등록금 동결을 풀어야만 한다. 대학에서 학생이 이용하는 화장실조차 고칠 돈이 없다고 호소하는 상황이 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