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대교협 공동기획②] “‘R&D 위기’ 타개 위한 장기적·안정적인 연구비 지원 필요”

R&D 예산 양적 확대 비해 성과 부족…학계-산업계 간 협업 부족 등 원인 연구 인력 부족으로 과학기술 연구 차질…국가경쟁력 상실 우려 선진국형 연구과제 선정 및 평가 시스템 도입, 예측 가능한 지원 사업 요구돼

2024-11-25     임지연 기자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와 교육 투자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의 미래와 지속적인 성장, 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공계 대학의 한 학생이 첨단 인프라를 활용해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디지털 대변혁의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교육 환경에 적응할 새도 없이 2024년 한 해가 빠르게 흘러갔다. 2025년에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가 전국에 도입되면서 새로운 교육개혁의 시대가 도래하고, 2023년 신설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일몰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2025년 고등교육 정책, 향후 전망 및 주요 이슈’라는 주제를 통해 내년 고등교육의 정책 주요 이슈를 살펴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법까지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 2025년 일몰 위기
② R&D 위기, 이대로 괜찮나?
③ 라이즈 체계 본격 도입,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영계획안에 편성된 예산안에 따르면, 2025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16%가량 증액된 9조 7000억 원이다. R&D 예산 중 AI·반도체, 바이오, 양자 등 선도형 R&D 지원에는 4조 3200억 원이 투입된다. 이는 지난 60년간 이어온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R&D 체계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신기술 핵심 인재 양성과 기초연구 확대에는 3조 5700억 원이 투입된다.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올해 2조 1200억 원보다 10.5% 증가한 2조 3400억 원이 편성됐다. 이공계 대학원생이 생활비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생활장려금 600억 원을 신설한 것이 주요 골자다.

연구 분야 다양성 확보와 연구자들의 연구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우수한 연구를 지원하는 ‘창의 연구’의 신규 과제도 140개에서 800~900개로 대폭 확대한다. 젊은 연구자가 다양한 연구기회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우수 신진연구’의 소규모 유형(씨앗 연구)도 신설했다.

이처럼 내년 R&D 예산은 올해보다 큰 폭으로 증가해 2023년 이전으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배경으로는 지난해 연구 현장의 비효율과 비리로 얼룩진 이른바 ‘카르텔’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시스템 개혁을 이유로 R&D 예산을 삭감해 논란이 됐던 것을 의식해 내년 R&D 예산을 확대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역시 “2025년도 기초연구예산은 작년 연구개발(R&D) 예산 쟁점에 따른 연구 현장의 우려와 현안에 적극 대응함과 동시에 혁신성과 전략성 바탕의 기초연구 강화 등을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됐다”고 설명하며 논란을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한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R&D 위기를 가져오는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투자 대비 성과 저조…‘실패하지 않는 연구에 투자하는 시스템’ 한계 달해 = 그렇다면 R&D 위기를 가져오는 근본적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실패에 대한 큰 불이익을 감수할 수 없어 도전적으로 과제를 제안하지 않고, 관성적으로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정부는 R&D 예산의 양적 확대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연구의 질보다 양적 성과를 강조하고, 혁신적·도전적 연구보다 실패하지 않는 연구에 투자하는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R&D 경제적 성과 부족(45.3%)이 기술적 성과 부족(13.2%)보다 3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등 국내 R&D 문제에서 R&D 기술적 성과와 경제적 성과라는 산출 측면을 전체 R&D 투자 규모나 정부 R&D 예산과 같은 투입 측면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8월 네이처 인덱스가 자연과학 분야 최상위 논문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집계해 인구 수로 나눈 지표를 토대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5% 가까이를 R&D에 투입하고 있음에도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하위권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GDP의 5.5%를 R&D에 투입해 가장 비중이 높은 이스라엘은 60 정도였고, 한국은 30에 불과했다. 한국의 연구 성과는 세계 8위로 미국 1위, 중국 2위, 독일 3위 순이다.

투자 대비 성과가 저조한 원인으로 학계와 산업계 간 협업 부족,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력 위축, 한정된 국가와의 국제 협력, 여성 연구자와 같은 비주류 인재에 대한 연구계의 높은 문턱이 꼽혔다.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한 배경에는 이같은 상황이 포함돼 있다. R&D 예산을 전년 대비 약 15% 삭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나눠주기식 관행을 없애고 비효율을 바로잡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계는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와 교육 투자가 이뤄져야 대한민국의 미래와 지속적인 성장, 발전이 가능한데, R&D 예산을 대규모로 삭감해 연구개발에 큰 지장을 초래했다고 연일 비판했다.

■ 연구 인력 부족,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져…대비책 마련돼야 = 대학생이 학업을 이어갈 필요성을 못 느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면서 연구 인력이 줄어드는 문제도 심각하다.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40개 일반대학원 가운데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원은 34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대, 고려대 등 24곳은 대학원 정원을 10% 이상 채우지 못했으며, 서강대 등 9곳은 정원을 30% 이상 채우지 못했다.

충북지역 한 공과대학 교수는 “수도권도 대학원생 확보가 어려운데, 지방은 오죽하겠나”라며 “우리 대학은 다행히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원생으로 들어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없다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짚었다.

대학원생 유치 어려움과 R&D 예산 삭감은 이공계 위기 심화 및 학문후속세대 위기론으로도 연결된다. 2024년 교육부 R&D 예산에 따르면, 교육부의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이 총 1433억 원(26%) 삭감됐다. 정부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2024년 25개 출연연의 주요 사업비도 2023년보다 25.2% 감축됐고, 4대 과학기술원 예산도 이전 수준에서 10~15%가량 삭감됐다. 출연연의 경우 연구직 인건비가 사업비에서 주로 지출되기 때문에 예산 삭감에 따른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연구인력이 줄어들면 과학기술 연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경쟁력 상실로까지 이어진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한정해 살펴보면 내년 R&D 예산은 2023년보다 8.6% 줄어 R&D 예산 삭감의 고통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황정아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출연연 연도별 주요사업비 자료에 따르면, 2025년도 25개 출연연 주요사업비 예산안은 총 1조 833억 원으로 2023년 대비 1130억 원 줄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R&D 예산은 더 떨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물가상승률은 2.5%, 내년은 2.1%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른 내년도 명목 총 R&D 예산 29조 7000억 원의 실질 예산은 28조 4000억 원으로 추산돼 2023년도 대비 약 1조 원가량 삭감됐다는 것이다.

황정아 의원은 “국가 총 R&D 예산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023년도 대비 삭감인데, 출연연들은 명목 R&D 예산마저 2023년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R&D 예산 삭감의 고통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획, 예상가능한 연구비 지원 필요 = 급격한 예산 감축으로 인한 대학원생 유치 어려움과 이공계 위기 심화 및 학문후속세대 위기 외에도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R&D 정책,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전문가들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획, 예상가능한 연구비 지원과 관련 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한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선진국형 연구과제 선정 및 평가 시스템 도입도 제언했다.

정재훈 부산대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19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 혁신생태계 고도화 대토론회'에서 “기초과학이 산업계로 응용될 수 있는 연구로의 연구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집계상 기초연구비는 늘더라도 순수 기초과학 연구비는 줄고 있다”며 “기초과학은 큰 규모의 연구비가 필요하지 않다. 소규모이지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계획, 예상가능한 연구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역시 “기초과학 연구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창의성을 잘 보존하면서 질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면서 “기초연구가 제대로 되려면 예측 가능한 지원 사업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선진국형 R&D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선진국들은 연구를 통해 5~10년 후 세계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기술 지식재산(IP)을 미리 확보해 놓는다”며 “우리가 뭔가 하려면 이미 선진국들이 IP 영토를 다 차지하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선진국형 R&D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국내 기초과학 연구의 근간이 되는 정부 개인기초연구사업의 내년도 예산이 기존 정부안보다 640억 원 늘어난 1조 9750억 원 규모로 증액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19일 오전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5년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안을 의결했다. 앞서 올해 개인기초연구에서는 R&D 예산 삭감 여파로 신진 연구자를 지원하는 ‘생애 첫 연구’와 소액 과제인 ‘기본연구’가 사라진 바 있다.

증액 의견을 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의원은 “생애 기본연구 예산은 우리나라 연구 생태계의 근간을 든든하게 만드는 시드머니이자 R&D 인력을 든든하게 양성하는 중요한 예산”이라며 “기초과학은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하고, 한 번 끊긴 연구의 맥을 다시 잇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번 증액이 연구자들이 중단 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