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다문화사회가 온다, 대학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④다문화 사회에서의 대학 교육의 방향과 과제
박선운 청주교대 교수
우리 사회가 점점 다문화사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청소년 인구의 감소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반면, 다문화학생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다문화학생은 18만 1178명으로, 전체 학생 521만 8000명의 3.5%가량을 차지했다. 다문화학생은 2013년 5만 5780명에서 10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를 포기하고 학교를 이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학업뿐만 아니라 집단 따돌림, 학교생활 부적응, 정체성 혼란 등 충분한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로 전환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문화학생을 위한 교육과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졸업 후 지역에 취업하고 정주까지 지원하는 외국인 유학생 정책이 이뤄지는 시점에서, 다문화학생을 포용하고 이들과 공존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중지가 모여야 한다. 이와 같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은 다문화학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본지는 우리가 처한 다문화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한편, 다문화학생과의 공존을 꾀하는 방법, 다문화학생을 위한 맞춤형 교육, 다문화교육의 정책적 방향 등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장인실 한국다문화교육학회 회장(경인교대 교수)
② 함승환 한양대 교수
③ 한경은 경기도교육청 융합교육정책과 장학관
④ 박선운 청주교대 교수
⑤ 신미경 교육부 교육국제화담당관
⑥ 좌담회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국제 결혼, 이민자 수의 증가에 따라 다문화 학생 수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2024년 초·중등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 수는 19만 3814명으로 전체 학생 대비 비율은 3.8%다. 다문화 학생이 전교생의 절반을 넘는 학교들도 다수 등장하면서 초·중등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이주 및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게 됐다. 다문화 학생이 증가한 것은 최근에만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아니며, 이에 따라 2000년도 초반 이래 초·중등 교육은 교육 정책적 지원, 교육과정 개편, 다양한 연구 수행 등을 기반으로 다문화 사회에서의 학생들의 성장에 힘써왔다.
다문화교육 수행하기 위한 노력, 고등교육에서도 이뤄져야
다문화 학생에 대한 지원과 다문화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초·중등 교육에서 이루어져 왔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변화는 이러한 노력이 고등교육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변화는 후기 청소년(19~24세) 연령인 다문화 학생 수의 증가이다. 2024년 현재 초·중학교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이 85% 이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비율은 2012년의 92%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고등학생 및 후기 청소년 연령의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다문화 학생의 학업중단률 변화이다. 초·중등학교에서 다문화학생의 학업중단률은 전체 학생들의 학업중단률보다 아직도 높은 편이지만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2021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 청소년의 대학진학률은 전체 대학진학률보다 확연히 낮지만(40.5%, 전체 국민은 71.5%), 10명 중 9명 이상이 고등교육 진학을 희망하고 있을 정도로 이들의 희망교육 수준은 높다. 이처럼 초·중등교육에서의 학업중단률 감소와 이들의 고등교육에의 높은 희망 교육 수준은 다문화 학생의 고등교육 진입이 보다 증가할 수 있는 객관적, 주관적 조건이 갖춰지고 있으며, 이에 맞춰 고등교육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교육기관에서 다문화 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은 아니다. 국내에서 자라난 다문화 학생들 이외에도 한류 열풍 또는 기타 이유로 국내에 입국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 유학생은 18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한 교육부는 최근 발표한 Study Korea 300K Project 등을 통해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더욱 활성화하려고 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증가로 인해 고등교육의 구성원들은 대학에서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더욱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고등교육기관, 다문화 사회 반영한 교육 및 입학‧적응 돕는 제도 필요
그렇다면 다문화 사회의 고등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먼저, 대학이 다양한 문화 간 의사소통 능력, 간문화이해 능력을 함양할 수 있는 교양 및 전공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나 문화 등을 제공하는 교양 강좌는 그동안 대학에서 이미 제공해 왔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를 대비하는 대학 교육은 교양 강좌나 인문계 전공 강좌와 같이 특정 학과나 전공 분야에서만 국한되어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대학들에서는 다문화 사회를 반영한 강좌들이 다양한 전공 교육에서 개설되고 있다. 경영대학에서는 다문화 및 글로벌 사회에서의 경영, 글로벌 비즈니스 상황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 간문화적 상황을 고려한 경영 전략과 인적자원 관리 등과 같은 전공들이 개설돼 운영되고 있다. 간호학 분야에서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환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와 관련된 강좌가, 공학 분야에서는 다양한 문화권의 공학자들이 한 팀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의사소통하는 상황이 빈번하다는 점에서 엔지니어를 위한 간문화 의사소통과 관련된 강좌,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공학 기술 개발을 위한 강좌 등이 개설되는 것도 사례로 들 수 있다. 다문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 현장을 반영하여 다문화 교육 강좌를 개설해 온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은 말할 것도 없다. 다문화 사회를 반영한 교양 및 전공 교육 교육과정과 교과목의 개발 및 운영은 지식의 생산과 공유라는 대학의 근본적 목적에도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다문화 학생이 고등교육에 진학할 수 있도록 이들의 입학 및 적응을 돕는 제도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다문화 학생의 고등교육 진학을 위해 이미 다양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주로 사회배려자 전형의 일환으로 운영되는 다문화 학생 특별 전형은 다문화 학생들의 고등교육 진학을 돕고,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달성해 왔다. 다문화 학생의 입학은 캠퍼스 내 다양한 학생들 간 교류를 증진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의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입학을 도울 수 있는 보다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다문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전공 설명회, 캠퍼스 탐방, 대학의 멘토링 운영이나 입시 과정에 대한 지원 등은 우리나라에서는 중·고등학교 또는 주로 사설 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외의 유수 대학들의 경우 대학들이 이런 프로그램들을 자체적으로 운영해 자국 내 소수 집단의 학생들, 즉 우리나라의 다문화 학생들과 같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의 대학 입학을 지원하려는 노력을 제공한다. 다문화 학생의 고등교육 입학뿐 아니라 입학 이후의 적응과 졸업 이후 성공적 취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도 제공될 필요가 있다. 실례로 각 대학에서는 다문화 학생 지원센터, 또는 장애·다문화학생 지원센터 등을 설립해 다문화 학생들의 대학에서의 적응을 돕고 있다. 학업, 경제, 취업 등의 필요에 맞춰 다양한 유형의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다문화 학생들의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자유롭게 다문화 학생 적응 위한 제도·기관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해야
다만, 다문화 학생의 적응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과 센터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 기관에서 다문화 학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이러한 지원을 받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자주 관찰되곤 한다. 이뿐만 아니라 다문화 학생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 관점이 대학 강좌에서 활발히 공유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이러한 상황은 초·중등 교육이나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학생들이 경험한 미묘한 차별이 축적된 결과일 수 있지만 이들의 적응과 성장을 도우려면 고등교육 기관에서 반드시 개선돼야 할 점이다. 고등교육 기관 내에서 다문화 학생, 외국인 유학생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학생들이 자유롭게 학습하고, 토론하며, 교류할 수 있는 대학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배움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재학했던 미국 워싱턴대학교 사범대학에서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미국 워싱턴대의 사범대학은 미국 내 다문화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제임스 A. 뱅크스 교수가 재직했던 대학이다. 필자는 사범대 내 학생 다양성과 통합 오피스(Office of Student Diversity and Inclusion)라는 소수 집단 학생들을 지원하는 기관에서 대학원생 조교로 근무했다. 이 기관은 사범대학 내에서 유색 인종, 민족, 종교, 성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소수 집단 출신 학생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적응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공한다. 학기 초 개강 파티, 매주 동일한 요일에 열리는 오픈 티 타임, 유색 인종 교수의 도움을 얻어 교수의 집에서 소수 집단 학생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파티는 학생들 간의 친목을 다지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이들이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 문화적 배경에서 온 학생들은 자신의 교육 문화를 공유하거나 다문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정치, 경제, 교육적 현안들을 함께 토론하는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관점을 교환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열린 분위기는 친목 모임을 넘어 대학의 전공 강좌에서 소수 집단 출신의 학생들도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물론 이 기관의 다양한 프로그램 내에서는 소수 인종이나 집단 학생들만 교류하는 것은 아니다. 주류 집단에 속하는 학생들도 협력자로서 프로그램 운영을 돕거나, 친목 활동에 함께 참여하고, 세미나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이와 달리 한국의 고등교육 기관에서 다문화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과 자신의 강점, 관점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대학 교육이 제공하는 지식의 소비자로서 잠깐 머물다 떠나는 것은 실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고등교육 기관, 대학에서의 다문화 사회를 살아갈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대학 내의 다양한 경험과 관점이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유되며 교류될 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 학생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학생들의 증가는 이들의 적응과 성취를 돕는 방향으로 고등교육 기관이 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일 수 있지만, 결국 다문화 사회에서 살아갈 모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