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通]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 개정에 부쳐
정재영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대우교수
최근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연간 27시간 교육훈련 규정이 폐지됐다. 대학도서관 사서 및 전문직원의 최소 연간 교육훈련 시간을 대학 여건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통해 개정의 이유를 파악해 볼 수 있다. ‘대학별 운영 실정에 맞춰 교육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면서 사서들의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도서관 운영의 유연성을 높일 계획이다’, ‘그동안 대학도서관 사서와 전문 직원들은 매년 최소 27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각 대학은 도서관 운영과 인력 상황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교육훈련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법제처는 이번 조치를 통해 대학도서관의 운영 자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사서들의 과도한 교육 부담을 줄여 보다 실질적인 역량 강화를 도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사업자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며, 국민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법령을 꾸준히 정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해당 내용을 찬찬히 되짚어 봤다.
‘사서들의 과도한 교육 부담을 줄여 실질적인 역량 강화를 도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산업과 이용자의 요구를 고려할 때 대학도서관 사서가 1년에 이수해야 할 27시간이 과연 과도한 것일까.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5급 이하 공무원 연간 의무교육시간만 해도 80시간이다.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 이 정도의 시간도 투자하지 않고 전문성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필수 교육 이수 시간은 없애면서 사서들의 실질적 역량 강화를 돕겠다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각 대학은 도서관 운영과 인력 상황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교육훈련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도 대학 당국이 도서관 사서를 위한 교육훈련 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는데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교육계획을 제안하면 수용할까. 아마도 대학 내 모든 직원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도서관 자체 계획은 수용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사업자의 경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법제처장의 발언에서 개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개정된 시행령의 내용을 보면 ‘대학의 장은 사서 및 전문직원의 업무수행 능력 향상을 위하여 학칙으로 교육·훈련 시간을 정할 때에는 대학도서관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대학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사서 수를 고려할 때 도서관 운영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교육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다.
기본적으로 규제 완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또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경우에도 대학도서관 운영과 관련한 직접적인 법령이나 정량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이는 대학도서관이 스스로 전문성 유지를 위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국내 대학도서관 상황도 그럴까.
목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법의 개정은 문제점을 줄여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정량적 기준을 넣어서라도 열악한 대학도서관 상황을 개선하려고 했던 법 제정 당시 상황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교육 시간에 이어 장서와 시설 기준, 사서 수 등 대학도서관진흥법 시행령 속에 들어있는 다른 정량적 기준들도 ‘규제 완화’와 ‘사업자의 경영 부담 완화’를 내세워 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있던 최소 기준이 사라지고, 자율성 제고라는 명분으로 대학에 일임한다면, 대학도서관 상황이 법 제정 이전 상황으로 후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정말로 법 개정의 취지가 사서들의 실질적인 역량 강화를 돕겠다는 것이라면, 개정과 함께 대학도서관계가 수긍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도 같이 제시돼야 했다.
진흥법은 ‘어떤 일이나 분야를 떨치어 일으키기 위해 만든 법’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