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

이승섭 카이스트(KAIST) 교수

2025-04-14     한국대학신문
이승섭 카이스트(KAIST) 교수

“공부는 언제 가장 열심히 해야 하나?” 필자가 외부 강연에서 던지는 첫 질문이다. 보기로 중2, 고3, 대학교 2학년, 그리고 박사과정을 예로 드는데 다양한 청중 속에서 필자가 원하는 답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 청중들의 답은 물론 ‘고3’이다. 고3 때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더 나은 직장을 얻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사회 통념 때문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중2도 가능한데, 영재고, 과학고 입시가 중3 때 있고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의 의대와 일류대학 합격률이 높은 현실을 고려하면 중2는 입시 전략상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일부 청중들은 교수인 필자의 의도를 지레 짐작해 박사과정이라고 답하기도 하지만 박사과정은 연구를 할 시기이지 열심히 공부할 시기는 아니다.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이는 답은 ‘대학교 2학년’인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필자가 원하는 답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성실하고 일찍 철이 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한다. 혹자는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남보다 빨리 풀어야 하는 상황에서 학습지능 또한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학생들은 대부분 철이 들고 엄마의 영향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며,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대학교육의 특성상 학습지능도 생각만큼 그렇게 중요한 요인이 못 된다. 대학에서의 성공 요인은 ‘꿈과 재미’다. 즉, ‘전공 적합성’이다.

대학교육은 자신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전공 수업이 핵심이다. ‘진리 탐구’라는 말로 거창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에도 수학과 학생은 수학, 법대생은 법학, 공대생은 공학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학문의 진리를 배우고 찾아가는 것이다. 수능 준비를 하면서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는 고등학생은 없지만 대학에서 전공 과목을 들으면서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은 많다. 그리고 많아야 한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이 촬영기법을 배우고 로켓에 빠진 학생이 추진역학을 배울 때, 의대생이 해부학을 배우고 법대생이 헌법개론을 배울 때,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향한 기대와 설렘 속에서 학문적 흥미와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필자가 ‘대학교 2학년’을 꼭 집는 이유는 전공의 핵심 개념들이 처음 소개되는 시기인 탓이다. 혹자는 대학 간의 수준 차이를 언급하며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우리나라 대학들은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발전해 학부 교육의 경우 대학 간의 수준 차이는 사회 통념과 달리 크지 않다. 오히려 일류대학의 경우 교수들이 대학원생들과 연구에 몰두하고 학회 등의 잦은 외부 활동 등으로 학부 교육에 소홀히 할 개연성이 높다. 참고로 우리 사회에서 대학 서열을 결정짓는 것은 교수들의 학문적 수준 차이보다 입학생의 내신등급과 수능점수, 정부와 대학 재단의 지원 등의 차이가 훨씬 중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40여년 전 필자 세대도 일류대학 진학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간주됐다. 하지만 오늘날 당시의 일류대학 진학 여부보다 대학 진학 후에 행해지는 수많은 노력들이 사회에서의 성공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다. 이러한 상황을 사람들은 “학교 성적과 사회에서의 성공은 관련이 없다”라는 말로 피해 가기도 하지만 그 경우 앞에서 언급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고3의 논리와 모순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일류대학 입학이 줄 수 있는 많은 장점들은 결코 폄하되거나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대학 교육이 충실해진 오늘날에서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웠고, 얼마나 충실하게 습득했느냐가 대학 입학을 통해 얻어지는 간판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결론적으로 공부를 가장 열심히 해야 할 때는 ‘고3’이 아니라 ‘대학교 2학년’이고 또 그래야 한다. 사회에 나가 직업 현장에서 활용할 전문 지식의 대부분을 대학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3 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내용들이, 사회 심지어 대학에서조차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당혹감을 느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회’가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사회’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간혹 ‘미국의 경우’라는 토를 다는 때인데, 그 때는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 2학년’을 답으로 선택하곤 한다. 결국 잘못된 교육제도와 그로 인해 비롯된 사회 환경 탓으로 우리 사회와 아이들은 엉뚱한 곳에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학부모와 아이들이 억울하고, 국가와 사회는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