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기 대선, 대학이 목소리를 낼 마지막 기회다

2025-04-25     한국대학신문

정권 교체기마다 고등교육정책은 새로운 로드맵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매번 대선이 다가오면, 특정 소수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육캠프가 정책을 기획하고, 그 결과는 곧 후보자의 공약집에 반영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고등교육의 장기적 전략이 아닌, 단기적 정략에 근거한 설계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대학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이들이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된 채, 외곽의 시선으로 대학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는 현실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 총장들은 하나같이 2030년대가 한국 대학의 생존을 가를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학령인구 감소의 정점,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글로벌 경쟁의 격화가 동시에 몰아닥치는 시대다. 이번 정부 그리고 조기 대선은 대학이 그 위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전에 체제와 전략을 정비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준비의 기회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그 다음은 체질 개선이 아닌 생존을 둘러싼 구조 붕괴의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 조기 대선은 한국 대학이 더 이상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돼야 한다. 대학 총장들이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각 대학 협의체들이 고등교육의 방향성을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침묵하거나 외부 설계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에 머문다면, 고등교육정책은 또다시 외부의 손에서 결정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과 다음 세대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은 지난 16년간 등록금 동결과 정부 중심 재정정책 속에서 구조적인 재정난에 시달려 왔다.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 존폐를 논의해야 할 만큼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으며, 수도권 중심의 정책 배분은 고등교육의 지역 균형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등록금, 재정지원, 평가제도 등 핵심 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리며, 대학의 자율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학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세적 위치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그 자세를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

이제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체 등 대학 협의기구들이 보다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단지 정부 발표 이후 입장을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직접 정책을 발의하고, 입안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대응력과 통합된 리더십이 절실하다. 고등교육정책은 이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대학이 스스로 만들어야 할 과제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대전환기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 발전은 교육의 형식과 내용, 운영방식 전반에 걸쳐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의 교과과정, 교수의 역할, 행정 체계, 학습 환경 모두가 재설계의 대상이다.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에서 대학의 최고 경영자인 총장들이 개별 대학 문제를 넘어, 한국 고등교육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책 현장과 제도, 거버넌스와 재정, 기술과 철학이 동시에 맞물리는 복합적 국면에서, 총장들의 참여 없이는 고등교육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 교육캠프에 일부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정책의 뼈대를 그리는 관행 역시 재고돼야 한다. 실질적 운영 책임을 지고 있는 대학 총장들이 정책 설계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총장들의 경륜과 현장성은 교수 집단의 학술 전문성과 결코 상충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축이 돼야 한다.

정치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의 철학과 방향이 바뀌어선 안 된다. 교육은 공공재이며, 고등교육은 단지 직업 교육의 수단이 아닌, 사회 전체의 비판과 성찰, 공공성과 상상력을 재생산하는 지적 기반이다. 지금까지 대학이 침묵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 침묵을 깨야 할 때다. 교육의 본질을 사회와 정치권에 질문하고, 동시에 대안을 제시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번 대선은 대학이 스스로를 증명할 마지막 기회다. 대학은 단지 비판의 공간이 아니라, 시대를 실험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지성의 거점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거점의 책임은 누구보다 대학을 이끌고 있는 총장들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은 그들이 결단하고 나설 시간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