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학 행정의 학문적 탐구가 필요하다
유신열 한국대학경쟁력연구원 사무총장
민주주의 국가 조직은 안정적 관료체계 바탕 위에 선출된 리더의 혁신 역량이 상호작용을 통해 역동적으로 발전한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게 되면 사회는 혁신하지 못하고 역동성이 떨어지거나 잘못된 혁신의 신념만으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초강대국 지도자가 ‘이제는 우리가 갈취할 때’라고 외치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온 국제관계를 흔들고, 국내에서도 한밤중에 뜻밖의 계엄령 선포해 혼란을 겪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불안정한 리더십 속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주목받으며, 우리 사회는 관료들의 항명과 복종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기회가 됐다.
관료체계에서 행정전문가는 선출된 리더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리더가 조직을 긍정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칫 리더의 오판이 관료체계 시스템 안에서 해결 불가능할 경우 조직 구성원 전체가 나서야 한다. 이번 국가 위기의 순간에도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탄핵 결정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교훈은 대학에도 유효하다. 대학은 스스로 모범적 조직을 운영해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시민과 관료를 길러야 한다. 이러한 역량은 강의실에서부터 축적돼야 하는데, 지식만 주입하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파커 J. 파머는 저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전문가가 아마추어에게 사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전통적 교육 모델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대신 ‘진리의 커뮤니티’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커뮤니티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구성원이 함께 탐구하며 성장하는 공간이다. 교육은 수동적 청강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사실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대학은 국가 체계에서부터 대학, 학과, 부서 단위의 조직 운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진리의 커뮤니티가 작동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 조직도 관료체계의 행정 전문가와 선출된 리더의 역할 작용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행정’을 진리의 커뮤니티 원의 중심에 놓일 공통적 주제 중의 하나로 고려해 볼 만하다. ‘대학 행정’을 교육, 연구, 봉사 등 대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용하는 다양한 행정적 체계와 프로세스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다루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학은 정작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학문적으로 탐구해 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류에게 대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세계적인 대학의 수준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대학의 본질인 교육과 연구는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돼야 하고, 그 본질적 개별요소를 하나의 의미 체계로 연결하는 도구가 바로 대학 행정이다. 대학은 분절된 학문 단위 사일로(silo) 저장고와 같고, 이 사일로는 행정을 통해 실행 및 관리되고 대학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이 스스로 진리의 커뮤니티를 통해 그 답을 찾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면, 대학 행정을 통해서 대학 내외의 모든 관계를 연결해서 진리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대학이라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난 2월 말에 31년 동안의 대학 행정직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의 모든 행정 경험이 대학의 본질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음을 내면 깊숙이 느끼고 있다. 대학에서 경험한 일들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대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고 역사다. 각자의 경험을 객관적 맥락으로 정리해두면 대학 행정을 통해 대학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필자의 대학 행정 기록은 유튜브 참고). 개별적 경험들이 대학의 목적과 연결되어 일체감을 획득할 때, 우리는 그 일의 결과를 의미 있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대학 행정이 진리의 커뮤니티 안에서 학문적 탐구의 주제가 되길 희망한다. 그것이 대학 행정을 통해 대학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것은 물론, 대학이 국가와 사회에 올바른 역할을 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