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커칠 시위’ 반년, 여대 3곳의 다른 선택

대학 공동체는 시위 이후 무엇을 복원할 것인가 여대들, 시설 복구 넘어 책임과 치유 사이 고심

2025-05-13     윤채빈 기자
동덕여대 캠퍼스 건물에 공학전환 반대 문구가 래커칠로 적혀 있다. (사진=김준환 기자)

[한국대학신문 윤채빈 기자] ‘래커칠’이라는 시위 방식이 일부 여대 캠퍼스에 등장한 지 반년. 래커칠로 상징되는 시위 피해 복구와 법적 대응을 두고, 여대별로 각기 다른 해법을 모색하고 있어 대학가의 주목을 끌고 있다. 행정 마비와 시설 훼손 등으로 손실을 입은 동덕여대를 비롯해, 성신여대와 서울여대는 법적 책임 소재와 공동체 회복 간의 균형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사안의 성격과 대응 기조에 따라 ‘법적 조치’, ‘신중한 대응’, ‘자발적 복구’ 등 접근법이 상이한 점도 눈에 띈다.

동덕여대는 지난해 11월 일부 학생들의 남녀공학 반대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전면 점거와 래커칠 등으로 인해 행정 기능이 마비되고 전 교내 건물 외벽 및 내부에 걸쳐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피해액 54억 원은 학생들의 전면 점거로 인해 행정이 마비되고, 모든 건물에 래커칠 피해가 발생한 상황을 바탕으로 책정된 최대 추정치”라며 “복구 업체가 사진만으로 피해 범위를 가늠해 산정한 금액이며, 실제 복구 수준에 따라 20억 원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복구 비용이 적은 규모가 아닌 만큼 입찰 공고를 통해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덕여대는 외부 단체의 개입 정황에도 주목하고 있다. 관계자는 “시위 사진 가운데 여성단체 등 외부인이 함께 촬영돼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복구비 책임 소재는 래커칠에 학생들이 직접 가담한 것인지 혹은 외부인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는 복구비 책임 소재를 가를 핵심 쟁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태에 가담하지 않은 대다수 학생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 주체가 밝혀지면 해당 학생 또는 단체에 민사소송 등을 통해 복구 비용을 청구하는 방향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학교 측도 최대한 긍정적 방향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 문제가 오래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성신여대에서도 2025학년도 신설된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의 입학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래커칠 시위가 벌어졌다. 이를 두고 학교 측은 지난달 공식 입장문을 발표해 “공개 입찰 등 절차에 따라 복구 업체를 선정해 올해 상반기 중 모든 훼손 시설을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재발 방지를 위해 시설물 훼손 주동자에 대한 법적 조치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지만, 구체적인 대응 방식은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여대 50주년기념관의 기둥이 천으로 감싸져 있다.  (사진=윤채빈 기자)

한편 서울여대는 래커칠 시위의 배경이 ‘교내 성범죄 교수 의혹에 대한 대응’이었던만큼, 단순 복구를 넘어 공동체 회복 중심의 접근을 택했다. 지난달 29일 이윤선 총장과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50주년 기념관 앞에서 ‘다시, 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교내 유리벽 등 시위 흔적을 정리하는 활동을 진행했다. 이날 이윤선 총장과 김수연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은 50주년기념관 기둥을 천으로 감싸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태 수습의 시작을 알렸고, 교직원과 학생들이 인문사회관, 행정관 등 주요 건물의 유리면 정화 작업에 참여했다.

서울여대 관계자는 “단순한 시설 복구를 넘어 공동체 신뢰 회복을 위한 계기로 삼겠다”며 시위 이후 총학 비대위가 제안한 제도 개선 과제 이행에 착수한 상태다. 총학생회 비대위 역시 유리벽 흔적 정리, 복구 모금 캠페인, 제도 정비 등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복구 방식과 범위에 대해서는 교육과 연구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 중이며, 관련 경과는 별도 홈페이지를 통해 구성원들과 공유할 방침이다.

서울여대 김 모 학생(3학년)은 “학교 안의 불필요한 갈등이 더는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학교 측에서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도 학생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 모 학생(2학년)은 “기둥을 천으로 감싼 퍼포먼스처럼 우리도 서로를 다시 감싸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경험이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 모델로 확장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여대 래커칠 시위의 복구 방식과 법적 책임을 둘러싼 다양한 접근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대학 공동체의 복원’이다. 특히 이번 시위로 인해 학생들의 취업과 사회적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우려가 대학가에서 제기되고 있어, 단순히 시설물 복구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여대를 둘러싼 인식 변화에도 신중을 기할 시점이다. 대학이 선택한 해결책이 래커칠로 멍든 교정을 치유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