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면 소멸, 국가중심국공립대학 ‘경고등’ 켜졌다

수도권·거점대 중심 정책, 국가중심국공립대 소외 심각 분절적 재정지원과 자율성 부재, 혁신의 발목 잡혀 통합·특성화·재정 개편·체질 개선, 지금이 골든타임

2025-05-19     백두산 기자
국가중심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는 지난 4월 10일부터 1박 2일간 국립목포대학교 70주년기념관 정상묵컨퍼런스룸에서 ‘2025년 제1차 국가중심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를 개최했다. (사진=국립목포대)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지금의 고등교육 정책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은 머지않아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학령인구 급감, 수도권 쏠림, 그리고 정부 정책의 수도권·거점대학 위주 지원이 맞물리며, 지역 균형발전과 인재양성의 핵심 축인 국가중심국공립대학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은 전국 9개 권역에 걸쳐 설립된 비수도권 국립대학들로, 각 지역의 교육·연구 허브이자 지역 혁신의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 대학은 수도권과 서울 주요 대학에 집중된 교육 기회를 지역으로 확장하고, 지역 인재의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을 이끌어왔다.

특히 기초학문, 인문·사회, 첨단분야 등 사립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와 학문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 정책과 재정 지원에서 소외되며, 그 역할과 미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 수도권·거점대 중심 정책, 국가중심국공립대 소외 =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서울대, 거점국립대, 수도권 주요 대학에 집중돼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은 정책 논의와 재정 지원에서 이중으로 소외되고 있다.

2025년 기준 정부의 고등교육 지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7%로, OECD 평균(1.0%)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중심국공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 역시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16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자체 수입도 정체돼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이나 기초·인문학, 지역 특화 학문 육성에 필요한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

특히 대학 간 발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비수도권, 국립대-서울 주요 사립대, 서울대-거점국립대 간 격차가 확대되며, 지역 소재 대학의 공동화와 서열화, 학벌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IMD 대학교육경쟁력’(2023) 등 국제지표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2023년 국립대학 운영·시설비 및 일반재정지원 규모를 보면, 국가중심국공립대의 총합계는 1조 7085억 원으로 거점국립대(2조 7652억 원)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 분절적 재정지원과 자율성 부재, 혁신의 발목 = 이러한 재정 위기의 근본 원인은 정부 주도의 칸막이식 예산 구조에 있다.

인건비, 시설비, 경상비, 국립대학육성사업비 등 예산이 분절적으로 지원되면서, 대학 현장에서는 자율적이고 신속한 혁신이 어렵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 행정적 낭비와 비효율이 발생하고, 실제로 경쟁력 있는 학과 신설이나 지역 산업과 연계된 교육과정 개편이 시급해도 예산 용도 제한으로 실행이 지연되는 사례가 반복된다.

실제로 K대학은 경쟁력이 없는 학과를 통폐합하고 첨단분야 학과를 신설하기 위해 인건비·시설비·경상비를 산정했으나, 인건비와 경상비만 반영되고 시설비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이 표류하는 상황에 처했다.

S대학은 예상치 못한 세금 납부 사안이 발생했으나 경상비 부족으로 은행 차입까지 해야 했고, M대학은 실습선 조리원 인건비 부족으로 실습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이런 분절적 예산 구조는 대학의 자율적 혁신과 현장 적합성 있는 예산 집행을 저해하는 그림자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도 국가중심국공립대학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40년까지 학령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인 25만여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학별 학과 구조조정, 통·폐합 등 양적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수도권·거점국립대 중심의 지원이 강화되고, 국가중심국공립대는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는 지역 인재 유출, 지역 대학 공동화, 지역 소멸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 체질 개선, 지금이 골든타임 =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재정의 안정적 확충과 지원 방식의 혁신이 시급하다.

2023년 신설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고특회계)는 2025년 예산안 기준 16조 3998억 원으로 확대됐으나, 여전히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며, 2025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기한 연장과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교육부는 고특회계의 존속 기간을 최소 2035년까지 연장하거나 영구화하고, 국가·지자체·대학이 균형 있게 재원을 확충할 수 있는 전략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대학 재정의 자율성과 효율성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인건비, 경상비, 시설비 등 분절된 예산을 통합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별 총액인건비제 도입, 연봉 자율 책정권 부여 등 인사·예산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우수 인재 유입과 첨단 분야 혁신의 필수 조건이다. 실제로 현재 국립대 교수는 교육공무원 신분으로 연봉·성과급 통제를 받으며, 우수 석학의 유입과 해외 유출 방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현장에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9개 권역별 국립대학시스템(KNU System)으로의 통합을 추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캠퍼스별 특성화를 통해 지역 전략산업과 국가전략 분야 인재를 집중 양성하는 혁신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육부는 “비수도권 국립대를 9개의 대학 시스템으로 개편하고, 지역 교육·연구 혁신플랫폼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각 권역별 대학은 기초·보호학문, 첨단 분야, 지역 특화 분야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국가출연연구원과 연계해 학부에서 석·박사까지 전주기 인재양성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립대와의 소모적 경쟁을 넘어 상생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혁신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실제로 2025년부터 출범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에서 국립대가 단일화됨에 따라 사립대와의 경쟁이 아닌 협력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립대 등록금의 단계적 무상화와 지역인재에 대한 지원 강화도 필요하다. 교육부는 “국립대가 기초학문, 국가전략 분야 등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거나 사립대가 담당하기 어려운 분야의 인재 및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주력해야 하며, 인문학 및 자연과학 분야 학부 및 대학원 과정 운영을 위한 재정을 국가가 전액 지원하고, 학생들 등록금 면제를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역 출신 학생에게 등록금을 면제하는 등 실질적 지원책 마련도 강조되고 있다.

국립대 총장을 지낸 한 원로교수는 “지금이야말로 국가중심국공립대학의 체질 개선과 재정 혁신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땜질식 처방이 아닌, 통합·특성화·재정개편을 통한 근본적 변화 없이는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