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초(超)선진국 진입하려면 인문사회 R&D 1조 수준으로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장
인문사회과학은 ‘선진국의 함정’을 넘어 ‘초(超)선진국’으로 이끄는 조타수이다. 그동안 성장동력 역할을 해왔던 공학만으로는 더 이상 초(超)선진국으로 나갈 수 없다. 한국은 1990년대에 ‘중진국 함정’을 넘어 3만불 시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GDP규모, 무역규모, 군사력, K문화 등 세계 10대 주요 강국으로 도약했다. ‘선진국의 함정’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유럽과 일본의 빈자리를 한국이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미국처럼 산업 혁신을 통해 초(超)선진국으로 도약하거나 중국에 따라잡혀 선진국의 함정에 주저앉을 기로에 서있다.
‘선진국의 함정’을 벗어나는 데 무엇이 필수적인가? 산업의 지속적인 혁신과 균형적인 산업 발전이다. 산업혁신의 핵심에 AI산업이 있다. 이번 조기 대선 국면에 주요 대선 후보들이 AI산업 육성을 위해 100조나 200조 투자를 이야기한다. 올바른 방향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그 이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Chat GPT, 퍼플렉시티, 딥 시크(Deep Seek) 같은 AI개발이 인문사회에 대한 투자 없이 가능할까? AI 산업의 핵심은 데이터다. 데이터의 생산, 축적, 관리는 인문사회가 전통적으로 해온 주요 영역의 하나다. 그러면 한국은 AI 혁명 시기에 인문사회과학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대표적인 AI 산업 선두주자인 미국은 한국보다 49배 정도의 R&D 예산을 인문사회과학에 투자하고 있다. 2023년 미국 연방정부의 R&D예산 157.5조 원(1086억 불)에서 인문사회과학 비중은 약 11.2%인 17.6조 원(122억 불)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전체 R&D 25년 현재 약 29조 4300억 원의 3590억 원으로 약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인문사회분야에 미국은 한국보다 예산 규모 면에서는 49배, 예산 비중 면에서 약 9.3배 더 많이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AI 산업을 미국 수준으로 육성하려면 미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미국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정도 수준을 투자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 현재의 1.2% 수준에서 3%대 수준인 1조 원대 R&D를 인문사회분야 육성에 배정해야 한다. AI 산업 육성 100조나 200조를 이야기한다면 최소한 1조는 AI관련 인문사회과학 육성에 투자해야 할 것이 아닌가.
AI산업과 가장 밀접한 인문사회과학의 하나가 언어학이다. 국내 대학 가운데 서울대, 고려대, 충남대 3개 대학에만 언어학과가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100개가 넘는 대학에 언어학과가 있고, 실리콘 밸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에만 스탠포드대, 버클리대, UCLA 등 10개 대학 이상에 언어학과가 있다. 언어학만 비교하면 3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한국이 AI산업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인문사회과학을 시급하게 육성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균형적인 산업 발전도 ‘선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다. ‘찌그러진 육각형’은 전체 면적을 더 키우기 어렵다. 선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선, 철강, 기계, 화학, 자동차 등 전통적인 산업의 질적 혁신이 필요하다.
균형적 산업발전을 위해서 균형적 학문발전이 필요하다. 질적인 산업혁신을 위해서 공학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 화학, 생물같은 자연과학의 균형있는 육성이 필요하다. 노벨상 없는 초(超)선진국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도 균형있게 키워야 한다. AI산업 육성에 직접 관련 있는 언어학, 심리학, 통계학, 문헌학, 역사학, 철학 등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 기초학문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 인문사회 분야 교양교육, 대학, 대학원, 학문후속세대, 학회, 대학 연구소, 공공연구기관, 관련 정부 부서 등을 유기적으로 고려한 중장기적인 육성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최근 국내외 정세는 한국 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미래에 큰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선진국의 함정에서 벗어나 초(超)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균형적인 산업발전과 균형적 학문발전이 필요하다. 초(超)선진국으로의 도약 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는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 정당, 사회가 힘을 하나로 모아 재정적 인프라를 마련해주시기를 간곡히 기대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