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준론] ㉗ 대학이 미래산업의 핵심엔진이 되어야 한다
김성동 계원예술대학교 총장
대학은 더 이상 교육과 연구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AI 시대에 우리는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지방 소멸 등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정적 동력을 받은 대학은 지역의 생존과 번영의 핵심적인 엔진이자 ‘앵커’(Anchor) 역할을 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도시개발 사례는 쇠퇴하던 도시들이 어떻게 대학 중심의 혁신 생태계를 통해 어떻게 활력을 되찾을 수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모델은 한국 대학들의 미래 전략과 지역 혁신 모델을 설계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앵커(Anchor) 기관의 대학의 도시 혁신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West Lafayette)에 위치한 퍼듀대학교(Purdue University)의 사례는 한국의 지역과 대학들이 깊이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례이다. 퍼듀대는 미국 최고의 공학대학 중 하나로, 대학이 지역의 산업·기술·경제 생태계를 어떻게 혁신하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퍼듀대는 핵심전략으로 지역 산업(제조업, 항공우주, 농업 기술 등)의 고도화를 주도해 왔다. 대학은 단순 자체 연구 역량을 넘어서, 지역 기업의 문제 해결과 제품 개발을 위한 밀착형 기술 지원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왔다. 주정부(State Government)와 대학이 지역협력을 통해 대학 인근에 대규모 연구단지인 ‘Purdue Discovery Research Park’를 조성해, 대학 연구성과의 기술이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산업체 유치 등을 주도해 왔다. 이 연구단지는 현재 28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5000명 이상의 고급 연구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퍼듀대는 학부생부터 대학원생까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핵심 역량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창업 공간, 펀딩 지원 시스템, 전담 멘토 네트워크등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디애나 주정부, 라피엣 시정부(Local Government), 그리고 산업계와의 긴밀한 협력 구조 속에서 대학은 지역 정책 파트너, 산업 브릿지, 그리고 청년 정착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대학이 단순히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의 혁신을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주체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부분 많은 도시가 대학과 협력해 쇠퇴한 지역을 지속 가능한 혁신의 플랫폼으로 전환해온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한국 대학에 주는 전략적 시사점
퍼듀대의 사례는 한국 대학에게 세 가지 중요한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는 대학의 핵심전략이 지역 핵심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동기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산학협력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산업 생태계의 핵심 기술 고도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연구와 창업,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기술이전, 창업, 취업, 지역 기업 유치까지 이어지는 연결된 생태계 플랫폼이 필요하다. 대학은 더 이상 ‘내부 중심’이 아니라, ‘외부 중심’의 조직으로 변화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지역, 지자체, 기업, 시민사회와의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이 성공의 열쇠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대학들이 지역혁신의 핵심의 축이 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대학은 ‘지역 연계’를 단기 성과 중심의 사업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와 기업들이 대학을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정부에서는 2023년, 2024년 시범사업을 거처 2025년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체계인 RISE(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사업을 만들어 대학이 지역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RISE 사업은 글로벌 대학 경쟁력 강화, 지역 특화 산업 기반 강화, 지역사회 동반 성장, 평생·직업 교육 강화, 대학 창업 육성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5년간 진행하게 되는 사업이다. 지·산·학·연 협력 생태계 구축으로 지역의 미래성장동력 발굴과 대학과 산업계, 연구단지 등이 별도로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대학과 함께 한다면 그만큼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 대학이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연구단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수도권 집중화 현상으로 인해 지방 인구소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 권한을 지자체에 과감하게 위임하고, 지자체는 대학과 지속적이고 협력적인 동반자 관계(파트너쉽)를 구축해 지역과 대학이 함께 미래 산업단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고민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언급한 퍼듀대는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대학이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생태계 설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제 한국의 대학들도 생존을 넘어, 지역과 함께 미래를 디자인하는 전략적 플랫폼이 돼야 한다. 대학은 단지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혁신의 엔진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지방 소멸, 청년 유출, 산업 고도화 부재라는 복합적인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지역사회에서는 대학의 전략적 전환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산업 고도화를 위한 대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 산업과의 연계된 교육과 연구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산학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아가야 한다. 미국의 성공적인 도시설계 사례는 한결같이 말한다. “도시를 바꾸려면, 대학을 중심두고 설계해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더 이상 선택적 지역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지역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는 핵심 엔진이어야 한다. 특히 문화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대학은 지역을 브랜드화하고, 인간적인 삶의 질을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학은 지역 문제 해결의 플랫폼, 지역 미래산업 브랜드를 형성하는 창조적 주체, 그리고 청년과 기업이 정착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과학기술·예술·디자인·문화 산업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대학들은 지역 산업과 생활 문화 전반을 혁신하는 문화적 앵커로서 차별화된 도시설계를 통하여 미래산업 전략을 창의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예술은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시키고, 공간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산업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강하고 도전적인 소프트 파워 의 힘과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제 대학들은 지자체 및 지역 공공기관과 협력해 중장기 지역혁신 전략을 수립하고, 정책 파트너로서 그 실행과 평가까지 함께 해나가야 한다.
우리 대학들도 이제는 지역의 소비자가 아닌, 공동 창조자(Co-Creator)로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지역의 미래를 여는 대학의 역할을 완수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제 어떤 도전과 창의적인 지역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그 길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