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대한민국] 인공지능 시대, 인간을 위한 교육의 미래를 묻다
류완하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총장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사고를 예측하며, 감정까지 분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알고리즘은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이러한 기술은 산업 전반에 걸쳐 혁신을 이끌며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간의 존재 가치와 삶의 질, 나아가 ‘인간다움’이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자리한다.
우리는 이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 앞에서 교육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교육은 오히려 인간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은 단지 기능을 습득하는 과정을 넘어서, 인간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힘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 구조의 급격한 재편 속에서 교육의 기능을 효율성과 실용성의 틀에 가두려 한다. 대학 구조조정, 정량 평가, 취업률 중심의 경쟁 체제는 많은 대학의 교육 철학과 정체성을 위협한다. 특히 지역 대학들은 생존을 위해 본질적 가치를 일부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교육은 경쟁의 장이 아니라, 성찰과 통찰의 장이 돼야 한다.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넘어 존재와 삶을 깊이 탐구하고, 기술의 방향성과 인간의 가치를 함께 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교육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의 진보를 인간 중심의 발전으로 이끄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술을 선도하는 주체인 인간의 철학과 가치관은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단순한 기술 중심의 교육을 넘어, 기술에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통찰과 교육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은 기술의 발전을 견인함과 동시에, 그것이 인류 공동체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조율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역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을 넘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역사, 정신적 자산을 발굴하고 재해석하며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동국대 WISE캠퍼스가 위치한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수도이자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역사 도시다.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인간의 사유와 예술, 종교, 과학이 어우러진 문화적 총체이며, 나아가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K-컬처의 원형이자 뿌리다.
동국대 WISE캠퍼스는 이러한 경주의 유무형 자산을 디지털 콘텐츠, 문화예술, 관광 산업으로 재해석해 문화 수출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전통 보존을 넘어, 지역 문화를 글로벌 콘텐츠로 전환하는 창의적 교육 실현이며, 한류의 뿌리를 세계로 확산하는 문화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역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뉴 실크로드 시대에 문화 확산의 거점이자,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 교육의 틀을 넘어, 미래 산업 생태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교육 혁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공동운명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과 대학이 상생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동국대 WISE캠퍼스는 경주시, 경상북도와 함께 지역 산업과 문화 자산에 뿌리 내린 글로컬 인재 양성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 체계는 지역에서 시작해 세계와 연결되는 미래형 인재를 육성하는 혁신의 틀이며, 변화하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유연한 역량 개발의 출발점이다.
특히 우리 대학은 지역의 강점 분야인 역사·문화·관광 분야와 더불어, 미래 전략 산업인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 특화된 학제 운영을 통해 인류 삶을 지탱하는 두 축, 즉 ‘문화’와 ‘에너지’를 중심으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한다. 이 두 분야는 국가적 의제와도 직결되는 중대한 분야로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전략 분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전국의 모든 대학이 획일화된 교육 모델을 따르는 시대는 끝났다. 각 대학은 고유의 건학 이념과 지역적 특성, 역사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교육 모델을 구축하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규모나 실적만으로 대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진정한 경쟁력은 각 대학의 고유한 철학과 자생력에서 비롯된다.
인공지능 시대의 고등교육이 지향해야 할 중요한 방향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의 다양성이다. 이는 곧 융합적 사고, 모듈형 학습, 학문 간 경계 허물기를 통한 창의성과 유연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작지만 단단한 철학을 가진 대학, 지역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대학이야말로 미래 고등교육의 대안으로 주목받아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가능케 하는 중심에는 ‘인간을 위한 교육’이라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교육의 원점이다.
대학은 단순한 취업의 관문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통찰력을 기르는 공간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는 기술의 급진성과 인간성의 상실 사이에서 쉽게 방향을 잃을 수 있다. 그렇기에 대학은 이 시대의 나침반이 되어야 하며, 미래를 이끄는 도덕적 지성과 문화적 상상력을 길러내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교육,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교육, 그리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교육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기술 혁신의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힘이며, 진정한 경쟁력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