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대 10개’의 그림자, 대학을 흔드는 정책의 이중주
이재명 정부 출범 2주가 지났다.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을 시작한 만큼, 국정기획위원회가 대통령 철학을 국가정책과 국정과제로 재구성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하지만 일부 부처의 업무보고는 질책을 받고 재보고를 준비 중이며, 국정 전반의 방향성 역시 아직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고등교육 정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과 총선에서 반복해 강조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현 정부 고등교육 정책의 핵심 슬로건으로 부상했다. 지역균형발전, 지방대학 육성, 입시경쟁 완화 등 다양한 명분을 담은 이 구상은 겉보기에는 야심차고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서울대’라는 상징성을 차용한 이 표어는 정작 구체적 실행방안과 재정청사진, 제도적 정합성 면에서는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 기존 정책과의 연계성 부족은 혼선의 단초가 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전 정권에서 시작된 ‘글로컬 대학 30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지역 중심 대학이 글로벌 연계와 지역 혁신을 동시에 추진하도록 설계된 중장기 국책사업이다. 2023년 1차 공모에서는 10개 대학이, 2024년 2차에서는 11개 대학이 선정됐고, 현재 3차 공모가 진행 중이다. 교육부는 2027년까지 총 30개 글로컬 대학을 육성할 계획이며, 선정 대학에는 연간 100억 원 내외의 예산이 5년간 투입된다. 그러나 새 정부는 이 사업의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대상 대학으로 거론되는 지역거점국립대 대부분이 이미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돼 있다는 점이다. 부산대, 경북대, 전북대, 충북대, 강원대 등은 글로컬 사업을 수행 중인 대학들이다. 그렇다면 글로컬 사업은 종료되고 ‘서울대 만들기’로 전환되는 것인가? 아니면 두 사업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것인가? 이처럼 명확한 정책 지침 없이 슬로건만 앞세운 정책 전환은 대학 현장을 혼란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더욱이 글로컬 대학사업은 예산 구조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교육부는 기존 대학혁신지원사업, LINC 3.0,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 등 다른 국책사업의 예산을 통합하거나 전용해 글로컬 사업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사업 전용 예산 항목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의지에 따라 언제든 중단되거나 축소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이미 심각하게 위축돼 있다. 재정지원사업의 평가 기준에 따라 대학의 전략과 방향이 좌우되고, 때로는 고유한 정체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과제 수행에 매달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의 일관성마저 무너지면 대학은 그야말로 정권 교체기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2024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전국 4년제 대학 189개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국가 고등교육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낮다”는 응답이 무려 81.2%에 달했다. “재정지원 사업이 지나치게 표어 중심으로 설계되며 잦은 변경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다수 제기됐다. 이러한 불만은 단순한 행정 피로도를 넘어, 대학 정책에 대한 구조적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방대 육성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포퓰리즘적 슬로건이 아니라, 각 대학의 특성과 지역 여건을 반영한 실효적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실제로 많은 글로컬 대학들은 이미 지역 산업체, 지자체, 공공기관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는 관계 자산이다. 이러한 연계망을 무시한 채 또 다른 정책을 들이밀 경우 지역 혁신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
정치권은 고등교육을 정권 마케팅의 수단이 아니라, 국가 백년지대계로 존중해야 한다. 정책의 연속성과 신뢰를 보장하지 못하면 어떤 개혁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학도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살아남기 위해 침묵해온 지난 세월이 오히려 대학을 더 깊은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고등교육은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세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표어가 아닌 정책, 단절이 아닌 연속성, 일방적 지시가 아닌 협치가 지금 고등교육에 필요한 조건이다. 대학이 흔들릴수록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