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등록금 상한 인하, 고등교육 자생력 무너뜨린다
2026학년도부터 적용될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대학 등록금 인상 상한선이 기존 ‘최근 3년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1.5배’에서 ‘1.2배’로 하향 조정됐다. 표면상으로는 학생 부담 완화를 위한 조치지만, 실상은 17년간 사실상 동결돼 온 등록금 정책을 더욱 경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학령인구 급감과 재정압박이라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이뤄진 등록금 억제는, 대학의 자생력을 무너뜨리고 교육 생태계를 교란하는 심각한 정책 오류다.
등록금 동결은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대학들의 자율적 결정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2012년 반값 등록금 공약과 함께 국가장학금이 도입되면서, 교육부는 각종 재정지원 사업의 조건으로 등록금 동결을 사실상 강제해왔다. 고등교육법이 허용하는 인상 한도마저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채, 대학은 지난 16년간 재정 자율권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번 상한선 인하는, 대학 재정을 향한 압박을 법제화함으로써 고등교육 위기를 더욱 구조화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구조적 진단 없이 정치 여론에 휘둘려 결정됐다는 점이다. 일부 대학들의 제한적 등록금 인상 시도에 정치권은 즉각 대응했고, 정부는 아무런 조정 없이 이를 수용했다. 고등교육 정책이 여론 중심의 단기 처방에 좌우되는 동안, 대학은 정책 대상이 아닌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 특히 등록금 수입이 재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립대학에겐 이번 조치가 더욱 치명적이다.
대학의 재정 구조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정부 지원은 대부분 목적성 사업에 한정되고, 기부금이나 재단 전입금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줄어든 등록금 수입은 교수 인건비 동결, 연구비 및 실험실습비 삭감, 장서와 기자재 예산 축소로 이어졌고, 이는 교육 여건 악화와 경쟁력 저하를 불러왔다. 특히 AI, 반도체,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필요한 고급 인재 양성의 기반이 취약해지는 것은 국가 전체에 중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올해 QS 세계대학평가에서 한국 대학 중 상위 100위에 오른 대학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단 세 곳뿐이다. 재정 부족이 교육과 연구의 질 하락을 가져오고, 이는 고등교육 전반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등록금 정책은 이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단순히 인상 폭을 조정할 문제가 아니라, 등록금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국가책임, 대학 자율, 사회적 합의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등록금은 ‘가격’이 아니라 ‘투자’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등록금 책정에 있어 학생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되, 대학이 교육과 연구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정 수준의 재원이 확보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차등적·유형별 등록금제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 학과 특성, 교육비용, 지역·규모 등 대학별 여건을 반영해 유연한 책정 기준을 마련하고, 정부는 장학금과 교육바우처를 통해 실질적 부담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처럼 획일적 상한선만 고집한다면, 수도권·상위권 대학과 지역·중소형 대학 간의 양극화만 심화될 뿐이다.
또한 등록금 수입 감소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대학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고향사랑 기부제도처럼 일정 금액 이하에 대해 전액 세액공제를 허용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한 대학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대학의 재정다변화 노력을 촉진해야 한다. 등록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경쟁력 있는 교육과 연구가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역시 등록금 정책의 재설계와 불가분의 과제다.
정치권과 정부는 더 이상 대학을 단순한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보아선 안 된다. 학생 부담 경감이라는 목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대학의 생존을 위협하고 교육 질을 후퇴시키는 방식으로 구현돼선 안 된다. 고등교육의 재정구조와 등록금 체계를 동시에 재설계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인재 양성 기반은 근본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