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인프라는 최상, 정착은 험난” 외국인 연구자들, 한국서 ‘반쪽 생활’
KISTEP ‘국내 거주 외국인 연구자의 성장과 정착을 위한 과제와 정책제언’ “장비·인프라는 우수하지만 연구 연속성·연구자 네트워킹 부족해” “13년 거주해도 대출·의료·채용 등 불편 여전…‘반쪽 정착’ 그쳐”
[한국대학신문 윤채빈 기자]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연구자들이 연구 인프라와 수준은 ‘우수’하다고 평가했지만, 낮은 처우와 불안한 정주 여건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국내 대학·출연연·중소기업 등에서 활동 중인 이공계 외국인 연구자 및 박사후연구원을 대상으로 한국 연구환경 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국내 거주 외국인 연구자의 성장과 정착을 위한 과제와 정책제언』 보고서를 통해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학·출연연·중소기업 등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연구자들은 한국의 연구 인프라와 수준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조사에 참여한 외국인 교수 A씨는 “우수한 학생 및 연구진, 최첨단 장비, 산학 협력 연구 덕에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낮은 처우 측면에서는 불만이 컸다. 외국인 박사후연구원 B씨는 “외국인에게 제공되는 펠로우십과 연구 자금이 충분치 않아 기존 과제만 반복 수행하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연 연구원도 “공공기관의 낮은 급여로 계속 정주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 성과를 낸 연구자조차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교수 C씨는 “논문이 4만 5000번 이상의 인용을 받고, 네이처(Nature) 등 저명 학술지에 다수 발표, 노벨상 수상 논문에도 참여했지만, 한국의 관심이나 언론 보도가 미미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이 약회된다”고 토로했다.
취업 정보와 네트워킹 기회 부족도 걸림돌로 꼽혔다. 외국인 박사후연구원 D씨는 “대학 주최 채용박람회는 한국인과 한국 대학 졸업생 대상으로 하며, 외국인 연구자가 지속가능한 일자리인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외국인 교수도 “한국연구재단(NRF) 심사위원회나 한국 과학 학회에 초청을 받은 적이 없어 국내 연구 커뮤니티아의 통합에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언어 장벽’도 제약 조건이었다. 외국인 박사후연구원 E씨는 “대학 건강보험을 받고 있지만, 지역 의료진 대부분이 한국어만 사용하고 외국인과 소통을 꺼려 의료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크다”며 “13년 동안 한국에 거주하고 영주권을 가졌지만, 대출, 투자, 국제 거래 등이 제한돼 한국에서 안정적인 미래 설계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이공계 대학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석·박사 유학생은 소폭 증가 추세이지만, 국내 체류 비중은 5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외 고급 인재 유치에 힘을 쏟고 있지만, 보고서는 “유입은 이뤄지고 있으나 정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정착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글로벌 수준의 처우개선 △외국인 연구자 성공사례 홍보 △외국인 이공계 유학생 전용 채용박람회 개최 및 취업 플랫폼 구축 △글로벌 연구자 간 네트워킹 활성화 △외국인 인재의 국가R&D 평가위원 참여 지원 △연구-정주 풀 패키지 지원 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다.
김인자 KISTEP 인재정책센터 연구위원은 “한국이 글로벌 인재 유입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유입-성장-적응-정착이라는 전 주기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며 “우수 인재가 떠나지 않고 머무를 수 있도록 연구·생활 만족도를 높이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