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UBRC’ 논의 활발한데… “대학 유휴 부지 활용 한계 있어”

한국사학진흥재단·대구정책연구원 ‘한국형 UBRC 모델 개발 세미나’ 개최 미국, 일본 등 해외 대학 운영 사례 소개… “의료 서비스, 대학 부지 필수” 국내 대학 ‘현행 법규상’ 당장 UBRC 도입 어려워… 학교 법인 조세 부담도 “대학 고령자 평생교육 확대… 법규·규제 완화에 맞춰 ‘단계적 도입’해야”

2025-08-11     주지영 기자
지난 6일 대구정책연구원 대회의실에서 ‘한국형 대학 연계 은퇴자 공동체(UBRC) 추진 방향’을 주제로 세미나가 개최됐다. (사진= 한국사학진흥재단 제공)

[한국대학신문 주지영 기자] 대학 캠퍼스가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 공동체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특히 저출생·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역 대학을 ‘고령자 공동체’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육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다만 대학 유휴 부지 활용과 대학 내 거주시설 설치·운영에 관련된 법적 규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대구에서 열린 ‘한국형 대학 연계 은퇴자 UBRC 모델 개발 세미나’에서 한국형 UBRC 필요성을 짚어보고, 운영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UBRC(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는 고령자들이 대학 캠퍼스 내 또는 인근에서 거주하며 교육, 건강관리 등 대학 서비스를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고령자의 주거 환경을 대학과 연계하는 것으로 거주자에게 대학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형태다. 대학이 사업 주체가 돼 직접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공간 AI·빅데이터본부 연구위원은 이날 해외 대학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 대학은 정부지원 없이 UBRC를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체계를 마련해 효율적으로 고령사회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고영호 연구위원은 이날 ‘대학연계형 은퇴자 공동체 모델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교,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일본 야마나시현 쯔루시, 일본 히로시마현 동히로시마시 등에서는 지역 대학과 연계해 UBRC를 운영하고 있다. 데이비스 대학교는 저소득층 전용으로 60가구를 대학 내에 설치했다. ‘생활보조’ ‘너싱홈’ 등 의료·건강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상호출 시스템과 24시간 보안 서비스 등 생활 편의 서비스도 지원한다.

인디애나 대학교는 누구나 시설에 입주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 쯔루시는 쯔루문과대학, 건강과학대학, 산업기술 단기대학 등 여러 대학과 연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쯔루시는 참여대학들의 역할을 구분해 사업을 운영하고 거주자와 지역주민 간 교류를 지원했다.

동히로미사시는 히로시마 국제대학교와 UBRC를 운영했다. 히로시마국제대학은 의료·복지계열 종합대학으로 고령자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을 고려해 사업을 운영한 점이 눈에 띈다. 또 지역 재생사업과 연계해 정부, 대학, 지역사회, 민간이 함께 본 사업을 운영했다.

고 연구위원은 “해외 사례 분석 결과 UBRC 필요 조건으로는 의료, 생활편의 서비스와 대학부지, 대학 연계 프로그램”이라며 “UBRC 도입으로 학생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학 가운데 동명대, 조선대, 신라대, 남서울대, 상지대 등이 UBRC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가에서 한국형 UBRC 설립에 관심이 많지만, 토지 이용과 건축 환경 세제 등 관련 법규와 규제 등에서 대학이 자산을 적극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미나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한국사학진흥재단 제공)

문재성 한국사학진흥재단 고등교육재정회계본부 본부장은 ‘UBRC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방안’ 발표에서 “대학의 재산 관리와 시설 운영과 관련된 규제들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어 대학의 유휴 부동산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행 법규 내에서 대학이 당장 UBRC를 도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각 대학은 노인층에 대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이후 법규와 규제 완화에 맞춰 대학 내 거주시설을 설치·운영하는 UBRC 도입을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 본부장에 따르면 UBRC는 노인 거주자에 대해 평생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데, 현행 법규상 대학 내 설치할 수 있는 편익 시설 종류와 규모가 제한된다. 또 대학 내 주거용 시설을 분양하거나 회원을 모집해 운영하는 숙박시설, 오피스텔 설치가 불가해 노인 주거를 위한 시설을 세울 수 없다.

세금 법규도 고민해야 한다. UBRC 노인 거주자에 대한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지방세 과제 대상이 된다. UBRC 운영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그 수익분에 대한 법인세도 부과된다. 문 본부장은 “UBRC에 따른 평생 교육 수익은 대학 고유의 교육과 연구활동으로 인정되지 않아 법인세 부과 대상이 돼 학교법인의 조세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저출생과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은 폐쇄 위기에 놓였다. 동시에 인구 고령화가 이어지면서 고령자 의료비 부담에 따른 의료·돌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서 고령자의 사회참여와 주거안정에 대응할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55년~1963년생에 해당하는 1차 베이비부머 인구가 고령층으로 진입했으며, 2차 베이비부머세대가 고령층으로 진입하는 향후 20년간 고령인구가 급격히 늘어날 증가할 전망이다.

문 본부장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UBRC와 같은 고령 친화 시설 마련이 필요하다”며 “각 지역 대학은 교육·연구 시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도서관 등의 시설 등을 기반으로 부족한 노후 생활을 지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새 정부 공양사항 이행과 국가 균형 발전 방법론으로 한국형 UBRC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는 한국사학진흥재단과 대구정책연구원이 개최했다. 이하운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은 이날 축사에서 “UBRC 모델은 단순한 노후주거 개념을 넘어, 교육·과학 기술 등을 융합한 새로운 모델”이라며 “UBRC는 대학의 생존 전략이자 지역사회의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