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유학 현장] “볼트 ‘조이고’ 케이블 ‘연결’”… ‘직업목적 한국어’ 유학생 경쟁력 높인다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 ‘직업목적 한국어교육’ 집중 2023년 9월 연구소 설립 후 ‘산업 현장’ 맞춤형 교재 제작 용접·도장 한국어 교재 발간, 올해 ‘돌봄 한국어’ 발간 목표 ‘E-9 리턴 프로젝트’로 한국 기업 경력자 유학생으로 확보 ‘유학생 종합 관리’… 교내 비자 상담실, 기도실·법당 마련
[한국대학신문 주지영 기자] ‘오늘 회식이 있으니까 참석하세요’ 지난 13일 서정대 한국어교육원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교재에 적혀 있던 문구다. 회식 상황을 나타내는 그림 아래에는 ‘조퇴’ ‘지시하다’ ‘출근하다’ ‘퇴근하다’ 등의 단어가 나열돼 있다.
이날 교육원 수업에서 사용한 교재는《장영실 기초 한국어》다. 이 교재에는 일상대화뿐만 아니라 직장·산업현장에서 대화도 담겨 있다. 한국 유학 후 한국에 취업해 정주까지 희망하는 유학생들을 위해 제작된 교재다. 교재는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에서 기획·집필했다.
손혜진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장은 “《장영실 기초 한국어》는 직업목적 한국어교육 필요성을 깨닫고 난 뒤 제작한 교재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과 제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단어, 문장을 모두 담았다. 유학생들이 졸업 후 직업인으로서 한국에서 겪을 다양한 상황을 책에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장영실 기초 한국어》 2편도 발간 예정이다.
서정대 특수목적한국어연구소는 일상 한국어와 직업 목적 한국어를 모두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외국인 인재 양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연구소는 지난 2023년 9월 만들어져 직업·학업과 관련된 특수목적 한국어 연구와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직업목적한국어 교육, 산업계가 원한다 = 직업목적 한국어교육은 산업·직무별 특성에 맞춘 한국어교육이다.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서 직업 활동을 할 때 의사소통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교육 목적이 있다.
연구소에는 현재 《용접 한국어》《도장 한국어》 교재를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첫 번째로 만들어졌던 《용접 한국어》는 현대삼호중공업 요청으로 지난 2023년 9월 발간됐다. 기업에서 직업목적 한국어교육 필요성을 느끼고 대학에 교재 제작을 요청한 것이다.
손혜진 소장은 “국내에서 학문목적 한국어교육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부설 어학교육원이 있고 그곳에 한국어 연구자와 교육자가 많이 있다”며 “반면 직업목적 한국어교육은 교육 현장에서 필요성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이제 시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과거 비전문취업(E-9) 비자로 국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유학생도 직업목적 한국어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슬람 씨(방글라데시, 글로벌산업공학과)는 《용접 한국어》《도장 한국어》를 접한 뒤 “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서 일했을 때 직업목적 한국어를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졸업을 앞두고 국내 산업체 취업이 확정된 상태다.
《용접 한국어》《도장 한국어》 등 직업목적 한국어 교재는 목차부터 일반 한국어교재와 다르다. 실제 용접과 도장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와 문장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교재 집필 과정에는 기업 관계자가 직접 검수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손 소장은 “기존 한국어교육 연구자는 산업현장에서 특정 상황 혹은 업무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단어, 문장을 정확하게 아는 데 한계가 있다”며 “따라서 직업목적 한국어 교재를 제작할 때는 반드시 산업현장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협업이 안 되면 교재 만들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연구소는 현재 《돌봄 한국어》 교재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 올해 《돌봄 한국어》 교재 발간이 목표다. 손 소장은 “최근 요양·돌봄분야 인력 부족이 심각해 정부에서 외국인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의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대학’ 사업도 있다”며 “서정대도 후보대학에 선정됐다. 관련 학과가 생기면 활용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돌봄 한국어》 교재를 출판하는 걸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관광 분야 같은 ‘서비스 직무’를 위한 교재 개발도 필요하다. 연구소는 앞으로 다양한 직무에 맞는 다양한 교재를 개발하기 위해 교내 여러 학과와 협력 체계도 마련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손 소장은 “용접, 도장 한국어 교재는 주로 작업지시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서비스 직무 한국어 교재는 아직 발간 전인데, 돌봄과 호텔관광 분야 한국어 교재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 소장은 이어 “연구소 자체 인력으로 교재를 집필, 제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특수목적한국어 교재와 교수법을 개발할 수 있는 대학 내 협력 구조를 마련하고 싶다”고 전했다.
■ E-9 리턴 프로젝트로 ‘전문 직업인’ 양성 확대 = 이와 함께 서정대는 ‘E-9 리턴 프로젝트’로 외국인 전문기술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한다. 과거 E-9 비자로 한국 내 경력이 있는 외국인을 발굴해 전문직업인으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이미 서정대에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에서 E-9 리턴 프로젝트로 한국에 다시 온 유학생들이 있다.
손 소장은 “E-9으로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일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기업 문화에 적응도 빠르다”며 “동기가 명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육 의지도 강하다. 따라서 전문대학에서 전문기술을 보완하고 한국어교육도 더 받게 되면 전문인력(E-7) 비자 발급도 원활하게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어가 아직 서툰 어학연수생들도 한국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어 공부에 집중한다. 이날 서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만난 뚜엣 리(20, 베트남) 씨는 “지난 6월 한국에 왔다. 학습환경이 좋고 한국에서 유학 후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어 오게 됐다”며 “한국어가 어렵지만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등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해서 즐겁다”고 말했다.
즈으엉(19, 베트남) 씨는 “한국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한국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유학 오게 됐다”며 “취업이 잘되는 자동차학과에 입학하고 싶다. 취업 기회가 많다고 들었다. 자동차과에서 전문기술을 배워 한국에서 취업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4000 명에 달하는 유학생 수만큼 이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도 대학 곳곳에 마련돼 있다. 특히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비자 문제도 전문으로 다뤄주는 ‘비자 상담실’도 교내에 따로 설치돼 있다.
이외에도 유학생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이슬람교 기도실과 불교 법당이 마련돼 있다. 유학생들이 꼭 알아야 하는 아르바이트 신청 방법과 비자 연장 방법 등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네팔, 몽골 등 학생들 국적에 맞춰 본국 언어로 안내문이 적혀 있다. 또 유학생 근로장학생들이 국적별로 있어 유학생들의 상담도 돕고 있다.
손 소장은 “유학생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 교육이다. 학생들이 한국에 적응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한국어 능력이다. 한국어를 잘 구사할수록 적응이 빠르다”며 “동시에 대학에서는 유학생들이 한국에 정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대학에서는 교수님, 교직원분들 모두가 유학생들의 어려움과 고민에 귀 기울이고 작은 해결책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서정대는 2024년 교육부·법무부가 주관하는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 평가에서 학위 과정과 어학연수 과정 모두 인증을 획득했다. 현재 4000여 명 외국인 유학생(한국어 과정 포함)이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