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마다 일본行… “파티시에 꿈꾸며 반죽으로 하루를 채웠다”
국내 대학들 매년 日제과 명문학교 체험… 한국과 무엇이 다르길래 일본에선 실습 80%, 매장 운영도… 한국의 경우 자격증, 학위 중심 “K베이커리 세계화·국제경쟁력, 교육혁신 없으면 지속 가능 어려워”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아침 9시부터 밤까지 밀가루 반죽과 씨름했어요. 하루 종일 오븐 앞에 서다 보니 손끝이 얼얼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20일 경기도 소재 전문대인 대림대 제과제빵과 학생 20여 명이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동경제과학교(東京製菓学校)에 모였다. 한국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이지만 일본에서는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인 시기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일본 현지 학생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함께 실습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서의 하루는 강의실보다는 제빵실에서 시작해 제빵실에서 끝난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국내 전문대학가에서는 이 같은 ‘일본 연수 러시’가 이어진다. 대림대와 거제대, 용인예술과학대 등 국내 상당수 대학들이 일본의 제과 명문학교와 협력해 단기 연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는 거제대 조리제빵과 학생들이 일본 오사카조리제과전문학교(大阪調理製菓専門学校)를 방문해 녹차 앙금빵을 만드는 체험을 진행했다. 앞서 6월에는 용인예술과학대 학생들이 도쿄 야마노테조리제과학교(山手調理製菓専門学校)에서 연수를 진행했다. 각 대학마다 연수 기간과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일본식 실습몰입형 교육을 직접 경험한다는 것이다.
■ 일본式 몰입형 교육, 만들고 직접 팔아보기까지 = 대학 현장에선 일본의 제과제빵 학교 수업은 만들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라고 말한다.
동경제과학교는 1954년 설립된 이후 ‘실습률 85% 이상’을 원칙으로 고수해왔다. 1학년 때는 약 250개의 레시피를 만든다. 2학년이 되면 350개 이상의 레시피를 실제로 만들어 볼 수 있다. 매일같이 반죽과 발효, 굽기 과정을 반복하면서 손끝 감각을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자전문학교(日本菓子専門学校)도 마찬가지다. 전체 교육의 절반 이상이 실습으로 편성돼 있다. 제빵이나 양과, 화과 중 하나를 선택하고 1~2년간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게 된다. 필기시험은 보지 않는다. 학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빵을 만들어내는 실기형 시험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판매와 운영에 대한 실습을 한다는 점도 일본 시스템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일본의 제과학교에서는 학원제(학교 축제) 행사 때 학생들이 직접 만든 빵과 케이크를 일반 고객들에게 판매한다. 학생들의 역할이 단순히 빵을 만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책정하는 일도 학생들의 몫이다. 또한 손님을 응대하고 재고까지 관리하는 매장 운영 전반에 대한 훈련도 교육의 일부로 인식한다는 점이 일본 시스템의 특징이다.
대림대 연수에 참가한 한 학생은 본지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수업에서 만든 빵을 그냥 시식하거나 평가용으로만 쓰는데 일본에서는 바로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내가 만든 빵을 고객이 실제 돈을 내고 사간다고 한다면 경험의 무게감이 전혀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전통과 현대의 트렌드를 동시에 가르친다는 점도 일본 제과학교의 강점이다. 서양식 케이크는 물론이고 일본 특유의 전통 과자인 화과자(和菓子, 와가시)를 별도의 본과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단팥소를 다루는 기술부터 사계절에 맞는 재료 활용법, 일본 전통 행사와 연계된 제과 문화까지 모두 배운다.
최신 트렌드에도 민감하다. 초콜렛 공예(쇼콜라티에), 설탕 공예(飴細工, 아메자이쿠)뿐만 아니라 카페 운영과 디저트 플레이트 디자인 같은 심화 과정도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단순한 제빵 기술을 넘어 디저트 산업 전반의 트렌드 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물론 국내 대학들의 제과제빵과도 실습 비중은 높다. 대림대는 교과의 70% 이상을 실습으로 구성한다. 거제대와 용인예술과학대 등도 다양한 메뉴 실습을 통해 학생들의 현장 적응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들과 일본의 가장 다른 점으로 교양·이론 과목의 비중을 꼽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대학들의 제과제빵과 대부분은 영양학, 위생학, 식품학, 경영학 등과 같은 이론 과목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 현장에선 “(이론 과목들이) 자격증 취득과 졸업, 학위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본지가 취재를 통해 만난 국내 제과제빵과 학생들 대부분은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자신의 대학 생활의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공부하고 있었다. 졸업 후 취업이나 창업에서 기능사 자격증이 절대적인 까닭이다. 일부는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할 때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수도권 소재 한 전문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학과 교육과정과 자격증 취득이 사실상 결합된 구조로 운영·발전해 왔다”면서 “(실습 중심의 교육보다) 상대적으로 진로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점은 장점으로 볼 수 있지만 학생들이 하루 종일 반죽을 붙잡고 손에 익힐 수 있는 경험은 부족할 수밖에 없어 이는 국내 교육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의 교육 시스템 차이는 졸업 후 진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본의 제과학교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제과위생사(製菓衛生師)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 자격은 일본 내에서 제과업계 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에 해당한다. 본지가 일본 문부과학성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일본과자전문학교의 경우 지난해 자격 합격률은 9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제과학교들은 탄탄한 실습교육과 동시에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학생들의 다수의 채용 기회를 제공하며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 대학의 제과제빵 졸업생들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취업하거나 개인 창업, 프랜차이즈 입사, 디저트 카페 운영 등 다양한 진로를 선택한다. 일부는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외국 유학을 택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경로는 폭넓다고도 볼 수 있는 반면 현장에서 곧바로 고급 인력으로 투입되기에는 어렵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본지 취재에서 일본 연수를 다녀온 학생들의 반응은 “한국에서는 하루에 2~3시간 실습이 전부지만 일본은 하루 종일 손을 움직인다” “화과자, 쇼콜라 같은 전통과 최신 트렌드를 함께 배울 수 있어 시야가 넓어졌다” “내가 만든 빵을 직접 팔아보니 자신감과 동시에 책임감도 생겼다”며 한결같았다. 연수에 참가한 대림대 학생은 “일본은 몸으로 배우는 학교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짧은 기간이지만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제과제빵 교육에서 앞서가는 이유가 탄탄한 산업 기반 덕분이라고 말한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일본은 인구 1억 2400만 명 규모의 내수 시장에 수천 개의 전문 빵집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파리바게뜨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보다는 동네 장인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주류를 이루고 지역별로 특화된 빵·과자가 발전해왔다.
일본 제과학교들은 이 산업 생태계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학교 행사에 대형 호텔의 제과장이나 유명 파티시에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학생들이 졸업할 시점이 되면 이미 이 같은 업계 관계자와 접점을 맺을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 K-베이커리 열풍… 교육 혁신 없인 지속 어렵다 = 최근 국내 제과제빵업, 이른바 K-베이커리도 한류 유행에 힘입어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블랙핑크의 제니 사진이 있는 서울 강남의 템버린즈 앞 디저트 카페에 늘어선 외국인 관광객 줄, 일본 언론에서도 소개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의 성지로 부상한 대전 성심당은 이 같은 흐름을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K-베이커리 열풍이 불어오는 이때야말로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으려면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오현 대경대 경영부총장(호텔관광경영학 박사)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한국은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내는 창의성 만큼은 일본에 비해 강점이 있다”면서도 “산업 현장에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 양성은 일본보다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학생들이 일본에서 반죽으로 하루를 채운 경험은 국내 대학들의 제과제빵 교육이 넘어야 할 벽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K-베이커리 붐이 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지금 교육 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이 흐름이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 부총장은 “여름마다 국내 대학들이 일본으로 학생들을 보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실습에서 시작해 판매와 산업으로 연결되는 일본식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서”라며 “자격증과 학위 중심의 국내 제과제빵 교육 시스템 속에 산학협력 확대, 해외 연수 제도화, 판매 실습 정규화 등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