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서울대 10개 만들기, ‘국공립대 무상등록금’ 투자로부터 출발해야

김헌영 중앙RISE위원회 위원장(전 강원대학교 총장)

2025-08-29     한국대학신문
김헌영 중앙RISE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은 지금 학령인구 급감,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 지방 소멸과 함께 고등교육의 지속가능성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각각의 사안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복합 위기이며, 국가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대학 위기는 곧 지역의 위기이고, 지역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지방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지식 기반이자 인재의 울타리이며 산업 생태계의 뿌리다. 대학이 무너지면 지역사회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을 지키는 것은 곧 그 지방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를 지키는 일이다.

■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이 필요한 이유 = 2025학년도 대학 입시에서 전국 49개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이 중 40개 대학이 지방대였다. 전체 미충원 인원의 93%가 지방에서 발생한 것이다. 수도권 집중은 가속화되고, 지방대 위기는 고착화하고 있다.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구조적 대책이 바로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이다. 이는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 정책에 머물지 않는다. 우수한 지역인재가 지역에 남아 학업·취업·창업·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드는 국가적 약속이다. 동시에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실효성 높은 메시지이기도 하다. “국가는 국공립대를 통해 지역을 지키고, 지역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연다”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국공립대가 지역을 살리는 거점으로 거듭나는 길의 출발점이다.

■ 무상교육은 지학협력의 첫걸음 =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대학이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산업과 연결된 연구, 창업, 문화, 공동체의 중심이 될 때 도시는 되살아나고, 청년은 머무르며, 지역은 재생된다. 그러나 청년들이 지역에 남으려면 우선 대학이 경쟁력을 지켜야 한다. 그 출발점이 바로 무상교육체계 구축이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지방대학을 국가 혁신 거점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투자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공립 지방대 등록금 전액을 국가와 지방정부가 지원하는 데 필요한 추가 예산은 연평균 5,259억 원 수준으로, 전체 국가예산(약 656조 원)의 0.1%도 되지 않는다. 교육은 지출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그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고 타당한 선택이다. 현재 국공립대 등록금은 사립대의 약 60% 수준이고, 국가장학금과 다양한 대학별 장학금 등으로 학생 부담률은 이미 30% 수준으로 낮아져 있다. 따라서 우선 정부가 이 30%를 지원하는 과도기적 체제를 도입하고, 이후 점진적으로 완전 무상등록금으로 확대할 수 있다. 지방의 인재들이 지방대학을 진학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지방인재들의 자존감으로 지방에 정주하게 하는 현실적이고, 당장 실현가능한 방안인 것이다.

■ 국공립대만의 정책이 아니다 =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국공립대학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고등교육의 역할 분담과 협력 체계를 새롭게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국공립대는 기초학문·인문사회·자연과학·예술 등 국가 기반 학문을 책임지며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 사립대는 국립대와의 공유‧연계를 통해 지역산업 수요에 발맞춰 특성화된 교육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전문대는 직업교육과 평생학습의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고, 수도권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집중할 수 있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국립대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 국립-사립, 수도권-지방, 일반대-전문대 간의 협력과 연계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토대다. 따라서 이 정책은 특정 대학만의 혜택이 아니라 고등교육 전체의 균형과 다양성을 지키고, 국가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 RISE 시대와 국공립대의 책무 = 2025년부터 시행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는 고등교육의 철학을 중앙집중에서 지역자율로 바꾸는 전환의 시작이다. 지자체·대학·산업체가 협력해 지역 인재를 키우고, 일자리를 만들며,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새로운 생태계를 지향한다. 이 체제에서 국공립대의 책무는 더욱 크다. 기초학문과 공공성을 안정적으로 지켜내야 하며, 이는 국가의 장기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필수 기반이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 ‘서울대 10개 만들기’와의 연결 =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국립대 연구 역량을 강화해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고, 수도권과의 격차를 해소하는 장기 비전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방대의 기반을 먼저 다져야 한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이 바로 그 토대다. 무상등록금이 시행된다면 지방대는 위기에서 벗어나 학생 유입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대규모 정책의 효과도 배가될 것이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친다면 2030년 이후 학령인구 급감기에 대학은 대책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공립대 무상등록금은 단순한 재정 지원책이 아니다. 그것은 이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실효성 높은 메시지이자, 한국 고등교육이 균형과 다양성 속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드는 출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