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력이 미래다] 일본·EU 넘본다… 경상국립대 ‘저염분 바이오차’, 글로벌 시장 뚫을까
초음파·세척 공정으로 염분 94% 제거… 가축분 폐자원 활용 돌파구 마련 국내 규격 한계 넘어 EBC·J-크레딧 충족 가능성… 국제무대 진출 기대 ↑ 전문가 “비용·환경 검증 과제 남아… 탄소중립 시장서 경쟁력 시험될 것”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바이오차가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최근 국제 사회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미 제도적 틀을 마련해 바이오차를 탄소저장 기술로 인정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 막 규격을 마련하며 첫발을 뗀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경상국립대가 가축분뇨와 음식물계 폐자원 등 고염분 바이오매스의 활용 한계를 극복한 저염분 바이오차 제조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이전하면서 한국형 K-바이오차 기술이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경상국립대 산학협력단은 지난 10일 글로벌바이오에너지와 저염분 바이오차 제조기술 전용 실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1억 원대다. 고문기업인 후시파트너스(대표 이행열)와 협력사 의성그린에너지(대표 김인출)까지 참여하면서 상용화 기반을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 이전된 기술은 환경생명화학과 서동철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원천 기술이다. 초음파와 세척 공정을 결합한 기술로서, 기존에는 11%대에 머물던 염분 제거 효율을 94%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초음파 단독만으로도 85% 수준의 제염 효과가 입증돼 열분해 과정에서 농축돼버리는 염분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서동철 교수팀은 과거에도 바이오매스 잔재를 비료로 등록·산업화한 경험이 있어 연구성과를 산업 현장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 이번 성과 역시 산업적 가치를 창출한 서 교수팀의 대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술이 국내에서 특히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농촌진흥청이 비료 공정규격을 손질해 바이오차를 비료로 등록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가축분 바이오차에는 ‘염분 2% 이하’라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현실에서 대부분의 가축분 바이오차가 이 기준을 넘는다는 점이다. 결국 농업 현장에서는 쓸 수 없었고 농가에서도 토양에 소금기(염분)가 쌓일까 우려해 외면해왔다.
서동철 경상국립대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가축분 바이오차는 염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사실상 농업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해왔다”며 “이번에 개발한 저염분 기술은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농가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 국제 인증·시장 진출 가능성은? =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해외에서는 이미 바이오차가 탄소저장 수단으로 제도와 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각국이 엄격한 기준과 인증 체계를 마련하며 산업을 키우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 이제 막 제도를 정비한 우리나라에서, 이번처럼 경상국립대가 염분 문제를 해결한 기술을 내놓았다는 점은 그만큼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EU는 탄소 제거·탄소농업 인증제(CRCF)를 통해 바이오차를 신뢰할 수 있는 탄소저장 기술로 공식 인정했다. 또 민간 차원에서는 유럽바이오차인증(EBC) 제도를 운영하며 제품에 염분이나 중금속이 지나치게 많지 않은지,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은지를 꼼꼼하게 따져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이런 장치들이 바이오차 산업이 믿을 수 있는 시장으로 자리잡는 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J-크레딧이라는 제도를 통해 농지에 투입한 바이오차가 실제로 얼마나 탄소를 저장했는지를 계산해 인정해준다. 이렇게 발급된 크레딧은 기업들이 탄소중립 경영을 위해 사고팔 수 있다. 최근에는 일부 대기업이 농업용 바이오차 크레딧을 직접 판매하는 구조까지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농가가 바이오차를 쓰면 탄소 감축 효과가 수치로 인정받고 그 가치를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시장 전망도 밝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 등 글로벌 조사기관들은 세계 바이오차 시장 규모가 2024년 7억 6348만 달러(약 1조 590억 원)에서 2032년까지 20억 9772만 달러(2조 9110억 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양으로 따지면 약 70만 톤에서 2030년 200만 톤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제도와 인증이 자리 잡고 거래 구조까지 마련되면서 세계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번 저염분 기술이 국제 기준과도 맞는 만큼 수출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임현태 경상국립대 기술비즈니스센터장은 본지에 “유럽에서 운영하는 EBC 인증은 바이오차에 소금기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와 전기전도도 수치를 까다롭게 보는 편”이라며 “그런데 이번 기술은 염분을 크게 줄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이런 조건을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J-크레딧 제도에서도 저염분 바이오차는 의미가 크다. 이재형 글로벌바이오에너지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토양에 소금기가 쌓이는 문제를 줄여줄 수 있어 농지 활용에 더 적합한 대안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국제 탄소저장 크레딧 시장도 경상국립대의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최병근 경상국립대 산학협력단장은 “세계 최대 플랫폼인 푸로어스(Puro.earth)는 바이오차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오래 저장할 수 있는지, 그 과정이 안정적인지, 전 과정에서 환경 부담이 없는지를 꼼꼼히 따지는 편”이라며 “경상국립대의 기술은 소금기를 줄이는 동시에 탄소 함량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기준에도 잘 맞는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홍남석 한국ESG경영원 원장은 “국내에서는 어떤 원료를 쓰든, 계절이 달라지거나 생산 시점이 바뀌더라도 항상 염분 2% 이하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며 “해외 인증을 받을 때도 소금기만 줄였다는 이유만으로는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중금속이나 유해 물질이 남아 있지 않은지, 세척 과정에서 나온 폐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전체 공정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꼼꼼히 검증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 따르면 초음파와 세척 과정을 거치면 설비를 더 들여야 하고 에너지 등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제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농가에서 쉽게 쓰기 어려워 질 것이란 주장이다.
이재형 글로벌바이오에너지 대표는 “협력사인 우리 기업이 갖고 있는 하수슬러지 연료화 기술과 에너지 절감 노하우를 결합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며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경상국립대의 기술이 지역 순환 경제와 탄소중립 정책 모두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국제 인증과 연계된다면 한국형 기술이 일본과 유럽을 넘어 아시아 농업국과 신흥시장까지도 진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홍남석 원장은 “바이오차는 대표적 탄소저장 솔루션으로 자리 잡았다”며 “경상국립대의 저염분 기술이 국제 시장을 두드리는 첫 시도가 될 수 있다. 기술의 차별성과 산업적 가치가 국제무대에서 검증된다면 한국형 친환경 기술이 글로벌 탄소중립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