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대학경제] 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고려대·KAIST… 대학 연구비 ‘빅5’ 구도 뚜렷

서울대 7034억 원, KAIST 교수 1인당 10억 원 돌파 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 약진…신산업 연구비 확대 지방 중견 대학은 1인당 연구비 2000만 원대 머물러

2025-09-16     김의진 기자
서울대학교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서울대와 성균관대, 연세대, 고려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가 올해 대학 연구비 수혜 실적에서 이른바 ‘빅5’ 구도를 뚜렷하게 형성한 것으로 본지 분석 결과 확인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교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교수 1인당 연구비가 10억 원을 넘어서는 등 압도적인 연구 역량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20개교가 전국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수도권 대형 사립대, 특수 목적 국립대 중심의 편중 현상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16일 본지가 교육부로부터 입수해 전임교원 400명 이상인 전국 대학 53곳의 연구비 수혜 실적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서울대가 약 7034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성균관대가 6154억 원, 연세대가 5157억 원, 고려대가 4870억 원, KAIST가 4763억 원으로 2위부터 5위까지 순이었다.

한양대와 경북대, 부산대도 약 2000억 원대로 뒤를 이었다. 전남대, 경희대, 충남대, 전북대, 중앙대 등이 그다음 순으로, 상위권은 서울 소재 사립대와 과학기술 특성화 국립대, 지방거점 국립대로만 채워졌다.

한국대학신문 입수 전국 대학 연구비 수혜 실적 상위 30개교 (자료=한국대학신문)

본지의 이번 분석에서 주목할 점은 교원 규모 대비 1인당 연구비 격차가 상당했다는 점이다.

KAIST의 전임교원 수는 716명으로, 서울대(2369명)나 연세대(1820명), 고려대(160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연구비는 총 4763억 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KAIST의 교수 1인당 연구비는 약 10억 3160만 원으로, 성균관대(6억 6850만 원), 고려대(5억 1060만 원), 서울대(4억 8450만 원)를 크게 웃돌았다. 한양대도 1인당 연구비 4억 2190만 원을 기록하며 기업 협력과 신산업 중심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일부 지방 사립대는 교수 1인당 연구비가 2000만~4000만 원대에 머무른 곳이 많았다. 연구 여건 측면에서 수도권 대형 대학과 지방 중견 대학 간 불균형이 극심하다는 점이 본지의 이번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

한국대학신문 입수 전국 대학 교수 1인당 연구비 상위 30개교 (자료=한국대학신문)

상위권 몇몇 대학이 독식하는 구조는 더욱 선명해졌다. 상위권 8개 대학의 연구비 합계는 3조 5200억 원 규모로, 이것만으로도 이미 전체 연구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와 성균관대, 연세대 등 이른바 ‘빅3’만 합쳐도 1조 8340억 원 수준으로, 하위권 수십 개 대학을 합친 것보다 컸다.

이처럼 일부 몇몇 대학에만 연구비가 집중됨에 따라 전국 대학들의 연구 역량 격차가 재정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하운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전자공학 박사)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연구비가 소수 대학에 집중되면 학문적 다양성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며 “서울·수도권 일부 대학만 풍부한 재원을 활용하는 구조가 장기화되면 지역대학의 연구 생태계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효율성을 명분으로 (연구비 편중이) 정당화될 수는 있겠지만 지방대 소멸과 국가 경쟁력 저하라는 리스크가 숨어 있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며 “지방 중견 사립대에 대한 전략적 재정지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수도권 사립대의 약진도 이번 분석에서 눈에 띈다. 성균관대는 삼성그룹과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반도체·인공지능(AI) 분야에서 연구비를 확대했다. 한양대도 공학·의학 분야를 두 축으로 산학협력 과제를 꾸준히 늘려 상위권을 지킬 수 있었다는 평가다.

인하대 역시 1474억 원을 기록하며 전임교원 886명 기준으로 1인당 2억 6630억 원을 확보해 중견 사립대의 전통적 강자 면모를 보였다. 이화여대는 961명의 교원으로 1405억 원을 수주해 1인당 연구비 3억 560억 원대를 기록해, 의약학·바이오 중심 투자와 여성 과학자 네트워크의 힘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반면 지방 중견 대학들의 경우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울산대, 국립부경대, 경상국립대, 강원대는 상위 20개교 안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연구비 총액은 수도권 대형 대학들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그쳤다. 지역 산업과 연계한 연구 과제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국책사업 참여에서도 상대적으로 약세가 지속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격차가 지역 혁신과 산업 생태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도권 대형 사립대와 특수 목적 국립대는 반도체·AI·바이오 등 신산업을 중심으로 연구비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는 반면 지방 중견 대학들은 전통 산업 중심의 연구에 머무르면서 성장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최석식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은 본지 통화에서 “연구비 격차는 교수 개인의 연구 환경 차이를 넘어 대학의 미래 산업 적응 능력을 갈라놓는다”며 “특히 지방대의 경우 산학협력 네트워크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 정부 주도의 지원 정책이 없이는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학 재정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비 비중이 높은 대학일수록 자체 재원과 외부 과제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이것이 다시 학문적 성과와 산학협력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게 된다. 반면 연구비 확보가 취약한 대학의 경우 등록금이나 교비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혁신 투자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연구비 격차가 결국 대학 운영의 질적 격차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최 전 차관은 “연구비의 집중이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지나친 쏠림은 고등교육 체계의 불균형을 심화할 것”이라며 “지역 중견 대학들에 대한 전략적 지원 없이는 지방대 소멸에 이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